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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 4가의 모습. 청계천 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상인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약속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청계천 4가의 모습. 청계천 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상인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약속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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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재단을 만든다고? '청계'라는 아호를 쓴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재단법인 '청계'를 설립해 331억 원의 재산을 청소년 장학사업에 사용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한 최한제씨는 가슴이 답답했다. 재단을 별도로 설립하고 사위와 측근을 재단이사로 앉히는 등 재산 기부의 형식을 둘러싼 논란도 논란이지만, 최씨가 화가 나는 것은 재단 이름에 '청계'를 붙였기 때문이다.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전자부품을 팔고 있는 최씨는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청계천 사업이 일생일대의 최대 치적이겠지만, 청계천 상인들을 전부 죽이고 한 것 아니냐"며 "그러면서 어떻게 청계천 사업을 연상시키는 '청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아호로 쓰고, 재단 이름으로 쓸 수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청계'가 '청계천'을 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호는 원래 '일송(一松)'이었다. 이 대통령은 아호를 '청계(淸溪)'로 바꾼 이유에 대해 2005년 11월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장 취임 후 청계천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중국에서 유명한 80대 한학자가 와서 호를 바꾸라고 했다. 그때는 예사롭게 들었는데 청계천 완공 후 (청계천 복원) 시민위원회에서 '청계'로 하라고 했다."

그런데 '청계재단' 설립 발표 이후 '중국에서 온 유명한 80대 한학자'는 '초서의 달인'으로 불리는 취운 진학종 선생으로 바뀌었다. 청와대측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 취운 선생이 "물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며 초서체로 '청계'라는 한자 휘호를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대통령에게 누가 '청계'라는 아호를 줬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청계'라는 아호가 청계천 사업을 연상시킨다는 점이 중요하다.

송정호 청계재단 이사장은 지난 6일 "재단명이 '청계'라 청계천 사업이 연상된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 대통령이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있어서, 이미지 연계를 안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도 "'청계천 신화' 때문에 누구나 이 대통령을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어서 재단법인 명칭으로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 대통령은 청계천과 적지 않은 인연을 맺어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배포한 "'재단법인 청계'의 설립에 즈음하여"라는 글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저에게 책을 주시면서 대학 입학시험을 보라고 강하게 권유하셨던 청계천 헌책방 아저씨……"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1970년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계천을 시멘트로 덮고 청계 고가도로를 건설할 때,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공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30년 만에 다시 본인의 손으로 청계천 시멘트를 걷어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대통령은 '청계천 신화'를 발판으로 대권을 손에 넣었다. 아호뿐만 아니라 그가 출연한 장학재단의 이름마저 '청계'로 지었으니, 청계천과 이 대통령의 인연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작 청계천 사업을 위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양보해야 했던 청계천 상인들은 이 대통령을 향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주 보상비니, 대체 상가 조성이니, 온갖 감언이설로 자신들을 꼬드겨 청계천 사업을 끝내고 대통령이 되더니, 자신들과 한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쳤다는 것이다. '청계'가 '청계천'을 버린 셈이다.

 안규호 청계천 영세상인 이주대책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 상인들의 동남권유통단지 이주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규호 청계천 영세상인 이주대책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 상인들의 동남권유통단지 이주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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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 "청와대 입성시켜 드리겠다"... MB "저는 말로 한 약속은 지켜요"

안규호 청계천 영세상인 이주대책위원장은 4년 전 이명박 대통령의 말만 믿고, 문서 한 장을 받아내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신에게 화가 치민다고 했다. 2005년 9월 26일 서울 종로구 청계4가에 위치한 한성관. 36개 청계천 상인단체장들과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당시 안규호 위원장은 이명박 시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 상인들이 청와대에 입성을 시켜드리겠다. 대신 시장님은 동남권유통단지(가든파이브)에 이주 상인들이 가서 활성화가 잘되도록 끝까지 책임져 달라. 동남권유통단지가 잘 활성화되어야 청계천 복원이 비로소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 입성하면 청계천 상인들을 불러서 청와대 구경이나 한 번 시켜 달라."

안 위원장은 "그 사람(이명박 시장) 꿈은 이미 다 오픈돼 있던 것 아니었느냐"며 "내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이명박 시장의 입이 귀에까지 걸리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 위원장은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분양단가였다"며 "(시와 상인간) 협의안을 보면 이주자격자에게 특별분양을 하도록 했다. 그래서 내가 (이명박 시장에게) 특별분양가 산정 방식을 문서화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당시 상인들의 요구를 받은 이 시장의 답변은 이랬다.

"제가 돌아가면 시청 공무원들 모아놓고 여러분들의 뜻을 더 보태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걱정 말고 돌아가세요. (상인들 "청와대 입성하시면 서울시장 입장이랑 틀려집니다. 오늘 말씀하신 내용을 담당자에게 잘 전달해주세요.") 저는 말로 한 약속은 지켜요."

비록 구두 약속이긴 했지만, 청계천 공사를 위해 청계천 상인들과 이명박 시장 간에 모종의 거래가 이뤄진 셈이다. 당시 상인들은 이 시장과 나눈 대화를 녹음해뒀다.

결국 상인들의 큰 반발 없이 청계천 공사는 마무리됐고,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청계천 상인들은 2007년 대선을 나흘 앞두고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을 하는 열성까지 보였다.

