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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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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요원 분)과 김유신(엄태웅 분) 간에 애정전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간 두 사람의 애정은 덕만이 남장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가슴 속에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덕만의 정체와 신분이 드러나면서, 두 사람의 감정은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제가 여자인 줄 알면서도 왜 내치지 않았습니까?"라는 덕만의 의심 어린 질문에 "뭔 말이냐?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라며 퉁명스럽게 답변을 회피하던 유신이었다(7월 27일 제19부). 유신은 그렇게 감정을 숨기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밤중에 마야왕후(윤유선 분)와 천명공주(박예진 분)를 만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충격을 받은 덕만이 어디론가 멀리 떠나려고 숙소에서 황급히 짐을 꾸리자, 잠자던 낭도들을 모두 내쫓은 유신은 그제야 감정을 숨기지 못하며 덕만을 덥석 끌어안고는 "가지 말라!"며 애원했다(7월 28일 제20부). 두 사람의 감정이 서로 간에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선덕여왕>에 묘사된 덕만과 유신의 이 같은 애정전선은 어디까지나 픽션에 불과하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선덕여왕의 이성관계와 관련하여 기록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덕만과 유신의 관계가 아니라 '덕만과 다른 남자들의 관계'다.

흥미롭게도, 덕만의 상대방이 된 그 '다른 남자들' 속에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왕의 최측근으로 나오는 을제(신구 분)가 포함되어 있었다. 최근 방영분에서 진평왕 캠프를 진두지휘하면서 미실 측을 압박하고 있는 을제가 바로 덕만의 남자 중 하나였다.

덕만과 을제가 어떻게 그런 관계를 갖게 되었는지를 사료 속에서 확인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위작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서 그 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덕만의 남자들 누가 있었나 

 <선덕여왕>의 용춘공.
 <선덕여왕>의 용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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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제13세 풍월주 김용춘 편에 따르면, 애당초 진평왕이 덕만공주의 남편감으로 점찍은 인물은 진지왕의 아들이자 덕만의 오촌 당숙인 용춘이었다.

하지만, 용춘은 덕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극구 사양해 보았지만, 왕명을 어길 수 없어서 덕만과 밤을 함께 하곤 했다. 물론 현대적 개념의 혼례식은 치르지 않았다.

진평왕이 덕만과 용춘을 이어준 목적은 용춘이 덕만을 정치적으로 보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용춘은 한편으로는 덕만의 연인 역할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덕만의 정치참모 역할을 했다. 연인 겸 참모가 되는 것은 이후 덕만의 다른 남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여자 후계자에 대한 불안한 시선을 의식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원래부터 덕만에게 마음이 없었던 용춘은, 자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핑계로 덕만공주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자 진평왕은 할 수 없이 용춘의 형인 용수에게 덕만을 모시도록 했다.

덕만과 용수 사이에서도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용수가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덕만은 다시 홀몸이 되고 말았다.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덕만은 계속해서 '솔로' 혹은 '골드미스'로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덕만이 다시 남자를 얻은 것은, 죽은 아버지를 이어 즉위했을 때의 일이었다. 왕이 된 덕만은 옛 남자인 용춘을 불러들여 정식 남편으로 삼았다. 이때 여왕의 남편은 단순히 한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 사실상의 국정 책임자가 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용춘은 덕만의 곁을 떠나고 싶어 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을제라는 인물이 역사기록에 딱 한 번 등장한다. 그는 <삼국사기>와 <화랑세기>에서 각각 한 번씩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여왕의 정식 남편이 된 직후에 용춘이 '이혼 의사'(남편으로서) 아니 엄밀히 말하면 '사퇴 의사'(정치참모로서)를 피력하자, 이에 당황한 신라정부에서는 후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세 남편의 제도'(三婿之制)라는 것을 만들어 두었다.

세 남편 제도란?

'세 남편의 제도'란 용춘 외에 두 명의 '부(副)남편'을 더 두어 총 세 명의 남자가 여왕을 모시도록 하는 제도였다. 이때 흠반이라는 사람과 함께 '부남편'에 오른 인물이 바로 을제였다.

참고로, <화랑세기>의 이 대목과 관련하여, 어느 유명한 <화랑세기> 번역본에 작은 '실수'가 있어서 독자들의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음을 알려두고자 한다. 이 번역본에서는 본문에서 삼서지제(三婿之制)의 뜻을 풀이하지 않고 원문을 그대로 제시한 다음에, 각주와 용어설명 코너를 통해서 서(婿)를 '사위'의 의미로 풀이했다.

