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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광복이라 할 수 있는가."(독립운동가 조문기)

광복 64주년. 하지만 우리 사회를 휘감은 친일파의 그림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통령은 일본 총리에게 "과거사는 묻지 않겠다"고 말하며 과거에 얽매임은 도태라는 '실용'을 주장해왔다. 최근 교과부에서 제시한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는 이승만 정부가 친일 청산 노력을 했다고 명시했다. 또한 도처에서는 친일파 기념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소설가 조정래씨는 "친일파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부패와 타락 속에서 60년을 계속되어 왔다"며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비양심과 부도덕, 파렴치함의 뿌리"를 "척결하지 못한 친일파들"에게서 찾았다. 

60여 년간 이뤄내지 못했던 친일반민족 행위 진상규명. 하지만 많은 우여곡절 끝에 올해 10월에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다.

참회와 반성없인 상식도 정의도 없다

 친일인명사전 표지, 제자(題字) 쇠귀 신영복
 친일인명사전 표지, 제자(題字) 쇠귀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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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가 10월에 발간할 '친일인명사전'에는 총 4,430명이 최종 수록된다. 사전에 실리는 인물들은 1905년 을사늑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들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는 인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장면 전 국무총리,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 무용수 최승희, 작곡가 홍난파, 미당 서정주 등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사전을 만드는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일본제국주의의 불법적 국권침탈과 강압적 식민통치, 반인류적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인물들의 행적을 조사하고 정리함으로써 우리 역사에 상식과 정의의 숨결을 불어넣으려 합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사전 편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족 내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고 드러내는 일입니다. 진실규명을 토대로 반성과 화해를 이끌어내는 민족사적 과제입니다. 단순히 누가 누구를 단죄한다는 게 아니지요. 개인·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 자체의 문제입니다. 언젠가는 극복해야만 할 시대적 과제이지요."

이어서 서정주의 예를 들었다.

"친일행위를 했지만 그의 시적 재능을 높이 사 감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일제침략전쟁에 송시를 바쳤던 서정주는 전두환에게도 헌시를 바치고 맙니다. 참회와 반성이 있었다면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었을까요? 참회와 반성이 없는 한 우리 사회의 올바른 가치관은 요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명단에 올린단 생각으로 신중을 기울여 달라"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 이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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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대의가 있다 해도 현실적인 방책들이 미흡하다면 그 뜻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수록대상 유족들의 이의신청, 발행금지 가처분소송 등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극우단체와 몇몇 신문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경우 사주가 사전에 실려서인지 유독 부정적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조세열 사무총장은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의의 정당성은 물론이거니와 현실적 방책들 또한 있다는 자신감이다.

실제로 민족문제연구소는 인물선정 작업을 위해 일제강점기 공문서·신문·잡지 등 3천여 종의 문헌자료를 수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250만 건의 인물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2만5천 건의 친일혐의자 모집단을 추출했고, 20여 분야의 전문분과회의와 상임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결과 4,430명을 선정했다. 이렇게 선정한 인물들은 재차 검토 및 자문을 거쳐 전체회의에서 확정했다. 조 사무총장은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한, 방대하고 철저한 작업"이라고 평했다. 

또한 임헌영 소장은 연구원들에게 "자신의 할아버지를 명단에 올린단 생각으로 선정과 서술에 신중을 기울여 달라"라고 말해왔다. 실제로 임 소장은 자신의 스승인 평론가 백철을, 민족문제연구소의 정신적 뿌리인 임종국 선생은 자신의 부친을 '친일인명사전'에 올렸다. 이 외에도 여러 사례가 있다고 한다.

조 사무총장은 "외부에만 가혹한 게 아니라, 우리 내부구성원부터 이 정도로 엄격했다. 내부구성원부터 극복하고자 했다. 개인 및 유족에겐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힘든 작업인 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임했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용기 있게 대면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부도덕한 기득권의 역사청산 저지 기도, 국민들이 막아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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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1년이 늦어진 끝에 올해 광복절 발간 일정도 어기게 되었습니다. 사전편찬을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과 발간을 고대하고 계신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올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8월 초 5,000여 명의 회원들에게 사과편지를 보냈다.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편찬이 시작된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이 계속해서 늦춰졌기 때문이다. 조세열 사무총장은 발간이 미뤄지는 이유로 방대한 작업분량을 꼽았다. 조 사무총장은 "학계의 인정은 물론 역사적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상근자들의 사명감이 완벽주의로 발현되면서 거꾸로 지연요소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 외에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1991년에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는 민간연구소이다 보니 물적, 인적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조 사무총장은 "부족한 재정으로 연구자들이 각종 용역사업을 병행하지 않으면 연구소 운영이 불가능하다. 상근연구자들이 편찬 작업에만 전념하지 못했고 이 같은 현실은 원고 접수 지연과 집필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IMF 경제 한파로 회원의 80%가 급감했던 1997년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2003년, IMF 시기보다 더 충격적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여야 협의로 국회에서 편성했던 사전편찬 기초사업인 '일제단체인물연구'에 대한 지원 예산을 한나라당이 전액 삭감한 것이다. 조 사무총장은 한나라당의 예산삭감 행위에 대해 "부도덕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수구세력들이 자신들의 추악한 본질을 은폐하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역사청산을 저지하려는 기도"라고 평했다.

하지만 자칫 꺼져버릴 수도 있었던 과거청산작업의 불씨를 되살린 건 일반 국민들이었다. 2004년 초 벌어진 국민모금운동에서 삭감된 5억 원을 넘어서는 7억 원의 후원금이 모인 것이다.

조 사무총장은 "국민들께 의지해서 추진할 수밖에 없다. '친일인명사전'의 가시화에 큰 기반이 되어준 국민들께 다시금 감사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역사를 바로 잡을 큰 충격될 것"

 2004년 초 벌어진 국민모금운동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삭감된 5억 원의 예산을 넘어서는 7억 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당시 <오마이뉴스>에서는 모금운동이 활발히 진행됐다. 사진은 당시 <오마이뉴스> 기사들.
 2004년 초 벌어진 국민모금운동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삭감된 5억 원의 예산을 넘어서는 7억 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당시 <오마이뉴스>에서는 모금운동이 활발히 진행됐다. 사진은 당시 <오마이뉴스>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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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향한 첫걸음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은 18년이란 긴 시간의 노력 끝에 이루어진 성과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를 '첫걸음'일 뿐이라고 말한다. 조세열 사무총장은 "인명사전 출간은 편찬사업의 시작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연구·논의를 위해 화두를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장기적인 꿈을 꾸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 이후로 총론편, 단체·기구편, 자료편, 도록, 별권 등의 편찬을 계획했다. 또한 근현대 인물과 단체, 지역의 역사를 담은 자료들이 모인 '민중생활역사관' 건립도 준비중이다.

조 사무총장은 "인명사전 작업 전체가 학술적인데 역사 대중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민중생활역사관이 일제식민통치와 왜곡된 근현대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시민 역사교육의 장이 되길 바란다. 또한 쉽게 풀어쓴 '친일인명사전'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몇 차례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연기로 인해 반민특위 와해 이후 60여 년 만에 이루어지는 역사 바로세우기가 좌절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들에게 "마지막 산고로 여기시고 끝까지 믿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원고가 모두 취합되었고 최종 교열, 통일성 확보 작업만 남아있다고 한다.

조 사무총장은 "사회 각 분야에 전방위에, 우리 지성사에 충격적인 기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광복 64주년, 굴절된 우리 근현대사를 바로잡을 큰 충격이 코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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