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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2009년 7월 17일부터 7월 20일까지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와 해외동포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약침 동포넷) 공동 주최로 약 70명의 인원이 일본의 후쿠오카를 방문했다. 민족유적지 답사와 민족문화교육지원사업의 성격을 띤 이번 방문은 올해로 벌써 8차를 맞이했다. 

  동포넷은 동포간의 상호교류를 통해 민족정체성을 확립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부산의 시민단체이다. 부산지역의 각 단체에서 시작된 해외연대사업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2006년 7월 14일에 창립되었으며, 국제포럼, 민족학교 방문, 민족문화전수, 청년문화학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이번 방문의 주요 탐방지는 총 4군데였다. 타가와시의 휴가 묘지와 석탄 박물관, 키타규슈시의 오다야마묘지, 그리고 후쿠오카조선학원 등이었다. 또한 방문단은 동포1세대와의 간담회와 부산·후쿠오카 청년교류회, 어린이 축구 교류 시합 등을 개최하기도 했다. 나는 이번 방문단의 일원으로 이들 지역을 다녀왔고, 그 곳에서 받은 아픔과 감동을 조금이나마 전해주고자 한다.  

당당한 일본인 묘지, 초라한 조선인 묘지

 한적한 일본의 시골마을
 한적한 일본의 시골마을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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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묘지로 가는 날, 길은 무척 더웠고 하늘엔 옥색 구름이 정처 없이 떠다니고 있었다. 부산에서 쾌속선을 타고 3시간 남짓 걸려서 도착한 하카타 국제 터미널. 훅하고 끼쳐오는 일본 내륙의 습기는 온몸에 진득하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여행사 측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니 잠시나마 섬나라 특유의 습기를 피할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 주최 측이 마련한 도시락을 먹으면서 나는 휴가 묘지라는 것을 막연하게 떠올려 보았다. 묘지라면 집단 묘역을 말함인데, 이곳 일본에 조선인들의 집단 매장지가 있단 말인가. 내가 이런 상념에 젖어 있는 사이, 버스는 휴가 묘지를 향해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도로에 넘쳐나는 일본 경차들은 빠른 속도로 버스를 지나갔다.  
 

30분 정도 달렸을까. 버스는 한적한 시골마을의 입구에 일행들을 내려주었다. 후쿠오카현 타가와군 소에다조 오아자. 휴가 묘지가 있는 곳의 행정지명이었다. 좁은 도로 한쪽에는 일본식 목조주택들이 질서정연하게 보였고, 휴가 묘지로 올라 가는 길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었다.

 휴가묘지 입구
 휴가묘지 입구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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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로를 지나 5분쯤 올라갔을까? 화강석으로 만든 일본식 묘지들이 하나 둘 보이는가 싶더니 곧 이어 짙은 그늘 속에 육중하게 세워진 묘지들이 눈에 띄었다. 휴가(日向) 묘지는 글자 그대로 휴가 성을 가진 일본인들의 집단 무덤이었다.

이를테면 그네들의 선산인 셈이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식 묘지는 화강석을 일종의 탑처럼 쌓은 형태였다. 사각형 좌대 위에 유골을 안치한 화강석 함이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향을 피우고 간단한 제수 음식을 놓는 평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일본인 묘지들 사이로 있어야 할 조선인 묘지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잠시 혼란이 왔다. 여기 어디에 조선인의 묘지가 있단 말인가? 일행들이 의아심을 가지고 웅성거리는 동안, 현지 안내를 맡은 조선학교 교무부장님의 목소리가 음습한 묘지의 하늘을 가르며 잔잔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발 아래의 묘지
 발 아래의 묘지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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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발밑을 보십시오. 잡풀 사이로 초라하게 박혀 있는 작은 돌들이 보일 겁니다. 바로 그게 묘지입니다. 이름 모를 징용자들의 무덤이 바로 여러분의 발밑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분들의 묘지 위에 있는 겁니다."

아, 이런! 나의 발밑에 징용된 조선인들의 유골이 묻혀 있다니. 갑자기 쿵하는 굉음이 심장 쪽에서 울려왔다. 축축하게 젖은 땅 여기저기에 초라한 입석들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이 입석이 바로 묘지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라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일본인 묘지의 발아래에 비석이나 봉분도 없는 무덤들을 보니 가슴 한쪽에서 씁쓸한 분노가 올라왔던 것이다. 

