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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퇴하는 민주주의
 후퇴하는 민주주의
ⓒ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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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내가 소개하기는 좀 거시기하다. 왜냐면 내가 발행인으로 있는 <작은책>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인데 이 책이 좋다고 이야기하면 아무래도 쑥스럽지 않은가.

그래도 뻔뻔스럽게 내가 다른 책보다 이 책을 먼저 소개하고 싶은 까닭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내가 강연을 기획했지만 책은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 둘째는, 내가 다 들었던 강연이었지만 책으로 나와 다시 읽어 보니, 다시 한 번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짧은지. 게다가 강연과 책이, 다시 말해 '말'과 '글'이 이렇게 느낌이 다르고 이해가 깊이 있게 다가오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후퇴하는 민주주의>, 이 책은 여섯 분이 강연한 내용을 묶고, 하종강, 서경식 선생이 나눈 이야기를 풀어 쓴 책이다. 책을 낸 곳은 '철수와영희'. 처음엔 '무슨 출판사 이름이 이래?' 했는데 지금은 이름 외우기가 너무 좋아 "괜∼찮다" 하고 칭찬이 자자한 곳이다. 철수와영희에서 나온 책을 보면 출판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1%의 대한민국> 이런 책들을 냈다. '한 달 안에 1억 버는 법' 뭐 이런 식으로 부자 되라고 꼬시는 책이 아니라서 대박이 날 만한 조짐은 티끌도 없다. 그나마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라는 책이 국방부에서 불온도서로 '추천'해 주는 바람에 판매 부수가 만 부가 훌쩍 넘었다.

<후퇴하는 민주주의>에서 강연한 분들은 손석춘, 김규항, 박노자, 손낙구, 김상봉, 김송이 선생이다. 그 뒤에 나오는 하종강, 서경식 선생은 말할 필요도 없이 사회에 웬만한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분들을 모를 리 없을 게다. 그 가운데 김송이 선생이 조금 낯설겠지만 혹시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낫짱이 간다>를 보신 분들은 '앗! 이분이 그분이야?' 하고 놀라실 게다. 유명한 만화책 <맨발의 겐>도 번역했다. 총련에 속한 재일동포로 조선 학교에서 28년 동안 교사 생활을 했다. 현재는 일본 학교에서 조선어 강사를 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간다. 그 이가 강연에서 한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였을까.

마르크스, 미래 사회의 유일한 희망은 ~였다

여섯 분이 한 강연 이야기를 여기서 다 풀 수는 없지만 독자들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게 하려면 몇 가지는 소개해 드려야겠다. 손석춘 선생이 한 강연 '혁명은 다가오는가'에서 나온 질문들. 혹시 이명박이 표를 많이 얻어서 대통령에 당선된 걸로 아시는 분이 계시는가? 천만에, 전체 유권자 가운데 3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과반수도 안 된 표로 한 나라의 대통령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선거도 그렇게는 안 한다. '마르크스에게 미래 사회의 유일한 희망은 ∼였다.' 여기서 '∼' 들어갈 답은 노동계급일까? 손석춘 선생은 '아니다'라고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준다. 그 답을 정확히 알고 시민사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답은 무엇일까.

김규항 선생은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선생은, 진보란 사회가 더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말문을 연다. 하지만 '국익'이라고 포장한 지배 계급과 대다수의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김규항 선생은, 우리가 행복하려면 '우리 안의 이명박'부터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우리 안의 이명박'이 뭘까. 이명박이 0교시, 학교 자율화, 학교 서열화 하니까 '이명박이 아이들 다 죽인다' 하고 비판했는데 김규항 선생은, 진즉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들이 다 죽이고 있었다고 밝힌다. 군사 파시즘보다 자본의 내면화가 더 무섭다는 것이다. '내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해. 서울대도 문제없어' 하는 착각이 우리 안의 이명박일까?

책을 읽으면서 궁금하다 싶으면 강연 때 질문한 분들이 대신 물어 준다. '전 대학생이고요, 초등학교 다니는 막냇동생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엄마 같은 마음이 있어요. 그 동생이 날마다 학원을 세 군데나 다니는데 엄마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요?' 강연장은 웃음바다가 되고 김규항 선생은 진지하고 명쾌한 답을 내 놓는다.

박노자는 왜 한국이 좋다면서 노르웨이에서 살까

박노자 선생은 한국이 좋다면서 왜 노르웨이에서 살까? 정규직 취직이 어렵기 때문이란다. 선생 같은 분이 대학에서 교수로 취직이 안 되는 이유? 그건 요즘 이후에서 나온 책 <비정규 교수의 벼랑 끝 32년>이라는 책을 봐야 알 수 있다. 박노자 선생은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한국에서 너무 가볍게 다뤄지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서 별의별 운동이 많은데 단 두 가지는 없었다고 한다. '서울대 안 가기 운동'과 '동문회 같은 연고 집단 불가입 운동'. 선생은 왜 이런 운동을 권유하는 걸까. 그렇잖아도 요즘 내 메일에 들어온 제목 한 가지를 보면 "○○동창 모임의 발전을 위하여"이다. 선생이 한 말을 듣고 이 모임에도 탈퇴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손낙구 선생은 '집이 많은 놈, 집은 있는 놈, 집도 없는 놈'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제목을 영화 '놈, 놈, 놈'에서 패러디해 내가 지었는데 가장 섹시하게 지었다고 손낙구 선생이 칭찬했다. 선생은 국민들을 모두 6계급으로 나누었는데 책을 보면서 독자 분들은 어느 부류에 속하시는지 판단해 보시기 바란다. 혹시 술 취하면 찾아가는 제 3계급이 아니신지? 3계급은 '유주택 전월세'라고 한다. 어디에 자기 집을 사 놨는데 도저히 은행 이자가 감당 안 돼서 그 집 세 놓고 작은 셋방으로 이사 가서 사는 사람들이란다.

