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보성을 가로 지르는 18번 국도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보성을 가로 지르는 18번 국도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에서 길을 잃다

국도 2호선을 따라가다 보성읍으로 빠져 나온다. 화순 쌍봉사 찾아가는 길. 길 양편으로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짙은 초록빛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다. 그 사이로 지나가는 기분이 무척 좋다. 한참을 이리저리 가로수 사이로 달려가다 보니 이정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지역이다.

메타세콰이어의 싱그러움에 홀렸는지 길을 잃었다. 화순 이양면이 나와야 하는데 보성 복내면이 나왔다. 복내면 사거리에서 차를 세우고 지도를 펴 본다. 29번 국도를 타고 가야 하는데 18번 국도를 달려왔다. 길을 잘못 들어온 덕에 푸르름에 지쳐가는 아름다운 길을 지나왔다.

819번 지방도로를 타고 간다. 시골 길은 한적하다. 길을 맞게 찾아가는지 자꾸 지도를 펴 본다. 지도에 나오는 마을 이름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고개를 따라 올라가다 내려서니 산으로 둘러친 곳에 쌍봉사가 자리 잡고 있다.

절 집 한 가운데 서있는 3층 목탑

쌍봉사을 찾아온 것은 우리나라 부도 중 가장 아름답다는 철감선사 부도를 보기 위해서다. 몇 번을 찾아가려 했다가 가지 못했다. 유명한 산 아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쉽게 찾아가 지지가 않았다. 오늘도 너무 힘들게 찾아왔다.

절집으로 들어서는 해탈문. 문사이로 목조탑 대웅전이 꽉 채우고 있다.
 절집으로 들어서는 해탈문. 문사이로 목조탑 대웅전이 꽉 채우고 있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도로 바로 옆에 있는 쌍봉사의 첫 인상은 싱겁다. 산사는 숲길을 걸어 걸어가야 제 맛인데. 주차장에서 절집으로 바로 들어선 지라 일주문 대신 해탈문을 세웠다. 단청을 칠하지 않아 그냥 여염집을 들어서는 것처럼 편안하다.

해탈문 계단을 올라선다. 문을 들어서자 마당을 가로지르는 길을 막아선 채 당당히 서있는 목조탑이 눈을 꽉 채운다. 색다른 풍경이다. 길 양 옆으로 커다란 나무들이 터널처럼 그늘을 만들어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쌍봉사 대웅전. 목조탑 양식이다. 밖에서 보면 3층이지만 안에서는 올라갈 수 없다.
 쌍봉사 대웅전. 목조탑 양식이다. 밖에서 보면 3층이지만 안에서는 올라갈 수 없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커다란 탑에 눈길을 떼지 못하고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참 특이한 건물이다. 높이는 웅장하여 고개를 들게 만들지만 건물은 한 칸으로 아주 검소한 모양이다. 건물이 높지만 웅장하지 않아 편안하면서 기품이 있어 보인다. 2층 벽면에 대웅전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두개 남았던 목조탑 중 하나가 불타고

이 특이한 형태의 대웅전에는 아픔이 있다. 쌍봉사 대웅전은 목탑형식의 건물로는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두 개 밖에 남아 있지 않아 보물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1984년 한 신도의 부주의로 불타버렸다고 한다.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이듬해부터 복원을 시작해 3년에 걸쳐 원형대로 다시 지었다. 하지만 새로 복원한 건물은 더 이상 보물일 수 없다. 보물이라는 직위를 내어 놓아야 했다. 당시 보물임을 알려주었던 표지석은 절집 밖 부도전에 모셔져 있다.

대웅전 안에 모셔진 목조삼존불상.
 대웅전 안에 모셔진 목조삼존불상.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그나마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삼존불상은 예전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대웅전이 불타고 있을 때 마을 농부가 달려와서 삼존불을 한분씩 등에 업고 나왔단다. 현재 전라남도 유형문화제 제251호로 지정된 삼존불상은 특이하게도 주불을 석가모니불로 모시고 양쪽에 부처님 제자인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모셨다.

밖에서 보면 첨탑처럼 하늘로 솟은 3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한 칸짜리다. 세 사람 정도 들어서면 꽉 찰것 같은 법당 안에서는 스님께서 예불을 올리고 있다. 조용히 뒤로 돌아간다.

극락전을 지키고 있는 단풍나무 두 그루

대웅전 뒤로 돌아서니 상사화가 목을 길게 빼고서 반겨준다. 밋밋한 절집이 화사하게 웃는듯하다. 계단을 올라서고 극락전으로 걸어가는 길 양편으로 단풍나무가 시위하듯 서있다. 쨍한 햇살아래 숨죽이듯 조용한 절집 분위기에 발걸음도 조심스럽다.

한여름 절집을 환하게 밝혀주는 상사화
 한여름 절집을 환하게 밝혀주는 상사화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극락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단풍나무 두그루가 서있다.
 극락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단풍나무 두그루가 서있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극락전 앞 단풍나무는 크지는 않지만 대웅전이 불탈 때 불길이 극락전으로 옮기는 것을 몸으로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쪽 몸통은 그 날의 상처를 말해주듯 심한 흉터를 간직하고 있다. 돌계단에 서서 단풍나무를 어루만져 본다. 불에 타서 볼품은 없지만 개선장군처럼 당당하다.

