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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왜 가려운지, 이유를 알 수 있다면


욥은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욥은 정직하고 근면했으므로 추수할 것이 많았다. 그는 선량한 주인이기도 해서 땀 흘려 농사지은 종들에게는 늘 넉넉한 삯을 치렀다. 욥의 자손들도 모두 번성하였고 근심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하나님의 시험이 내려졌다. 가진 재산을 모두 몰수당했고, 자손들도 떠나갔다. 섬기던 종들도 모두 사라졌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지 모른다. 진짜 고통은 몸으로 왔다. 욥은 욕창에 시달렸다. 몸이 견딜 수 있는 극한의 고통을 실험하듯 욥의 몸은 피고름으로 범벅이 되었고, 가려웠다. 긁고 또 긁었고 손톱이 파낸 피부의 자국마다 피가 흘렀다. 그러나 욥의 진짜 고통은 왜 이 까닭모를 시련이 자신에게 왔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욥은 울부짖었다.

심찬이가 뒷목을 긁고 있다. 목만 긁는 게 아니라 가만 보니 셔츠 안에 손을 놓고 배를, 등 뒤를 옆구리를 긁는다. 욥처럼. 몸이 좀 나아질까 싶어 참가한 단식캠프에서 심찬이는 체질개선을 위한 오롯한 단식마저도 꿈꾸지 못했다. 심찬이는 야채효소로만 버틸 수 없어 소량의 죽을 먹으면서 단식에 참여해야 한다. 심찬이는 멀건 죽을 앞에 놓고 꽤 오랫동안 온 몸을 긁고만 있다. 맥없이 심찬이를 바라보는 엄마. 엄마의 얼굴은 너무 오랫동안 심찬이의 가려움을 자신의 고통으로 감내해온 듯 피로하고 무연하다. 심찬이는 엄마의 시선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겨우 한 숟가락 정도를 떴다. 심찬이는 이름처럼 심(힘)찬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곡기 끊은 사람들

(사)수수팥떡에서 "내 몸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5박 6일의 단식캠프를 연다기에 안내문을 두 번 보지도 않고 참가 신청서를 넣었다. 전에 즐기지 않던 가공식품들이며 단 음식들이 입에 당겼고 부쩍 과식이 잦아졌다. 위는 소화를 못시킨다며 체기로 몸의 상태를 알렸지만 입은 막무가내였다. 입과 손은 붙어 있는 것인지 입이 원하면 손이 움직였다. 한 끼 식사를 마치고 나면 더 이상 생각이 없던 빵이며 쿠키는 없어서 못 먹는 음식처럼 욕심을 부렸고 회식 후 바로 뜨던 자리도 먼저 나서서 2차로 향하고 있었다. 몸은 서서히 무거워지기 시작했고 몸이 굼뜨니 움직이기가 싫었다. 갑자기(아니 필연적으로) 매사가 귀찮아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상태를 더 견딜 수 없다는 내 몸 어느 한 구석의 목마른 외침을 내가 아주 '간신히' 들었다는 것이다.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 "굿바이 아토피"의 저자 최민희 대표가 기획한 단식캠프다 보니 단순히 체중감량을 위한 단식은 아닐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캠프는 놀라움 자체였다. 단식은 체중을 감량하겠다는 사람, 이번 기회에 고기를 끊고 생채식을 시작하겠다는 사람, 몸 안의 독소를 제거하고 예뻐지겠다는 사람 등 다양했지만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의 대다수는 아이들의 아토피 치료을 위해 왔다 한다. 참가자들은 백여 명에 가까웠고 이런 취지의 캠프도 벌써 10년째라고 하니 몸과의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아토피의 심각성은 익히 들어왔지만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실제로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아토피는 "이상하다", "낯설다"라는 뜻이 있다는데 가려움에 시달리며 온 몸을 긁는 아이들은 자신에게 벌어진 이 이상한 일을 이해하고 있을까.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이 두려워 여름에도 반팔 한 번 마음 놓고 입어보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고 억울하다고 나와 한 방을 쓰던 여대생은 말했다.