37기의 이름 없는 무덤

 국화 사이의 초라한 돌 하나
 국화 사이의 초라한 돌 하나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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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봉분도, 비석도 없는 이 초라한 무덤들은 어떻게 조성된 것일까?

이 무덤의 역사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전 휴가 묘지 일대는 탄광지대였다. 휴가 묘지에서 15분 정도 가면 타가와시 석탄·역사박물관이 있는데, 그 일대가 거대한 탄광지대였던 것이다. 일제는 채탄작업을 위해 수많은 조선인을 탄광 노동자로 징용했고, 그분들은 탄광지대 근처에서 집단적으로 살았던 것이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조선인들은 가혹한 일본인 감독의 채찍질 아래 짐승 같은 생활을 영위하며 채탄작업에 동원되었다. 힘든 노동과 불결한 생활조건 아래 꿈결에서 들려오는 조국의 향기를 그리워하며 수많은 조선인들이 하나둘 죽어갔다. 같은 고향에서 끌려온 동료들은 밤에 몰래 그 시체를 이곳 휴가 묘지 빈터에 묻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은 표시를 하나 해두었는데, 그게 바로 이 초라한 입석이었던 것이다.

 개고양이 묘지
 개고양이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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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묘지는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1974년인가, 일본의 양심적인 인사들이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를 진행하면서 탄광노동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귀동(현재는 사망)씨의 증언에 따라 이곳 휴가 묘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발견 당시에는 길이 8m, 폭 3m정도의 보타(석탄과 함께 반출된 암석)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 보타 밑에 조선인 노동자들의 유해가 안치되었던 것이다. 당시 김귀동씨는 휴가 묘지 입구에 있는 개나 고양이의 묘지를 가리키며 이 묘지 밑에도 수많은 동포들이 묻혀 있다면서 깊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저 가슴이 답답했다. 조선인 노동자들의 유골 위에 일본인들은 개나 고양이를 묻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이 일부러 그리 했을까마는 우리 동포의 유해 위에 개나 고양이의 묘지를 썼다는 것에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었다. 아무런 가책도 없이, 아무런 반성도 없이 그들은 우리 동포들의 유골 위에 애완동물의 시체를 묻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늘을 쳐다보니 우련하게 몰려오는 먹장구름이 그저 서러울 뿐이었다.

탄광노동자의 노래를 떠올리며

 탄광노동자 사진
 탄광노동자 사진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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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라한 무덤 아래 원혼들은 과연 우리의 방문을 조금이라도 알까?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들고 온 국화를 그 초라한 입석 앞에 꽂기 시작했다.

부산민주공원 산하 민돌이 축구단으로 온 어린이들도, 함께 따라 온 학부모들도, 그리고 시민단체 회원들도 모두들 국화를 그 입석 앞에 놓았다.

입석 앞에는 국화를 꽂을 수 있게 작은 대나무가  박혀 있었다. 예전에 또 누군가 다녀갔는지, 한반도 통일기가 입석을 둘러싼 채 부드러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일행들이 하나 둘 빠져나갈 즈음, 나는 그 초라한 입석들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 그네들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찍기 위해 셔터를 부지런히 눌러댔다. 그러면서 나는 작은 노래 하나를 떠올렸다. 탄광노동자로 착취받았던 조선노동자들의 아픔이 투박하게 전해져 오는 노래라고 했던가. 발밑의 잡초 사이로 슬픈 이슬이 맺혀 있는 입석을 매만지며 나는 그 노래를 떠올렸다. 그 노래 사이로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는 어찌 저리도 무심한지.   

우리의 고향은 경상북도인데 나는야 어째서 숯 파러 왔느냐
일본 땅 좋다고 누가 말했느냐 일본 땅 와보니 배고파 못 살겠네
숯을 팔 때는 배고파 죽겠는데 그 말만 하면은 몽두리 맞았네
- 조선인 탄광노동자들의 구전 노래 중에서-

 초라한 입석
 초라한 입석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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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묘지 아래의 조선인 묘지
 일본 묘지 아래의 조선인 묘지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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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단의 조문
 방문단의 조문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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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국제신문에도 송고함



태그:#휴가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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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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