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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개장한 광화문공원에서 평일인 3일 낮에도 많은 시민들이 찾아 '플라워카펫'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1일 개장한 광화문공원에서 평일인 3일 낮에도 많은 시민들이 찾아 '플라워카펫'을 둘러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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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이 오랜 공사를 끝내고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가 보지 못했지만, 뉴스에서 광화문 광장의 모습을 생생히 자세히 봤습니다. 인터넷 블로그에 직접 가 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올려놓아 가보지 않아도 그 모습을 가본 것만큼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플라워 카펫'은 '돈 카펫'입니다

먼저, 너비 17.5m에 길이가 162m라는 '플라워 카펫'이 눈에 확 띕니다. '플라워 카펫'이라 해서 카펫처럼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닐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눈으로만 볼 뿐 절대로 들어가면 안되는 거대한 꽃밭이더군요. 눈에 확 띄는 볼거리로 화려한 색깔의 꽃을 당할 자가 없지요. 게다가 22만4537포기나 되는 꽃을 심었다니 얼마나 볼 만하겠어요?

22만 4537이란 숫자는 조선의 한양 천도일인 1394년 10월 28일부터 광장 개장일인 8월 1일까지 날짜를 계산한 숫자라고 하네요. 그런데 정말로 저 자잘한 꽃들을 낱개 7이라는 숫자까지 정확히 세어서 심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믿지는 않지만 의심도 하지 않는 이런 숫자놀음은 쇼의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데 늘 쓰이고 잘 먹혀들어가곤 합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가장 극적인 쇼, 볼거리는 단연코 플라워 카펫입니다. 그런데 이 플라워 카펫을 만드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들었을까요? 대강 꽃값만 따져보더라도 꽃 한 포기에 500원이라치면 꽃값만 1억1226만8500원입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꽃은 언제가는 시들게 마련인데, 저 꽃을 얼마나 계속 저 모습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요? 도로 한복판에 사람이 일부러 심었으니 날마다 물 주고 거름 주고 가꾸는데도 관리비가 꽤 많이 들어갈 테고, 저 꽃들이 다 시들고 나면 저 꽃들을 다시 다 들어내고 새로운 꽃을 심는 데 또 1억 얼마가 들어가겠지요. 돈으로 만들고 앞으로도 계속 돈으로 관리해야 하니 플라워 카펫은 그야말로 돈으로 깔아놓은 돈 카펫이군요.

광화문 광장의 또 다른 쇼, '분수 12·23'

연일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찾은 어린이들이 분수대에서 더위를 식히며 물놀이를 하고 있다.
 연일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찾은 어린이들이 분수대에서 더위를 식히며 물놀이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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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쇼, 그러니까 볼거리는 이순신 장관 주변에 있는 '분수 12·23'입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숫자 놀음을 하고 있는데, 문을 열자마자 숫자 12·23이 일본 천황 생일날짜라고 누리꾼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군요. 특히 이 분수가 그냥 분수도 아니고 이순신 장군을 띄워주는 역할을 하는 분수라서 더욱 더 적당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분수 사진들을 보면 어김없이 시원하게 솟는 물줄기와 그 속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 모습이 등장합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말이지요. 조명과 함께 비춰지는 밤의 분수 풍경은 더욱 '환상적'이더군요. 분수 또한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아주 좋은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밤에 조명은 볼거리의 기본 중에 기본이지요. 

그런데 분수대 역시 광화문 광장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서 아이들만 물 속에 드나들 뿐 어른들은 멀찌감치 서서 물 구경과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구경만 할 수밖에 없네요. 그런데 아이들이 마구 뛰어 들어가 놀고 있는 물은 과연 어디에서 온 물일까요? 아이들이 맞아도 되는 깨끗한 물인가요? 깨끗한 물을 끌어와 시원한 물줄기로 솟아오르게 하고, 주변으로 실개천이 흐르게 하는 데 또 적지않은 돈이 들었겠군요. 밤에 시민들에게 '환상적인' 야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은 비용을 들어야겠지요.