숙변을 빼낸 사람들의 환한 표정 ^^
▲ 수수팥떡 단식 캠프에 참여한 사람들 숙변을 빼낸 사람들의 환한 표정 ^^
ⓒ 수수팥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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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나는 한 몸이었는데

"후라이드 반 양념반", "○○가지 골라먹는 재미",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은 ○○스넥", 텔레비전을 켜면 매일 먹는 광고가 쏟아진다. 강력한 맛의 유혹 앞에 애 어른 할 것 없이 정신줄 놓기 일쑤다. 멜라닌 파동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해도 몇 달 지나면 그뿐, 달콤하고 바삭함에 길들여진 입맛은 어제의 경고를 해제시킨다. 무방비로 노출되는 아이들은 거대한 오염덩어리 세상에서 식품첨가물로 범벅이 된 화려한 음식들을 먹고 마신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의 엄마 아빠가 돼지로 변하고서도 게걸스럽게 먹어대던 음식들이 연상된다.

음식뿐일까. 우리가 잠시 머물다 떠나갈 별, 지구는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칼 세이건이 지구를 명명한 의도와는 다르지만 시적으로 아름답기까지 한 이 "창백한 푸른 점" 지구는 건강하지 못한 인간의 얼굴처럼 날로 창백해지고 있다. 생활의 편리함을 도모하고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인다고 마구 파헤쳐진 지구의 내부는 지금 온 몸으로 상처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그 분노를 내성이 없는 아이들이 최전선에서 몸으로 막아내고 있고 아이들의 피부에서 극점에 이른 것 같다.

무수한 치료의 과정을 거쳐 아토피를 앓는 아이들의 병세가 한때 잠잠해질 때가 있다고 한다(부모들은 여러 번 이 과정을 거쳐서 한동안 아이의 피부가 좋아졌다고 해서 안심하지 않는단다). 그러다가도 예고 없이 아토피는 재발한다. 이렇게 피부가 한 번 "뒤집어"지면 그간의 노력은 무용지물이 된단다. 뒤집어진 피부는 바짝 독이 오르고 그때부터 피부는 빨갛게 달아오른다. 성난 지구가 아이의 피부 속에서 발현된 게 아닌가 싶어 섬뜩하다.

단식, 성찰의 시간

단식은 그러니 단순히 몸에 곡기를 끊고 배고픔을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찰의 시간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우주인 내 몸을 멋대로 부린 것, 우주 안에 말도 안 되는 쓰레기를 구겨 넣은 것, 심지어 쓰레기통을 제때 비우지도 못한 것, 그리고 자신이 낳아 세상에 내놓은 또 다른 우주에게 자신에게 행한 일을 되풀이 한 것. 이러한 성찰이 5박 6일 동안 이루어졌다.

