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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시내의 아침은 비교적 선선했다. 한낮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더웠지만.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하얀 히말라야 설산을 볼 수 있다는 해발 2500여m의 나자르코티다.

 

부다나트 사원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중심이자 성지인 부다나트 티베트 사원의 전경

네팔에 거주하는 티베트인들의 성지인 부다나트

 

호텔을 나와 먼저 티베트 사원인 '부다나트' 사원으로 향했다. 정문을 통과하자 '부다의 눈'이 그려진 웅장한 하얀 사원이 버티고 있다. 이 '부다의 눈'은 힌두사원을 제외한 네팔의 불교사원에서 만나는 '부처의 눈'이며 히말라야와 함께 네팔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아침 6시와 오후 6시쯤엔 오체투지 기도행렬이 사원을 돌며 이뤄진다고 한다. 이곳 사원의 역사는 1500년 정도로 하얀 석회석으로 덮여져 있으며 석가의 뼈 사리가 보존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일본불교협회에서는 사실상 발굴의뢰를 압박하고 있다는 곳이다.

 

이 사원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난민신세가 된 티베트인들이 상가를 이루며 집단을 이루고 있다. 네팔에 거주하는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중심이자 성지로서 가족단위로 찾은 그들의 행렬이 자주 눈에 띄었다. 주변 상가에도 만다라 상점 등 티베트인들의 손재주가 넘치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다.

 

부다나트 사원 앞 거리 중국의 핍박을 피해 난민 신세가 된 티베트인들은 이곳 부다나트 사원을 중심으로 집단 거주하며 기념품 등을 생산 판매하거나 각종 상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식당에서 점심으로 티베트 음식을 시켰고 '락시'라고 불리는 술도 맛보았다. 맑은 빛의 술맛이 낯설지 않지만 도수가 높은 듯 넘어가는 목구멍이 금방 뜨거워졌다. 최근 부드러워진 우리 소주보다는 훨씬 독하다.

 

원하락난민촌 카트만두 공항 근처 하천가 저지대에 자리잡은 난민촌 골목

내전과 풍수해 피해로 집단촌을 이루고 있는 원하락난민촌

 

다음 행선지는 공항근처인 '원하락' 난민촌이다. 마오주의 반군과 왕정군의 내전으로 삶의 터전을 버리거나 빼앗기고 쫓겨온 난민들과 각종 풍수해 피해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4년 전부터 집단을 이루고 있다.

 

750가구 4천여 명의 주민들이 집터 보다 높은 작은 냇가에서 모래를 채취해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난민촌은 폭우라도 쏟아지면 강이 넘쳐들 것 같은 위태로운 곳에 터전을 잡고 있었다. 입구에는 '밥퍼 Dail'이 쓰인 간이식당이 반갑게 맞고 있다. 최일도 목사가 이끄는 다일공동체에서 지어준 것이다.

 

 마을로 들어서자 진흙 골목길과 생활하수가 흐르는 엉성한 물길이 과거 서울 변두리 판자촌마을이나 강남의 구룡마을을 연상케 했다. 20m정도의 지하수를 파서 사용하는 간이 펌프 물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오염여부가 걱정될 정도로 열악했다.

 

난민촌 학교 난민촌 한가운데 우리의 정성과 손길이 닿은 사르소티 초등학교가 세워져 있다.

원하락 난민촌 카트만두 공항 근처 하천가에 자리 잡은 난민촌 입구에 다일 공동체가 지어준 간이식당이 들어서 있다.

원하락 난민촌 난민촌은 이 하천 옆 저지대에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고 20m 정도의 오염된 자하수를 사용할 정도로 열악한 상태였다.

난민촌 한 가운데 '사르소티'초등학교가 있는데 한국에서 지어준 건물로 창문도 없는 교실 3칸과 사무실이 전부다. 운동장도 없는 말 그대로 난민촌 임시학교지만 130명의 학생들과 정부에서 파견된 교사, 자원봉사자들이 그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르치고 있다.

 

이 학교건물도 한국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에서 지어준 것이다. 우리의 정성과 사랑이 이국만리까지 미친 흔적이 자랑스럽다. 이곳에는 그외에도 아시아인권문화연대와 인천사랑병원, 외국인노동자관광협회, 그리고 네팔 현지NGO 단체인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의료 등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 어르존(이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 사무국장)씨의 설명이다. 

 

학교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난민촌 대표가 열쇠를 가져와 학교대문을 열어줬다. 교실에는 엉성한 나무책걸상과 작은 칠판이 전부다. 마침 낯선 손님들의 방문이 신기한 듯 따라온 어린 소녀의 손에는 연필 한자루가 쥐어져 있다.

 

어르존씨는 "최근에서야 정식학교로 인가받아 교사가 파견되고 있다"며 "학용품 등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마을 대표도 "오염되지 않은 식수를 제공할 수 있는 온전한 우물이 절실하다"고 했다. 전기시설도 인권단체가 나서서 최근 공사를 마쳤다. 문제는 건강을 헤치는 물인데, 정말 보기 안타까웠다.

 

박타하르왕궁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박타하르 왕궁은 네팔 최초로 통일국가를 세운 네하르족의 말라왕조 왕궁으로 1500년 정도 된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박타하르 왕궁

 

우리는 무거워진 마음을 추슬러 나자르코티로 향하면서 외곽지역에 위치한 '박타푸르'왕궁을 찾았다. 1500여 년전 네하르족을 통일한 말라왕조의 힌두왕궁이다.

