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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좋아하지만 정작 집에서 키우며 살 자신은 없어 예쁜 강아지 한 마리 얻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적한 곳에서 사는 이에게서 실제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을 기회가 있었어도 결코 집에 데리고 갈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동식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데 하여튼 일정한 공간 이상을 완전히 좁혀볼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올빼미를 키운다, 아니 올빼미와 사랑을 나눈다,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강아지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에 속해서 그런지 별 의문을 던져본 적이 없지만 올빼미 경우는 좀 달랐다. 이름도 생소한 가면올빼미 이야기라니 그게 무엇인지부터 주섬주섬 찾아봐야했다.

 

생물학자 스테이시 오브라이언이 쓴 <안녕, 웨슬리>(은행나무 펴냄, 2009)는 바로 가면올빼미 이야기이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암컷' 스테이시 오브라이언과 수컷 가면올빼미 웨슬리가 19년 여간 나눈 진하고 진한(!) 사랑 이야기이다.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사람보다 더 깊은 사랑을 남긴 가면올빼미

 

"내가 속한 가면올빼미 연구팀에는 세계 각지의 과학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가면올빼미는 전부 17종으로,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발견되는데, 우리의 연구 대상은 북아프리카에서만 서식하는 종들이었다. 남아메리카 대륙 일부와 유럽은 물론이고,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미국 동북부와 남부에 이르기까지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발견되는 가면올빼미는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약 45센티미터로 까마귀와 몸집이 비슷하다. 다 컸을 때도 몸무게는 고작 45그램이지만 날개를 쫙 폈을 때의 폭이 거의 120센티미터에 달해 무척 인상적인 모습이다. 게다가 온몸을 감싸고 있는 황금색과 흰색 털로 인해 굉장히 아름답다. 특히 흰 털이 나 있는 얼굴은 독특하게도 하트 모양으로 생겼다."(<안녕, 웨슬리>, 11)

 

원숭이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가면올빼미 얼굴은 '하트'를 닮았다. 참 신기하다 싶지만, 하여튼 원숭이보다는 '하트'를 닮은 게 바로 가면올빼미이다. 그리고 낯설기만 한 가면올빼미를 알게 된 건 순전히 웨슬리 덕분이다.

 

이해하기 힘든 것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는 차라리 가면올빼미를 비롯하여 올빼미가 지닌 독특한 면을 집중해서 관찰하는 게 더 나을 듯 싶었다. 그런 점에서, 생물학자이며 무엇보다 올빼미 전문가가 된 지은이가 전하는 '올빼미의 길'이 특별히 기억에 남았다. '올빼미의 길'은 흥미롭게도 웨슬리와 그의 짝 스테이시 오브라이언이 20년 가까이 서로 애지중지 하며 알콩달콩 살아간 힘이 되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웨슬리는 평생 올빼미 세계에서 살지 못했지만 '올빼미의 길' 만큼은 결코 잊지 않은 듯했다.

 

"올빼미 한 쌍 중에 어느 한쪽이 먼저 죽으면, 홀로 남겨진 올빼미는 절대 다른 짝을 찾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앉아 있는 나무를 외면한 채 깊은 절망에 빠져 죽을 때까지 한곳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 우리는 올빼미가 무척 깊고 강렬하게 슬픔을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의 짝에게 얼마나 헌신적인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올빼미의 길이다."(이 책, 13)

 

올빼미 특유의 사랑법 만큼은 배우지 않아도 잊어버리지 않은 본능이었던가 보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한쪽 날개 신경을 다친 탓에 완쾌된 이후에도 자연에서 스스로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었던 웨슬리. 그가 자기 평생을 함께 할 짝이 될 '암컷'을 만났는데 아마 그땐 웨슬리도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진 못했을 것이다. 일단 상처를 치료받고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새끼 올빼미였다. 1985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아침에 만난 이 둘은 느낌으로 서로 알아보았다. 작은 소리에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지닌 탓에 웨슬리는 자기 눈으로 직접 제 '엄마'를 보기 전에 이미 엄마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몸이 크고 마음이 자랄수록 엄마로만 여기던 대상을 웨슬리는 어느덧 평생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자기 짝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여린 새끼 가면올빼미라 여기며 애지중지 보살피기만 했던 '엄마'도 지독하고도 한결 같은 사랑법을 익혀가긴 마찬가지였다.

 

야생에서는 한시도 어미 올빼미가 새끼 올빼미 곁을 떠나지 않는 것 역시 올빼미의 길이란다. 이것을 일부러 강조하는 것 같은 지은이는 웨슬리를 만난 이후 연애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웨슬리와 함께 해야 했다. 그것이 때로 웨슬리를 비롯해 모두를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가면올빼미가 야생에서는 하지 않았을 행동이 드러나는 계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엄마'가 세수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을 웨슬리가 어느 날 물을 콸콸 쏟아내는 수도꼭지 아래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민 것을 보면 말이다.

 

스테이시는 가면올빼미를 비롯해 올빼미가 세수하는 모습을 본다는 게 당시만 해도 충격에 가까운 일이라 말했다. 스테이시 역시 그 점을 충격으로 받아들였지만, '엄마'이면서 동시에 함께 놀고 사랑을 나눌 유일한 '연인'과 살던 웨슬리는 어쩌면 그저 자연스럽게 따라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올빼미로서는 해서는 안 될, 아니 야생에서는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둘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서로 알아가려 하고 서로 상대방 삶을 배워가려 했으니까 말이다. 단순한 교감 이상으로 둘은 '마음'을 주고받은 것인데, 지은이는 바로 그 점을 무척이나 강조했다.

 

웨슬리가 정말 스테이시와 '마음'을 주고받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잘 모르겠으나, 상황과 경우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웨슬리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는 스테이시는 자신이 분명 단순한 교감을 넘어선 그 무엇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야생에서는 15년만 살아도 많이 사는 것이라는 올빼미를 20년 가까이 바로 옆에서 지켜 본 지은이는 웨슬리를 연구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야생에서는 발견하기 힘들었을 모습, 야생에서는 사실상 하지 않았을 모습을 보면서 스테이시는 웨슬리가 자기 생각과 느낌을 전하고 싶어했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보니,  기록으로 남긴 것들은 어느덧 연구결과물이 아니라 둘이 남긴 대화요 삶이 되었다.

 

진실한 사랑이 준 힘 때문인지 오랜 기간 스테이시 곁을 지켰던 웨슬리. 생각하고 느끼는 일들이 사람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스테이시와 웨슬리. 이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스테이시가 그것을 확신 있는 목소리로 전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해두어야겠다.

 

사람과 올빼미, 이 둘이 서로 상대방을 알아간 세월 19년. 긴 세월이 말해주듯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삶을 함께 한 이 둘 사이에 얼마나 많은 대화와 연애 사업이 벌어졌는지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 수 있겠다. 하여, 남은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독자 몫으로 남겨둔다.

덧붙이는 글 | <안녕, 웨슬리> 스테이시 오브라이언 지음. 김정희 옮김. 은행나무 펴냄. 2009.7. 1만천원.
Wesley The Owl by Stacey O'Brien (2008)


안녕, 웨슬리

스테이시 오브라이언 지음, 김정희 옮김, 은행나무(2009)


태그:#안녕, 웨슬리, #가면올빼미, #스테이시 오브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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