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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26일) 아침, 이곳 파라과이 TV는 일제히 어제(25일) 있었던 룰라-루고의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기쁨에 들떠 있다. 토요일에 있었던 양국 회담은 그동안 두 나라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주요한 관심이 되었던 '이따이푸 댐'과 관련한 조약을 수정하는 것에 관한 협상이었다. 양 대통령은 그동안 어색했던 관계에서 '역사적' 순간이란 표현을 서로 사용하면서 회담 결과에 만족해 하고 있다. 현지인들도 회담 결과가 루고가 약속했던 토지개혁과 사회프로그램을 이행하는 기반이 될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세계최대수력발전소, 이따이푸 댐과 농업개혁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아르헨티나로 구성된 남미공동시장 회담, 메루코수르 정상 회담은 원래는 7월초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회담이 23일-24일로 연기되었 을 때, 메르코수르 사무국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가 선거 일정이 있어서 회담을 연기하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파라과이 정부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선거일정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회담 연기 결정은 브라질의 방해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이따이푸 댐의 전력 공급과 관련한 새로운 조약의 협상을 요구하는 파라과이 정부의 요구에 대한 부담 때문에 브라질이 메르코수르 회담을 연기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경전을 일으키는 이따이푸 댐 이슈는 무엇인가?

 

파라과이의 동남쪽 국경을 파라나 강이 흐르고 있다. 브라질과 파라과이가 공동으로 이 강을 소유하고 있는 셈인데, 두 나라는 이 강을 이용하여 이따이푸 댐을 만들고, 댐을 공동 소유하고 있다. 이따이푸 댐은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수력 발전소이다. 파라과이에서 소비되는 전기량의 모두를 생산하고 있다. 당연히 두 국가가 공동 건설한 댐에서 생산되는 수전력의 50%를 파라과이는 자유롭게 처분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1973년 파라과이 군사정부와 브라질 정부가 서명한 이따이푸 조약에 의해 실제 그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약에 의하면 파라과이는 브라질로 사용하지 않은 전기를 국제시장가격보다 아주 낮은 가격에 팔게 되어 있다. 전력가격은 고정 가격으로 조약 서명 당시 시장가격보다 상당히 낮았다. 그 가격은 2023년까지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현 파라과이 루고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 최대 핵심 공약이 이 이타이푸 댐 조약을 재협상하여 전력을 현재 시장가격으로 브라질에 팔겠다는 것이었다. 루고는 불평등한 조약을 유지하는 것은 자원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브라질에게 재협상을 요구하였다. 루고가 재협상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의 또 다른 선거 공약인 토지개혁, 사회프로그램 약속을 지키기 위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파라과이의 농업개혁을 가로막는 브라질의 대지주들

 

그런데 파라과이의 토지개혁은 브라질의 대지주와 파라과이에 사는 브라질인, 브라이시구아요와의 전쟁을 의미한다. 브라질 대지주, 브라이시구아요가 출현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이다. 1870년 3국 연합과 파라과이와 전쟁이 있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로 구성된 3국 동맹은 파라과이를 공동으로 침입했는데. 그 배후에는 당시 남미의 강력한 제국주의자인 영국이 있었다. 3국동맹과의 전쟁 기원은 다양한데 가장 유력한 원인은 리오 데 라 플라타 포구에 대한 통제권이었다. 제국주의자 영국은 이 지역에 대한 안정적 지배를 위해 영국과 마찰이 있는 파라과이를 억누를 목적으로 3국을 동맹케 만들었다. 파라과이는 야심적으로 리오 데 라 플라타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리오 데 라 플라타는 대서양과 연결되는 포구로서 내륙인 파라과이에게는 절대 필요한 지역이었다.

 

전쟁 결과는 파라과이의 대참패였다. 전쟁 전 인구의 90%인 120백만명이 전쟁에서 사망했다는 보고도 있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부채, 보상을 하기 위해서 파라과이 토지를 해외지주에게 헐값에 매각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해외지주는 브라질 지주였다. 해외 지주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35년 이상 독재정치를 한 콜로라도 정부의 '정치적 친족'이 종종 가장 비옥한 토지를 각종 이유로 정부로부터 받아 브라이시구아요에게 되팔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35년 재임 기간 동안 콜로라도 당의 독재자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는 해외 기업농의 안전과 성장을 보장하는 제도를 정착시켰다. 결국 파라과이는 전쟁의 여파를 아직도 겪고 있으며 현재까지 파라과이의 다양한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 경제적 장애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었다. 파라과이는 남아메리카에서 1993년에서야 처음으로 대통령을 민주적으로 선출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전쟁과 이후 지배권력의 토지에 대한 부정부패와 관련된 불법 토지 판매는 현 파라과이 토지 90%를 소수 지주의 수중에 들어가게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다수의 빈곤층과 극단적인 양극화를 지속시키고 악화시키고 있다.  

