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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생이 된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빠의 베트남전 참전 사진들을 본 적이 있다. 수류탄과 수타식 조명탄들이 걸린 방탄복을 입고 어깨에는 딴띠를 두르고 M16 소총을 들고 치누크 옆에 서 있는 모습, 또는 작전지에서 박격포 옆에 서 있는 모습 등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던 녀석이 전투의 실제 상황에 대해 물었다. 아빠의 설명을 듣고 난 녀석은 "너무 무서워. 난 군대 안 갈래"하던 것이었다.

그때 녀석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하지만, 군대에 간다고 해서 꼭 전쟁을 하는 건 아니야. 얼마든지 전쟁을 피할 수도 있고, 우리 모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살면 돼"라고 말했던 일이 기억난다.

제9회 '전국 고엽제전우회 만남의 장 및 충혼위령제' 행사가 2007년 7월 25일 경남 창원시 창원체육관에서 열렸다. 나도 태안군지회 일원으로 참석했다.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열기가 대단했다. 그만큼 이명박 후보 쪽에는 미운 털이 박히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고엽제전우회 전국 행사 제9회 '전국 고엽제전우회 만남의 장 및 충혼위령제' 행사가 2007년 7월 25일 경남 창원시 창원체육관에서 열렸다. 나도 태안군지회 일원으로 참석했다.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열기가 대단했다. 그만큼 이명박 후보 쪽에는 미운 털이 박히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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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시절 월남전에 가기 위해 세 번이나 지원을 했다. 집요하게 지원을 해서 월남전에 참전했던 것을 일단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베트남 전쟁 자체와 한국 참전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월남전 참전 사실에 일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고엽제 후유증을 안게 되고 말았다. 후유증 판정을 받아 국가유공자가 되었다. 그 덕에 지난해 '기름과의 전쟁'으로 말미암은 발병으로 병상생활을 했을 때도 치료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해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2003년 고엽제 후유증 판정을 받았을 때, 내 질병이 과연 베트남 전쟁 고엽제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적법 절차에 따라 정밀 검사를 받고 후유증 판정을 받았지만, 내 당뇨가 만약 베트남 전쟁 고엽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느님 앞에 갔을 때는 면구스러워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양심의 불편, 하느님 앞에서 면구스러워질 일을 어떻게 해소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을 나 혼자 독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얻었다. 매월 받는 7급 보상연금 25만원 중에서 20만원을 두 조카아이 이름으로 개설한 적금 통장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만기적금 1천만원을 타서 장래 아이들 학비에 보태라고 동생에게 건네주었다.

지난 2006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주할 때 발견된 베트남 전장 사진들을 보면서 내 질병이 고엽제와 관련이 있다는 확신도 얻을 수 있었다. 고엽제 살포로 초토화된 야산에다가 대대본부를 설치하고 벙커를 짓고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고엽제 잔류 성분이 남아 있는 지역에서 여러 날 동안 맨몸에 방탄조끼만을 걸친 채 사역을 하고 포탄을 나르고 잠을 자고 했으니….

2006년 6월 30일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가진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태안군지회' 창립식 장면. 내가 군복 차림으로 사회를 보았다.
▲ 태안군지회 창립식 2006년 6월 30일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가진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태안군지회' 창립식 장면. 내가 군복 차림으로 사회를 보았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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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고엽제전우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 해 6월 30일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태안군지회' 창립에 힘을 보탠 이후 줄곧 성실하게 회원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고엽제전우회에 대한 내 나름의 '정'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전에 목숨 걸고 참전하여 정글을 기다가 살아 돌아온(대부분 나처럼 전투수당을 생각하고 자원하여 월남에 갔던) 사람들, 그 대가로 이런저런 고엽제 관련 질병들을 얻어 신세가 골골해진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말미암은 정이다.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단체이기에 고엽제전우회는 '결손'이 비교적 빠른 편이다. 그리고 후진에 의한 보충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언젠가는 자연적으로 소멸될 한시적 단체다. 그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고엽제전우회에 대해 이상한 애정을 가지게 한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지역 고엽제전우회원들과 친밀하게 지낸다.

그런데 이른바 '중앙회' 차원에서 종종 이상한 행동들을 한다. 과격 행동도 일삼는 보수단체들 이름에 고엽제전우회가 꼭 끼어 있다. 보수와 수구 쪽의 과격 행동단체로 우리 사회에 각인이 되어 있는 상태다.

나는 그 사실에서 심한 거부감과 모멸감마저 느낀다. 고엽제전우회의 그런 행동은 결코 전체 고엽제전우회의 일치된 뜻이 아니다. 전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한 적도 없다. 중앙회에서 뜻을 정하고 움직이면 모두 군소리 없이 따라야 한다는 식이다.

아무리 군대 시절의 인연을 가지고 '전우회'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단체더라도, 고엽제전우회는 군대가 아니다. 민간인들로 이루어진 단체다. 또 대한민국 정부 승인 단체이지 어느 정권에 종속되는 단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성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어느 누구도 고엽제전우회의 성향을 규정하고 자기 방향으로 전체를 끌고 가서는 안 된다.

태안반도 '기름과의 전쟁' 초기 때인 2007년 12월 13일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태안군지회 간부들이 만리포 방제본부에 장갑 3천 켤레를 전달했다.
▲ 태안 앞바다 유조선 기름유출사고 태안반도 '기름과의 전쟁' 초기 때인 2007년 12월 13일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태안군지회 간부들이 만리포 방제본부에 장갑 3천 켤레를 전달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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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어떤 성향을 표시하든 아무 문제가 없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특정 성향을 과격하게 표시하는 일에 고엽제전우회의 이름을 내거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한시적 정권이나 어떤 성향에 얽매이지 않을 때 우리는 좀더 당당하고 떳떳해질 수 있다.

내가 고엽제전우회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는 이들이 많다. 그들을 대할 때마다 미안함과 창피스러움을 느낀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라는 긍지가 반감되는 창피함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된 지난 5월 29일 서울광장에 앉아 있는 군복 차림의 내 또래 초로(初老)를 보았다. 고엽제전우회 마크를 달고 있었고, 노란 풍선을 들고 있었다. 한 인터넷 방송 기자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고엽제전우회원들 중에는 나 같은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굳이 군복차림을 했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남다른 '전우애'를 느끼면서 나는 옆에 있는 아들 녀석에게 "아빠도 군복을 입고 올 걸 그랬다"라는 말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계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 8월호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7월 2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태그:#베트남전 , #고엽제전우회, #보수과격단체, #노무현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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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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