 

왕궁건물의 일부는 아직도 학교와 경찰서로 사용되고 있다. 고대왕궁이 유물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네팔에는 이렇게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찬란했던 그들의 역사현장이 마치 시민공원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이 의아했지만 한편으로는 외세의 침략 없이 잘 보존되고 있는 현실이 부러웠다.

 

한가지 흠이라면 입장료가 10달러에 달해 관광코스로 꺼린다는 점이다. 다른 곳에 비해 지나친 바가지 요금이다. 10달러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정당하게 입장료를 받고 그에 걸맞는 서비스와 편의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네팔 여행에서 가장 불편한 점은 화장실인데, 박타하르 왕궁 입구 주차장에 있는 간이화장실도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박타하르 왕궁 왕비 전용 목욕탕이 웅장하고 화려하다. 수호신으로 등장하는 코브라 상은 네팔 고대왕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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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필

산촌마을 해발 2500m 고지대인 나자르코티에서 바라본 산촌마을의 평화로운 정경

다시 길을 재촉해 산길로 오르자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강가에 들어선 난민촌 옆 하천이 범람할까 걱정이다. 다행히 저 산아래 도시와 산간지역의 우기는 다른 모양이다. 한시간 정도 가파른 길을 계속 오르고 또 오른다. 오를수록 산 아래 띄엄띄엄 들어선 산마을 집들이 작아지면서도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어쩌면 산은 네팔사람들의 터전이고 삶이고 정신이고 희망일 것이다. 화전을 일구고 산양을 키워 우유를 얻어내는 생존의 현장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주식은 감자와 옥수수라고 한다. 지리산 자락인 구례에서나 볼 수 있는 다랭이논도 반갑다. 쌀도 훅 불면 날아갈 것 처럼 가늘고 긴 '자바니카'종이다. 농기계라고는 가끔 경운기가 보일 정도다.

 

계속 오를수록 빗줄기가 굵어진다. 그렇다고 출국하기 전까지 수시로 쏟아지던 폭우는 아니다. 구불구불 오르는 산길 곳곳에는 휴게소가 있다. '레스토랑'간판을 달았지만 산을 오르고 내리는 트레킹 여행족이나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잠시 비를 피할 수 있는 도로휴게소다.

 

정상부근에 있는 컨츄리빌라 호텔에 도착하자 비는 멈췄다. 호텔 라운지로 들어서니 창밖 산 아래는 온통 하얀 구름밭이 펼쳐져 있다. 구름 위에 떠있는 느낌이 너무 편안하고 공기도 산뜻하고 맑다.

 

나자르코티 해발 2500m 고지대인 나자르코티 컨츄리빌라 호텔에서 바라본 전경

나자르코티에서 저녁무렵 무지개를, 아침에는 히말라야 일출을

 

객실에 짐을 풀고 나자, 운무가 조금 걷히더니 일곱 색깔 무지개가 눈 앞에 펼쳐졌다. 얼마 만에 보는 무지개인가. 어린 시절 장마 후에 가끔 보던 무지개를 이곳에서 만난 것은 어쩌면 다음날 아침 히말라야의 일출을 보는 행운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물론 그 행운은 저버리지 않았지만.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자 다시 비가 내렸다. 내일 아침 히말라야의 일출은 물 건너 간 것일까.

 

어둠이 밀려오자 구름이 걷힌 산마을에도 집집마다 불이 하나 둘 켜졌다. 전기사정이 좋지 않은 듯 호텔은 한 번 정전이 되더니 발전기 소음이 들려왔고 산마을 주택들도 8시가 넘자 불이 꺼졌다. 적막이다. 하지만 과거 우리의 6,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 왠지 정겹기만 하다. 산새들도 잠든 고요를 빗줄기가 흐트러 놓고 있다.

 

내일 아침 5시 모닝벨이 울리면 일출과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호텔 라운지에서 노트북을 꺼내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다. 속도는 조금 느리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잠시 메일과 국내 뉴스를 검색하고 문자도 몇 개 보내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어둠 속에서 객실전화가 요란하게 울린다. 불을 켜니 5시다. 어제 본 무지개가 가져다 준 행운인가. 베란다로 나가니 군데군데 녹은 흔적이 뚜렷하지만 하얀 설산과 고운 햇살이 탄성을 내지르게 했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카메라와 캠코더를 꺼내 들었다.

 

히말라야 아침 5시 호텔 베란다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설산의 아름다운 전경

히말라야 일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솟아 오르는 일출광경

ⓒ 최경필

좌측의 안나푸르나부터 마나슬루, 랑탕 등 고산들이 한눈에 펼쳐졌다. 아쉽게도 초호유나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 등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며칠 전 故 고미영 대장을 삼켜버린 낭가파르바트는 아예 시야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벌거숭이 산'이란 뜻을 가진 낭가파르바트는 1953년 오스트리아 등반가 헤르만 불에게 정상정복을 내준 이후 30명이 넘는 도전자들의 꿈을 앗아갔다.

 

그래도 수줍어서 인지 아니면 이방인에 대한 자존심인지 모르지만 절반만 살포시 보여준 히말라야의 광경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다. 이곳은 연평균 13도의 고지대지만 평지와 다름없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 최근에는 허니문여행 코스로도 인기를 얻을 정도로 전망이 좋고 무엇보다 조용하며 네팔의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아침의 희열을 뒤로 하며 다시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포터(짐꾼)와 함께 도보로 내려오는 유럽 트레킹여행객들의 모습이 여유롭고 조금 부러웠다. 오늘은 파탄왕궁과 힌두사원이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여행의 취재에 협조해주신 네팔 간다키여행사와 한국 한네인여행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은 <힌두사원에서 만난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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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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