제1계급인, '집이 많은 놈'은 집값이 오르면 무조건 좋지만, 이분들은 집값이 오르거나 내리면 어떨까? 아주 헛갈리지만 답은 있다고 한다. 그나저나 한국에는 전 국민이 집을 한 채씩 갖고도 103만 채가 남아돈다고 한다. 설마? 정확한 통계다. 손낙구 선생은 심상정 의원 보좌관으로 4년 동안 일하면서 부동산 문제에 전문가가 다 됐다. 그럼 집 많은 놈은 도대체 집을 몇 채 가지고 있을까? 가장 비싼 집은? 가장 싼 집은? 한국에서 가장 건물 부자는 누굴까? 하나만 대답하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집 많은 놈은 1083채라고 한다. 천팔십삼 채! 집 장사하는 놈이 아니고 그냥 개인이란다. "씁쓸한 인생." 손낙구 선생은 이런 것들을 그저 밝히는 데만 머물지 않았다. 대안이 아주 명확하다. 한국의 빈부 격차를 70∼80퍼센트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섯 분이 모두 분야가 다르다. 그런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모두 비슷한 지점에서 만난다. 김상봉 선생의 이야기도 김규항 선생과 박노자 선생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벌 철폐를 이야기하면서 김상봉 선생은 히딩크와 박지성을 보기로 들었다. 히딩크가 한국에 와서 성공한 것은 학벌 무시, 위계질서 무시하고 박지성을 뽑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교육은 이제 물 건너갔다고 비판했는데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말한 '공교육은 착실하게 준비된 공장 노동자를 대량 배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맥락과 비슷했다. 김상봉 선생은 이 체제 내에서 낙오를 하자고 선동(?)했다.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신나게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한 삶이라고 말했다. 그 강연을 들은 우리 작은책 독자 김○○ 학생. 그때 고3이었는데 그 말 듣고 바로 '낙오'를 결심했다. 그리고 지난해 촛불집회 현장에서 사는 모습을 봤다. "남미야, 요즘 뭐하니? 작은책에 와서 일하자!" 헉, 내가 이름을 불렀나?

하종강과 서경식, 우리 둘레를 말하다

 독자사업부 정인열씨. 얼마 전까지도 코스콤 노동조합 부위원장으로서 20일이 넘게 단식 투쟁도 하고, 3층 높이 철제구조물과 한강 관제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던 투사였다
 독자사업부 정인열씨. 얼마 전까지도 코스콤 노동조합 부위원장으로서 20일이 넘게 단식 투쟁도 하고, 3층 높이 철제구조물과 한강 관제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던 투사였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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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과 서경식 선생 이 두 분의 대화 자리는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마련했다. 두 분은, 우리 둘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서경식 선생은 한국에서 늘상 일어나는 이야기조차 충격이다. 용산 철거민들을 벌건 대낮에 불에 태워 학살하는 짓거리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완전무장한 경찰과 깡패들이 쇠몽둥이로, 테이저 건으로 헬기로, 최루액으로 진압하는 걸 이해할 수 있을까?

서경식 선생은 한국에서 1970년대에 가장 야만적인 군사 정권과 타협하지 않고 싸우는 시민들이 있었다는 것이 자신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80년대 말의 파업이나 투쟁 때마다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다고 했다. 그러면 뭐 하나. 80년대 같은 시대가 돌아왔으니……. <후퇴하는 민주주의>. 이명박 시대에 우리는 더욱 투사가 돼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작은책>도 준비를 했다. 학생 운동권에서 이름 날렸던(?) 꼴통 최규화에 이어서 정인열씨를 스카우트했다. 독자사업부에서 일하는 정인열씨, 피부 곱고 예쁜 옷 입고, 얌전하고 아주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도 코스콤 노동조합 부위원장으로서 20일이 넘게 단식 투쟁도 하고, 3층 높이 철제구조물과 한강 관제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던 투사였다. 한겨레 기획위원인 홍세화 선생은 "아니, 정 투사 같은 인물을 어떻게 작은책에서 스카우트 했어?"하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홍샘! 작은책을 무시하는 건 아니죠?"

<후퇴하는 민주주의>. 부제 '서른 살, 사회 과학을 만나다'. 책 제목이 나왔을 때 시큰둥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이 없겠다 싶다. 실천하는 지식인 여섯 분이 쓴 글을 몇 번이나 보면서, 내가 이 사회를 더욱 깊이 있게 깨달아 가는 듯해 기분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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