전체 10강으로 구성된 강의는 그러므로 근본으로 회귀하는 시간이었다. 질병의 원인이자 결과인 노폐물과 결석, 종양에 대해 알아보고 몸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물과 소금 비타민을 "다시" 배운다. 학교 때 배웠던 5대 필수영양군이 실체를 갖춰 다가온다. 외모하면 단순히 얼굴이나 미용에 치중해왔던 피부 강의가 아닌 사람의 전체 호흡기관이자 배설기관이기도 한 우리 몸의 옷과 같은 피부에 대해 역시 다시 배운다. 강의 후반에 가면 이제 달라진 몸으로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내 안의 자연치유력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게 살아온 시간들을 다시 꿰맞추는 작업은 힘들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5-6살 아이들은 단식이 진행되는 중간 중간마다 "엄마 배고파 밥 줘~", "이게 뭐야(왜 굶기는 거야), 밥 줘"를 외쳐댔고, 자신들이 왜 이토록 힘든 관장이며 풍욕(이불을 덮고 벗고를 반복하는 요법)을 따라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했다. 실제로 단식 프로그램은 어른들도 수행해내기 벅찬 과제들이다. 새벽 4시 눈을 뜨면 풍욕 2회 실시, 곧바로 근처 대중탕으로 장소를 옮겨 냉온욕(냉탕과 온탕을 1분씩 번갈아가며 10회 이상 실시)을 마치고 돌아와 잠깐의 휴식을 마치면 최민희 대표의 오전 강의가 이어진다. 짬짬이 운동을 해야 했고, 각종 찜질과 관장(개인적으론 이게 가장 힘들었다)이 이어졌다. 이 모든 일정이 아이라고 약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관장을 마치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보는 변 색깔은 유쾌하지 않았다. 그 누리끼리한 색은 숙주인 내 몸에 달라붙어 있던 숙변이었고 숙변의 색은 고스란히 내가 먹었던 음식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방금 화장실을 다녀온 후 마주한 멀건 된장국 색깔은 방금 본 변 색과 다르지 않으니, 아 어쩌란 말이냐. 이쯤 되면 먹고 싸는 구멍의 위치만 다를 뿐, 먹는 것과 내보내는 일이 한 가지라는 걸 알게 된다. 오염에 찌든 나의 몸이여 그러니 이제 그만 노여움을 풀고 주인을 용서하시라.

풍욕은 지루하고 찜질은 힘들다. 짠 식염을 30분 간격으로 챙겨먹는 걸 자꾸 까먹고 관장도 쉽지 않다. 하나도 녹록치 않은 이 일들이 그러나 꼭 필요했던 것은 우리가 그동안 일상을 소홀히 여기고 우습게 여긴 탓이다. 지겹다고 매일 먹는 밥을 먹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어제도 잤으니 오늘은 안 잘 수 있을까.

음식 만들기 귀찮아서 또는 시간에 쫓겨 자주 외식을 한다. 만드는 과정이 번거로워 간편한 인스턴트식품을 택한다. 운동이 몸에 좋은 건 알지만 귀찮아서 자주 하지 못한다. 제조과정이나 식품첨가물을 확인하지 않고 포장이 멋진 재료를 고른다. 몸매를 드러내는 꽉 조인 옷을 즐긴다. 하루에 한 번도 제대로 집안을 환기시키지 않는다.

이중에 당신에게 해당되는 건 몇 가지인가. 이런 일상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이상한 것"이 당신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 단식은 끝났다. 다시 해독제가 없어 보이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참가자들은 이 길지 않은 단식을 통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어그러진 생활을 바로 잡아야 하는 이유를 알았다고 했다. 그러니 심찬아, 힘들어도 네 몸이 희망이라는 걸 잊지 마. 늘 건강하길 빈다.

각자 "비우고 갈 것", "버리고 갈 것"을 돌아가며 발표하는 시간. 누구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했고, 누구는 "술"이라고 했다. 모두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 단식 캠프을 마감하는 저녁에 행해진 촛불의식 각자 "비우고 갈 것", "버리고 갈 것"을 돌아가며 발표하는 시간. 누구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했고, 누구는 "술"이라고 했다. 모두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 수수팥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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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팥떡의 최민희 대표

강의는 시종일관 유익하고 유쾌했다
▲ 수수팥떡의 최민희 대표 강의는 시종일관 유익하고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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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팥떡, 단식기간 동안 수수팥떡을 소리내 말하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더랬다. 이토록 맛있고 그립고 정겨운 수수팥떡은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제대로" 살게 하는 것이라는 최민희 대표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는 10년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몸의 이치와 순환에 거슬러 사는 사람들의 병을 옆에서 보아왔고 그것이 종내에는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이 보았다 한다. 그래서 질병의 예방에 열심을 내게 되었단다. 그가 펼친 열 개의 강의는 잘 짜인 한 권의 무슨 보감 같았다. 마음은 있으나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수수팥떡 홈피에 소개된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할 수 있는 생활단식에 도전해 보길 권한다.


태그:#아토피, #단식, #수수팥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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