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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무엇일까? 피라미드, 스핑크스, 파라오, 나일강? 이런 여러 가지 단어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미라이다. 미라는 이집트 문명이 다른 문명과 대비되는 매우 독특한 색채를 가진 대표 아이콘이다. 물론 최근 들어 다른 문명권에서도 미라가 보고되어 있어, 반드시 이집트의 전유물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다른 문명권과 비교해도 그 엄청난 양과 정교한 미라는 역시 독특한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번 이집트 문명전이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이집트 미라를 전시한다는 점에서였다. 미라는 보존 및 관리에서 굉장히 신경을 써야 하고, 이를 운반하고 또 전시하는 일도 보통 힘든 게 아니기 때문에 바깥나들이가 사실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까지 가져와 일반인들에게 전시를 하는 소중한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관은 다른 문명권에 비해서 독특하고, 또한 복잡하였다. 다른 문명권에서는 인간을 육신과 혼으로 구분하지만, 이집트에서는 '카'라는 개념을 집어넣어 3가지로 분류한다. 이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어야 미라를 왜 만들고, 또 이집트인들이 사후세계를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알 수 있다.

[사자의 서] 사자(死者)의 무죄를 증명하는 마법의 주문을 기록하다

위의 사진이 <펜카스의 ‘사자의 서’ 일부>, 아래의 사진이 <서기 파이네페르네페르의 ‘사자의 서’>이다.
▲ 사자의 서. 위의 사진이 <펜카스의 ‘사자의 서’ 일부>, 아래의 사진이 <서기 파이네페르네페르의 ‘사자의 서’>이다.
ⓒ 파라오와 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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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서'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많지만 이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죽은 자와 관련된 문서려니 하면서 대강 넘어가기 일쑤인데, 생각보다 꽤 복잡한 의미를 지닌 문서이다. 사자의 서는 사자가 명계의 심판에서 무죄가 되기 위한 주문을 자세히 기록한 책을 말한다. 본래 왕에게만 허용된 것이 점차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퍼졌다. 주로 파피루스에 기록돼 두루마리 책으로 만들어져 미라와 함께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번 문명전에 소개된 사자의 서 2점을 살펴보자.

<펜카스의 '사자의 서' 일부>를 보면 글로만 적혀 있다. 여기에 적힌 것은 히에라틱이라는 문자로, 흘려서 쓴 것이다. 이집트 문자는 히에로글리프(신성문자), 히에라틱(신관문자), 데모틱(민중문자)로 나눠지는데, 사자의 서는 주로 히에라틱으로 쓰인다. 이 유물엔 글씨만 쓰여 있지만, 실제로는 저승을 보여주는 그림들도 여럿 그려진다.

<서기 파이네페르네페르의 '사자의 서'>는 앞서 본 유물과는 달리 저승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시 파피루스에 적혀 있으며 사진에 나온 것은 일부고, 실제로는 길이가 254.7㎝나 되는 유물이다. 사자의 서는 관에 놓이거나 바깥쪽 미라붕대에 함께 묶어 놓는다. 파피루스에 별도로 사자의 서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미라 붕대에 써 놓는 경우도 더러 볼 수 있다.

[가짜문] 이집트인들은 왜 가짜문을 만들었을까?

가짜문은 육신이 나간 '카'에 영혼인 '바'가 들락날락 거리는 문이다.
▲ 가짜문. 가짜문은 육신이 나간 '카'에 영혼인 '바'가 들락날락 거리는 문이다.
ⓒ 파라오와 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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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문>이라는 유물은 뭔가 기묘하다. 왜 굳이 이런 유물을 만들어 놓은 것일까? 말 그대로 실제로는 들어갈 수도 없이 꽉 막혀 있지만 문 모양으로 조각해 놓았다. 그것도 무려 4천 년 전 유물이다. 이 기묘한 유물은 사실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관을 말해주는 매우 중요한 유물로서, 그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집트의 사후관은 다른 문명에 비해 매우 독특하다. 일반 문명에서는 육신과 혼으로 인간이 이뤄졌다고 생각하지만, 이집트에서는 '아크트(육신)'과 '바(혼)', 그리고 '카'라는 존재로 인간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카의 개념은 매우 낯설고 복잡한데, 이른바 '본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카'라는 본질에 육신과 바가 붙어 있는데, 죽게 되면 육신은 썩고, 바는 저승으로 가게 된다. 그럼 '카'가 존재할 곳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를 대비하여 아크트를 대신하는 육신, 즉 미라를 만들게 되고, '카'는 이곳에 머무는 것이다.

그럼 육신은 미라로 대체되었다고 했을 때, '바'가 '카'로 돌아온다면 어디를 통해서 돌아와야 할까? 그 통로가 바로 가짜문이라는 유물이고, 이는 현세와 내세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가짜문이라는 유물의 정 가운데에 있는 두루마리 사이로 날개 달린 '바'가 들락날락 거리며, 이 앞에서 제사를 지내 죽은 자가 제물을 상징적으로 취할 수 있게 한다.

[카노푸스 단지] 죽은 자의 내장을 보관하는 곳은 따로 있다?

미라를 만들 때 내장을 제거하는데, 그 내장을 보관하는 단지가 바로 카노푸스 단지이다.
▲ 카노푸스 단지 미라를 만들 때 내장을 제거하는데, 그 내장을 보관하는 단지가 바로 카노푸스 단지이다.
ⓒ 파라오와 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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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들 때 몇몇 내장들은 일부러 따로 보관되었다.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부러 꺼내어 용기에 담았는데, 그 용기들을 <카노푸스 단지>라고 부른다. 이집트인들은 이렇게 함으로서 내세에서 완전한 육체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카노푸스 단지는 주로 4개의 단지로 나타나며 이들은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카노푸스 단지의 뚜껑은 호루스의 네 아들로 표현되는데, 이들은 아누비스에게 미라를 만드는 법을 전수받고 또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머리를 한 이메스티, 비비의 머리를 한 하피, 자칼의 머리를 한 두아무테프, 매의 머리를 한 케베크세누에프가 바로 호루스의 네 아들이며, 이들 속에는 간, 허파, 위, 창자가 들어갔다.