광화문 광장 모습을 보니 땅 아래냐 위냐만 다를 뿐 청계천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두 곳 다 서울시민의 돈을 들여서 인공적으로 만든 볼거리 위주의 공간이라는 것이 똑 닮았습니다. 청계천과 마찬가지로 광화문 광장 역시 만들 때만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라, 계속 깨끗하게 유지하고 관리하려면 돈을 계속 들여야 합니다. 두 곳 다 돈을 들이지 않으면 바로 쓰레기장이 될 곳이라는 것도 닮은 점입니다.

광화문 광장이 도로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어 길다란 모양을 하고 있는데다가 그마저도 대부분 가운데 자리는 볼거리로 채워놓아서 시민들은 가장 자리를 따라 구경하고 있더군요. '광장'이라고 이름 붙였으면서 정작 '광(廣)'과 '장(場)'은 없고, 구경거리만 잔뜩 늘어놓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을 '서울시민의 문화가 살아있는 문화의 공간으로 활용한다'면서 집회나 모임보다는 볼거리 위주의 전시 관람을 주로 열겠다고 했습니다. 서울시의 취지대로,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에 돈으로 꾸며놓은 볼거리를 보고 탄성을 지릅니다. 행복하다고 하기도 하고, 서울시장님께 감사하다고도 합니다. 문화 공간만 하고 집회는 안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볼거리'를 보기만 하는 문화는 아주 위험합니다

지난 1일 개장한 광화문공원의 3일 낮 풍경.
 지난 1일 개장한 광화문공원의 3일 낮 풍경.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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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를 구경하는 것 역시 문화활동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단지 보는 것은 문화 활동 중에서 가장 수동적이고, 볼거리에 담겨있는 내용에 그대로 세뇌되거나 매몰되기 쉽습니다.

볼거리가 단지 볼거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볼거리를 보는 동안 볼거리를 내건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흡수하게 됩니다. 또 하나, 볼거리가 돈을 들여 만든 것 위주일 경우에는 볼거리를 보는 사람들이 생산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소비하는 사람으로만 머물게  합니다. 화려한 볼거리를 자주 보러 다니는 사람은 웬만큼 화려한 것에 만족을 못하고 더 화려한 것, 더 환상적인 것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구경 위주의 문화는 시민이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게 하고, 볼거리를 구경하는 객체로만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볼거리가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 속에 쉽게 빠져듭니다. 광화문 광장을 보고 서울시장에게 '감사한다'거나 '사랑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서울시민이 낸 돈으로 만들었는데도, 광화문 광장이 환상적인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서울시장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광화문 광장이 갖고 있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입니다.

볼거리를 구경하는 문화는 '박제된 문화', '죽은 문화'입니다. 대신에 '살아있는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만이 문화가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 때때로 힘들고 세상에 대한 불만도 있고 여러 가지 고통이 있는 것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문화입니다. 그런데 광화문 광장에 와서 예쁜 꽃을 보고, 분수를 보면서 힘든 것을 잊으라고요? 불만도 참으라고요?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세상이 불만투성이인 사람들에게 광화문 광장에 있는 플라워 카펫과 분수를 구경한다고 해서 힘든 일과 불만이 사라질까요? 구경하는 동안 잠시 환상과 환각 속에 빠져서 잊을 수는 있지만, 결코 해결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플라워 카펫과 분수의 화려함 때문에 내 삶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가서 플라워 카펫을 구경하고, 솟아오르는 물줄기를 구경하는 대신에, 삶을 힘들게 하는 사회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만드는 것이 더욱 생산적이고도 살아있는 문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집회는 '불허'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사람들 저마다의 목소리가 담긴 집회나 모임보다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서울시민의 돈을 엄청 들여 서울시민을 위해 만들었다는 광화문 광장의 볼거리들, 플라워 카펫과 분수대입니다.


태그:#광화문광장, #문화, #볼거리중심의문화, #플라워카펫, #분수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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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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