그러나 서(婿)는 사위 외에 '남편'의 뜻으로도 사용되는 글자였다. 후한시대(25~220년)의 허신이 만든 유명한 한자사전인 <설문해자>에서는 "여자의 남편을 서(婿)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삼서지제가 제정된 시점은 진평왕이 사망한 이후였으므로, 용춘·흠반·을제를 누군가의 사위라고 표현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위 대목의 서(婿)는 사위가 아닌 남편의 뜻으로 이해되어야 타당하다. 

용춘이 선덕여왕의 곁을 떠날 경우에 대비해서 신라정부가 '세 남편의 제도'를 만들어둔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선덕여왕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용춘이 결국 여왕의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주전'인 용춘이 퇴장함에 따라 두 명의 부남편 중 누군가가 용춘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다. 이때 흠반을 제치고 '주전' 자리를 꿰찬 인물이 바로 을제였다. <화랑세기>에서는 "선덕이 정치를 을제에 맡기면서(善德乃委政于乙祭) 공(용춘)에게 물러나 살 것을 허락했다(*而許公退去")고 말한다. 이는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을제가 국정을 총괄하게 되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을제, 선덕여왕의 정치참모가 되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왕의 최측근으로 활약하는 을제(신구 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왕의 최측근으로 활약하는 을제(신구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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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남편이었던 을제가 여왕을 보좌하게 되면서 용춘이 여왕의 남편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것은, 을제가 여왕의 정치참모가 되는 한편 여왕의 공식 남편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의 원문에서 강조점이 찍힌 이(而)는 앞뒤의 두 사건이 상호 연관성이 있을 때에 사용되는 표현이다. '덕만의 남자'라는 자리와 '덕만의 정치참모'라는 자리가 한 사람에 의해 수행되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보면, 덕만이 공주였을 때에는 용수·용춘 형제가 번갈아가며 덕만의 남자 겸 참모 역할을 했지만 덕만이 왕위에 오른 후에는 주로 을제가 그 역할을 맡았음을 알 수 있다.

사료에 단 한 차례 등장한 이후로는 을제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고 그렇다고 여왕의 남편이 바뀌었다는 기록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을제가 여왕의 남편 겸 참모의 역할을 무난히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왕을 무난히 보좌하고 있는 을제는 실제로는 선덕여왕을 무난히 보좌하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선덕여왕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남자는 바로 을제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 최초 여왕의 남편이었다는 점에서 을제가 갖는 '네임밸류'도 대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니, 신라정부에서 여왕의 남편을 셋이나 만들어준 이유는 후사를 낳도록 하기 위함이었는데, 하필이면 왜 그렇게 나이 많은 을제를 여왕의 남자로 만들었을까?'하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혹 있을까?

을제는 진흥왕의 죽음(576년)을 다룬 <선덕여왕> 제1부 때부터 70대의 얼굴로 등장했으므로 유신이 화랑이 된 609년 이후를 다루는 현재 시점에는 최소 100살은 넘어야 하고, 선덕여왕이 즉위한 632년 시점에는 최소 120살은 넘어야 한다. 그러니 이 드라마를 지켜본 시청자들로서는 선덕여왕과 을제의 결혼이 그저 한없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을제가 덕만보다 나이가 한참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최근에야' 생긴 것이다. <선덕여왕>이 첫 전파를 탄 2009년 5월 26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불과 두어 달 전에 생긴 것이다. 을제의 생몰연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 근거하여, 이 드라마에서 을제를 선덕여왕보다 몇 세대 위의 인물로 설정한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을제가 국정을 총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선덕여왕과 결혼한 시점의 을제는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사람이었을 테지만, 신라정부가 후사 출산의 목적으로 그를 여왕의 남편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시점의 을제는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중년인 선덕여왕과의 나이차가 아주 많지 않은, 중년 혹은 장년의 건강한 남자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으로 분한 엄태웅.
 <선덕여왕>에서 '김유신'으로 분한 엄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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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을제는 선덕여왕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남자였는데에도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인해 자신의 여자를 유신에게 '빼앗기고' 있다. 덕만과 유신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장면들을 지켜보면서, 저 세상에 있는 을제의 머릿속에서는 참을 인(忍)자가 얼마나 많이 각인되었을까.

그러나 을제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을제의 '잘못'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을제는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달랑 한 번밖에 남기지 못한 채 무난하게 생을 마쳤으니, 그런 을제를 갖고는 선덕여왕의 러브 스토리가 인기를 끌 수 없다. 자신의 아내를 다룬 드라마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그는 자신보다 훨씬 더 유명한 유신에게 러브 스토리의 한 축을 과감히 양보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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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