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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항은 예로부터 인도의 이름난 무역항이었다. 그 옛날 활기찼던 코치의 모습을 우리는쉽게 그려볼 수 있다. 형형색색의 룽기를 걸쳐 입은 인도인들과 향료를 사기 위해 몰려든 세계 각국의 수 많은 상인들. 항구는 각양각색의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로 넘쳐났고, 항구의 문화는 인도의 그 어느 곳보다 개방적이고 여유가 넘쳐 흘렀다.

 

 

세월이 흐른 오늘, 옛날의 화려했던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항구도시 코치는 선조들의 앞선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깨끗한 관광도시로 부활하였다. 코치의 거리에선 인도의 명물이며 골칫거리인 소도 볼 수 없으며, 그 흔한 부랑자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코치는 참 깨끗한 도시다. 

 

 

남인도 여행을 계획하며 가졌던 일종의 선입견이 무너졌다. 아무래도 중북부 인도보다 문화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며, 생활수준 역시 뭄바이나 캘커타, 그리고 델리같은 대도시보다 뒤떨어졌을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도 거친 면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편견은 한마디로 유치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이 곳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대도시 인도 사람들보다 훨씬 높기만 했고, 그들은 남인도 특유의 독특한 문화와 고유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며, 온화하고 낙천적인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코치 사람들은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옛부터 독립된 왕국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 일찍부터 향신료 무역의 전진기지가 되었던 코치는 인도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부와 문화를 가졌던 곳이다.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이스탄불이 함락된 이후, 서양 사람들은 값싸고 질좋은 향신료를 더 이상 쉽게 구할수 없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인도의 향신료를 찾아 나섰다. 상인들이 일단 확보한 인도의 향신료는 투자비를 제하고도 수백 배의 이문이 남는 훌륭한 장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콜롬버스는 대서양을 건너 인디언을 찾았고,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봉을 돌아 인디언을 찾았다. 그 당시 향신료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일찍부터 문물을 개방한 코치에는 이 곳을 드나들었던 사람 수 많큼이나 많은 종교가 퍼져 있다. 인도의 전통 종교인 힌두교 뿐만 아니라 이슬람, 카톨릭, 개신교, 자이나교, 유대교 등 실로 많은 종교와 종파가 존재한다.

 

 

 

종교에 대하여 관용적인 도시 코치. 실제로 거리를 걷다보면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다정하게 걷거나  이야기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힌두교는 유일신을 섬기지 않는다. 그리고 한 식구들이라도 모두 같은 신을 모시지는 않는다. 물론 집안에서 정성껏 모시는 주신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집에서 모시는 신과 내가 모시는 신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원숭이 신이건 코끼리 신이건 자기 인생에 유익함을 구할 수 있는 신이라면 어떠한 신이라도 일단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이고 힌두의 신관이기 때문이다. 힌두교에 존재하는 3억3천의 신 중에는 예수와 부처도 당연히 들어있다.

 

 

물론 정통 이슬람 신자와 기독교 신자가 들으면 기분이 나빠질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러한 힌두의 토양이 있었기에 다양한 타종교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항구도시 코치는 자연스럽게 이방종교들의 해방구가 되었다.

 

 

종교적 다양성과 더불어 코치에 속에 녹아있는 다문화의 상징 중 하나가 유태인 마을이다. 인도에 정착한 유태인의 기원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단 그 곳에 들른 관광객들은 예쁜 색깔의 페인트로 단장한 곱상한 유태인 마을의 이국적 향취를 느낄 수 있다.

 

 

나라를 빼앗기고 디아스포라 때 아라비아해를 건너 이주해 왔을 수도 있고, 향신료 무역을 따라 정신없이 이주 해 왔을 수도 있었을 유태인들. 그들이 한창 번성했던 당시, 이곳은 코치에서도 이름난 부자마을이었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대부분 자신들의 조국으로 돌아갔지만 아직도 이 곳엔 2가구의 유태인이 거주한다. 
 

유태인들이 돌아가고 난 후 마을의 새로운 주인이 된 인도사람들은 유태인 마을을 옛 모습 그대로 완벽하게 보존하며 코치의 유명한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이 곳은 코치에서도 특히 아름답고 깨끗한 거리로 이름이 높다.

 

 

 

전통문화의 도시 코치답게 이 곳엔 예로부터 내려온 케랄라 전통무용극 까따깔리가 있다. 힌두의 신화를 소재로 변사의 설명과 함께 펼쳐지는 화려한 공연을 통해 우리는 코치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을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다. 친환경 화장품으로 정성스레 분장을 한 후, 정열적 몸짓으로 관중을 매료시키는 까따깔리. 남인도 코치의 풍요로움을 연상시키는 하나의 상징으로 관광객들을 맞는다.

 

 

우리는 흔히 오리엔탈리즘, 혹은 옥시덴탈리즘에 경직된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비문화적이라고 생각하는 무지의 이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혹은 우리보다 더 앞서 간 그들의 문화가 존재하기도 한다. 문화, 혹은 삶에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제한된 지식이나 선입견으로 남의 문화나 삶을 섣불리 비하할 필요도 없다. 세상은 넓고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2009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태그:#코치, #코친, #케랄라, #남인도,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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