 

루고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농민들과 브라질 지주간의 회담테이블을 마련했다. 거기서 브라질 지주 중 일부가 22000 헥타르에 달하는 토지를 파라과이 정부에게 팔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은 중요한 진전이었다. 브라질로부터 22000 헥타르 정도의 토지를 재구입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 브라질 지주로부터 토지 매매 약속을 받아낸 것은 루고에게 의미있는 성과였다. 그러나 브라질은 파라과이 전국에 사는 브라질인들의 재산 보호을 위해서 뒷짐만 지고 있지는 않았다.

 

지난 10월에 브라질 군은 이따이푸에 있는 '우정의 다리'를 점령했다. '우정의 다리'는 브라질과 파라과이 국경에 있는 다리로, 이 부근은 두나라의 교역이 왕성히 일어나는 곳이다. 이 다리의 통행이 차단된다는 것은 파라과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브라질 당국은 우정의 다리 지역에 대한 임시적 점거는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불법적인 상행위를 없애기 위한 일련의 실행일 뿐이라고 발표했으나 이는 파라과이에 대한 경고임에 분명했다. 파라과이 내에 있는 해외 농업가들, 특히 브라질 지주들에 대한 안정을 보장하지 않으면 위험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자원의 주권을 옹호하는 파라과이 민중과 메르코수르 시민들 !

 

메르코수르 회담의 둘째날인 24일, "50%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우리에게!"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집회와 시위에서 펄럭였다. 이날의 집회와 시위는 메르코수르 정상회담의 병행 회담인 민중회담이 주최하는 것이었다. 루고의 정책에 비판적인 제1야당 급진정통자유당(PLRA)의 현수막도 보인다. 좌파정당들의 시위자들은 "룰라는 우리를 괴롭히지 마라"라는 구호를 소리 높여 외친다.

 

필자가 참가한 국제회의에서도 여러 참가자들이 이따이푸 댐의 자원주권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국제회의 참가자들 전원은 이를 지지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특히 이따이푸 댐 조약 비준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리히아 프리에토(Ligia Prieto)는 "조약 협상이 거의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비준도 강제로 이루어졌다"고 그 조약의 불법성을 폭로했다. 그리고 메르코수르 회담 첫날, 동시에 열린 메르코수르 민중들이 참가하는 민중회의에서도 자원주권과 이따이푸 댐에 대한 메르코수르 민중들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브라질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러한 민중들의 요구와 결의는 24일 집회에서도 이어지고, 이러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메르코수르 정상회담이 열리는 회의 장소까지의 긴 행진을 하였다.

 

특히 이러한 집회와 시위에는 상당수 브라질 사람들이 참가하여 룰라에 대한 강한 반발과 파라과이 민중의 투쟁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다음날 예정되어 있는 브라질과 파라과이 두 나라 정상의 이따이푸 댐과 관련한 협상에 메르코수르 민중의 요구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메르코수르 지역의 민중들의 공동된 요구와 노력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원래의 조약을 재협상할 가능성을 강하게 부정해온 룰라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에 많은 현지인들이 놀라워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는 룰라의 지역적 지도자로서의 야망이 작용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조약의 재협상은 지역적 통합에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룰라의 다음 말은 의미가 있다. "브라질이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편한 것이 아니다."

 

* 1주일 동안 필자의 파라과이 아순시온 여행이 끝났다. 회의 중에 온두라스의 종교단체로부터 요청이 왔다. 온두라스는 현재 사회운동, 민주화세력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상황을 조사하고, 온두라스의 민주주의 세력에게 국제적 연대를 직접적으로 보여줄 국제 대표단을 온두라스로 보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러한 요청에 회의 참가자 2명과 남미 지역 사회운동 활동가들을 포함한 10명이 온두라스로 가기로 결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역내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지역내 시민사회가 얼마나 절실히 공동의 문제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온두라스의 폭력상황이 끝나고 민주주의가 빨리 복귀하길 희망해본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아시아 지역의 이슈에 공동 노력하는 시민사회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태그:#지역통합, #메르코수르, #이따이푸 댐 , #파라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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