후대에 와서는 이러한 신앙도 점차 사라지고 미라에서 굳이 내장을 빼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상은 남아 있었기에 카노푸스 단지라는 형태만 남아 미라의 옆을 지키게 되었다. 혹은 카노푸스 상자라는 이름으로 나무 상자를 만들어 카노푸스 단지를 대신하기도 하였다.

[네스콘수의 미라] 두 아이와 미라가 된 여인에겐 어떤 사연이?

왼쪽부터 내관, 미라, 그리고 엑스레이 촬영 사진이다. 이집트의 관은 마르토시카 인형처럼 겹겹히 만들어 진 게 특징이다.
▲ 네스콘수의 미라 왼쪽부터 내관, 미라, 그리고 엑스레이 촬영 사진이다. 이집트의 관은 마르토시카 인형처럼 겹겹히 만들어 진 게 특징이다.
ⓒ 파라오와 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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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집트 문명전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미라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미라는 문화컨텐츠나 여러 방면으로 우리에게 소개돼 낯설지 않은 존재이지만, 그 실제 모습을 본 사람들은 많지 않아 늘 호기심의 대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특별전을 통해 미라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은 큰 흥미를 자아내고, 이집트 문명전을 사람들이 찾는 주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여러 미라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이 중에서 네스콘수의 미라는 좀 특별하다. 미라는 내관 속에 들어가 있으며, 이 내관은 외관 속에 들어가 있다. 네스콘수의 미라는 내관과 미라가 남아 진열되어 있으며, 이 속에는 25~35 사이에 사망한 여성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 여성 뿐만 아니라 엑스레이 촬영결과 2명의 아이도 들어있다고 한다.

이 2명의 아이는 신생아로 보이며 다리 사이에 있다. 왜 여인 뿐만 아닌 아이들도 미라가 되어 있는 것일까? 아마 이 여인은 두 아이를 출생하다가 그만 죽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두 아이를 쌍둥이로 보기도 하는데, 결국 아이들도 죽어버려 함께 미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장면을 바라보면 여인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는 그 기분이 어떠했을까? 크디큰 슬픔에 잠기고 여인과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느꼈으리라. 그랬기에 더욱더 미라를 화려하게 만듦으로서 내세에서는 행복하길 기원하지 않았을까?

[여성미라] 미라의 얼굴을 직접 보다

아마포 사이로 보이는 검은 얼굴이 섬뜩해 보인다. 이번 이집트문명전에서 직접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미라이다.
▲ 여성미라. 아마포 사이로 보이는 검은 얼굴이 섬뜩해 보인다. 이번 이집트문명전에서 직접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미라이다.
ⓒ 파라오와 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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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문명전의 미라 중에서 그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미라가 있다. 여성미라라는 이름의 이 미라는 아마포에 둘러싸인 미라로 이 중 안면부분을 둥그렇게 오려내어 그 '쌩얼'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눈 부분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눈알을 빼고 역청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엑스레이 촬영결과 이 여성은 20~25세의 나이였다는 게 알려졌다. 키가 167㎝ 정도 되는데 몸무게가 28㎏이라는 점을 볼 때 얼마나 건조되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집트의 미라는 본래 건조한 기후에서 자연적으로 시신이 건조되어 미라가 되는 것을 본 이집트인들이, 좀 더 부패를 막는 방편으로 내장을 제거하고 탈수하면서, 특유의 사후관의 정립과 더불어 미라 제작이 체계화된 것이다. 그래서 후에는 미라를 3등급으로 나눠서 그 급에 따라 미라를 제작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금전적인 요구가 필요하였고, 비싸면 비쌀수록 더욱더 체계적인 방법과 보석을 동원한 치장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선조들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굴꾼이 된 후손들의 목표는 그런 고급 미라였다. 고급 미라들은 보석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이 되어 있었기에 약탈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고, 이는 고대 이집트 때부터 지속되었다. 결국 오늘날 남아 있는 당시 최상급의 미라는 곳곳이 훼손된 벌거벗겨진 만신창이들이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이집트의 미라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기괴하다. 이집트 문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미라이며, 이를 만들어낸 파라오와 이집트인들은 알면 알수록 신기한 점들이 많다. 아직도 이집트 문명에 대해서는 활발한 발굴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오늘날 고고학 형성에도 이집트학은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집트는 문화재에 관해서 슬픈 역사를 다수 지니고 있다. 직접 발굴한 것보다도 약탈과 도굴, 강대국들에 의한 강탈로 처참하게 그 몰골이 찢긴 경우가 많다.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성립하는 과정에서 이집트는 여러모로 훼손을 당하게 되었으며, 이역만리로 문화재들이 반출되었다. 이번 문명전도 이집트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에서 빌렸다는 점에서 씁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뛰어난 문화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발굴과 관리, 연구가 부족하면 결국 우리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문화재는 인류 모두의 자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조상들의 유산이기도 하다. 조상들의 유산을 잘 지키고 보존하라는 것. 이집트는 사실 그걸 말해주고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5월 30일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문명전에 갔다와서 쓴 글입니다. 이집트의 미라와 사후관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이집트문명전은 4월 28일부터 8월 30일까지 전시되며, 현재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특별 야간개장 하고 있습니다.



태그:#파라오와 미라, #이집트, #이집트문명전, #미라,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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