극락전 양 옆으로 나한전과 지장전이 있다. 지장전 안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등 목조 상들은 아주 생동감이 넘쳐난다. 옷깃이며 강한 근육까지도 표현해 내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어두운 법당에 멈춰선 채 누군가 깨워주기만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조금만 건드리면 막 살아 움직일 것 같다.

사자선문의 개조 철감선사

철감선사 부도를 찾아간다. 절집 옆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시원한 대숲이 무더운 여름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해준다. 돌계단 길을 올려다보면 담장이 보이고 그 안에 철감선사부도(澈鑒禪師浮屠, 국보 57호)와 철감선사부도비(澈鑒禪師浮屠碑, 보물 170호)가 있다.

국보 제57호로 지정된 철감선사부도. 전형적인 팔각 원당형 부도다.
 국보 제57호로 지정된 철감선사부도. 전형적인 팔각 원당형 부도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철감선사(澈鑒禪師)는 원성왕 14년(798)에 출생하여 18세에 출가하였고, 호는 쌍봉(雙峰)이다. 문성왕 17년(855)에 쌍봉사에 들어와서 10여 년간 머물다가 경문왕 8년(868)에 입적하였다. 철감선사의 종풍은 널리 펴져 경문왕은 그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선사가 입적하자 철감이란 시호를 내렸다.

그의 선맥을 이은 징효는 강원도 영월 흥녕사에서 선종9산의 하나인 사자산문을 개창하게 되므로 철감선사는 사자산문의 개조가 되었다.

첫 느낌은 불균형, 가까이 다가갈수록...

돌계단을 올라서며 철감선사부도를 바라본다. 첫 인상은 상륜부가 없어 균형이 맞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옥개석은 귀퉁이마다 깨져 있다. 이게 신라시대 부도 중 가장 아름답다는 부도야? 연곡사 부도를 봤을 때의 감동보다 못한 느낌이다.

가까이 다가선다. 옥개석 아래로 내려가면서 몸돌 면마다 새겨놓은 섬세한 조각에 점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다. 각 면에 있는 사천왕상과 비천상은 깊이 새기고 작은 옷깃 선까지도 돋을새김을 해 놓았다. 형태만 나타낸 것이 아니라 입체감을 최대한 살려 놓았다.

옥개석 지붕에 기왓골과 막새에 작은 연꽃문양은 석조예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옥개석 지붕에 기왓골과 막새에 작은 연꽃문양은 석조예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철감선사부도. 몸돌을 받치고 있는 연꽃 문양. 기단부는 8면에 사자를 새기고 아래는 원형으로 구름문양에 용이 엉켜있는 모양을 새겨놓았다.
 철감선사부도. 몸돌을 받치고 있는 연꽃 문양. 기단부는 8면에 사자를 새기고 아래는 원형으로 구름문양에 용이 엉켜있는 모양을 새겨놓았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몸돌을 감싸고 있는 작은 연꽃문양과 몸돌을 받쳐주는 큰 연꽃문양은 햇살에 그림자를 만들 정도로 탐스럽게 피어있다. 부도를 만든 석공의 돌 다루는 정성이 물씬 배어나온다.

아래 기단부로 내려서면 돌을 쪼아 만든 게 아니라 진흙을 빚어 놓은 것 같은 구름모양과 막 튀어 나올 듯한 동물들은 온 마음을 빼앗아 버린다. 부도을 한 면씩 보다가 옥개석이 깨지지 않고 온전한 부분을 보고서는 석공의 섬세한 정성에 질려 버렸다.

옥개석 기와 막새마다 연꽃문양을 섬세하게 조각해 놓았다. 이런 작은 것까지도 정성을 들인 석공의 공력에 경외감까지 우러나온다. 안타깝게도 온전한 옥개석 모서리는 한 면만 남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마저도 깨져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부도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재롱을 피우고 있는 것 같은 거북이

바로 옆에 있는 철감선사부도비로 눈을 옮긴다. 비문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귀부의 거북이가 장난스럽게 재롱을 피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얼굴은 입안에 여의주를 물고서 친근하게 웃고 있는 모양이다. 몸통에 비해 통통한 발은 안정감을 높여주고 있다. 한쪽 발을 살짝 들고 있어 막 움직이다가 얼음땡 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보물 제170호로 지정된 철감선사부도비. 귀부의 거북이는 살아움직이는 듯 역동적이다.
 보물 제170호로 지정된 철감선사부도비. 귀부의 거북이는 살아움직이는 듯 역동적이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이수는 뿔이 세 개가 있어야 할 모양인데 한쪽은 떨어져 나가고 없다. 비문이 없는 비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비문이 있는 귀부의 거북이는 당당하게 보이는데 비문이 없는 귀부는 아무리 조각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허전하게 보인다. 앉은뱅이처럼 땅바닥에 주저 앉은 모습이다. 비문이 없는 백비라도 세워 놓으면 안 될까?

부도비를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부도 앞에 섰다.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무 그늘에 앉아 천 년 전 석공과 대화를 나눈다.
"당신의 공력은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따라올 사람이 없소."

쌍봉사 경내 풍경
 쌍봉사 경내 풍경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태그:#쌍봉사, #목조탑, #철감선사부도, #화순, #부도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