과연 "말로 한 약속은 지킨다"던 이 대통령의 다짐은 지켜졌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당시 상인들과 면담하면서 약속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물류유통단지 조성은 2007년 말, 추가단지 조성은 2008년 말 완료'
'융자조건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시설자금융자에 준한 조치(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

당시 이 대통령의 약속대로라면 청계천 상인들은 벌써 동남권유통단지에 입주해 영업을 하고 있어야 하지만, 이주는커녕 분양금마저 해결하지 못한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우선 당시 서울시는 각종 청계천 사업설명회에서 분양가가 6000만~7000만 원 정도라고 설명했지만, 현재 동남권유동단지 분양가는 최고 5억7000만 원까지 형성돼 있어, 상인들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분양가의 90%까지 융자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상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상권이 형성되려면 최소 2~3년을 버텨야 하는데, 대부분 영세한 상인들에게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와 점포 관리비는 엄청난 부담이다.

또한 당초 2007년 말 입주 예정이었던 사업이 연기되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상인들에게 전가됐다. 최한제씨의 경우 2003년 청계천 공사가 시작되면서 청계천 상권이 죽자, 2004년부터 매출이 급감했다. 2007년에는 은행대출금 1억5000만 원을 갚지 못해 채권추심으로 빚더미에 올랐다. 동남권유통단지 입주가 지연될수록 최씨를 비롯한 상인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최씨는 올해 초 동남권유통단지에 입주하려고 했지만 결국 계약금을 마련하지 못해 포기했다. 실제 서울시 산하 SH공사는 지난해 말부터 4차례에 걸쳐 분양을 받았지만, 분양률이 30%를 밑돌아 동남권유동단지 개장이 3차례나 연기되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서울시가 청계천 상인들의 동남권유통단지 이주와 관련해 문서로 약속한 내용.
 지난 2003년 서울시가 청계천 상인들의 동남권유통단지 이주와 관련해 문서로 약속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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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20년도 채 못 가서 청계천 복원 문제점 드러날 것" 

청계천 상인들은 3~5년 이상의 무상 임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 사이 상가가 활성화되고, 수익이 생기면 이후에 분양을 받을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 않겠느냐는 것이다.

안규호 위원장은 "청계천 사업은 공공개발이기 때문에 법적인 보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청계천 상인들은 여태껏 보상 한 푼 받은 적이 없다"며 "(이 대통령이) 4800번 만나서 상인들을 설득시켰다고 했는데, 도대체 뭐로 설득을 시켰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이주 자격을 줄 때는 법적인 기준으로 선정해서 줬다. 이주 자격을 부여받은 자는 그 사람의 능력이 있든 없든 수평적인 이주가 되어야 한다"며 "이명박 대통령도 당시 시장 재직 시절 '상인들의 이주가 잘되어서 활성화가 되어야 청계천 복원이 성공한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이 대통령의 아호 '청계'에 대해서도 분통을 터뜨렸다.

"시장으로서 분명히 약속을 했고, 그것으로 대통령까지 됐다. 그런데 어떻게 '나 몰라라' 할 수 있나. 이렇게 부도덕한 세상에서 그런 사람과 함께 호흡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지금 청계천 상인들은 완전히 죽어 가는데, ('청계'를 아호로 쓴다는 것은) 청계천 복원 신화를 끝까지 우려먹겠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서울시와 SH공사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며 강경한 태도다. 결국 SH공사는 8월 중순부터 일반분양을 받기로 하는 등 편법을 동원해 9월 개장을 서두르고 있다. 청계천 상인들을 위한 대체상가에 정작 청계천 상인이 아닌 일반 상인들이 들어오게 된 셈이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일반분양률 역시 저조할 뿐 아니라, 대부분 투기 세력이 개입해, 상권 활성화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경실련 도시계획센터 남은경 부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 사업을 과도하게 밀어붙였고, 성공사례로 만들어 대통령까지 됐지만 결국 그때 대책을 충실히 만들지 않은 문제점이 지금 노정됐고, 갈 곳 없는 상인들이 고통 받고 있다"며 "물론 그때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했다면 그것을 성과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남은경 부장은 이어 "이 대통령 때문에 고통 받는 상인들을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후임 시장이라도 책임져야 한다"며 "오세훈 시장도 르네상스니 뭐니 하면서 똑같이 포장해서 재개발 사업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청계천 상인과 같은 문제들이 잠재돼 있다"고 경고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충분한 대책 없이 청계천 사업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현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 책임을 떠안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충분한 대책 없이 청계천 사업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현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 책임을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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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래 단국대(도시·지역계획학) 교수도 "이명박 시장 재직 시절 주요 시정의 특징은 자기 임기 내에 굉장히 화려한 성과를 내기 위해 합의도 충분히 거치지 않고, 비민주적으로 추진했다는 것"이라며 "당시 상인을 몇 천 번 만났다고 했지만, 그것은 숫자 놀음이었다. 이명박 시장이 추진한 사업의 빈 구멍이 미래 세대, 차기 시장에게 남겨졌다"고 지적했다.

조명래 교수는 특히 청계천 상인 문제는 이미 청계천 사업 당시 예고한 것이었고, 향후 '청계천 신화'가 깨지는 데 시발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청계천은 24시간 12만 톤 이상의 물을 흘려보내는데, 만약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겨서 2시간만 끊겨도 청계천은 황폐화된다. 그때 서울시민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완공 이후 큰 홍수는 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하수관이 넘쳐나서 청계천이 범람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럼 시민들은 어떤 평가를 할까? 관리비가 준공 이전에도 연간 70억이 들 것으로 봤다. 한강에 있는 다리 전체 관리 비용보다 더 드는 셈이다."

조 교수는 "이미 청계천 사업 당시 우리가 경고했던 문제점들"이라며 "지속가능하지 않은 엉터리 복원이었기 때문에 10년, 20년도 채 못 가서 청계천 복원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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