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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로 만들어진 연화, 짚불다비는 조금씩 그 높이를 낮추어 갈뿐 불꽃 한번 뿜어내질 않았습니다.
 지푸라기로 만들어진 연화, 짚불다비는 조금씩 그 높이를 낮추어 갈뿐 불꽃 한번 뿜어내질 않았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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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왜 종을 치느냐?"고 여쭈었더니, "평소 큰 스님께서 공양을 하실 시간이라면서 공양하시라고 종을 쳤다"고 말씀하신다. 절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하고 계실 것 같은 그분은 큰스님과 헤어지는 애달픔을 이렇듯 공양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싣고 있었다.

준비되어 있던 지푸라기 방망이에 불울 붙이고 "거화!"라는 선창에 따라 연화대에 불을 붙인다. 다비장에 있던 사람들이 한결같은 마음, 하나같은 목소리로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고 소리를 지른다. 지르는 소리들은 컸지만 흔들림이 느껴질 만큼 떨고들 있다. - <스님, 불 들어갑니다> 중에서

<스님, 불 들어갑니다>에서 만나는 내소사 혜산 큰스님의 다비 풍경이다. 43년간 산중에서 참선 수행을 하다 내소사(변산)에서 입적(2005년 6월 13일)하신 '혜산 큰스님'의 다비는 5일 후인 6월 17일에 있었다.

사람들만 스님의 죽음이 슬프고 헤어짐이 애달픈 것이 아니다. 돌아갈 사람들은 웬만큼 돌아간 시간. 홀연히 나타난 개 한 마리가 연화대를 지키고 있다. 108배라도 올리려는 듯 넙죽 엎드린다. 화상이라도 입을까봐 훠이훠이 쫓아보지만 잠시 자리를 떴던 개는 다시 돌아와 타들어가는 연화대의 불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연화대를 다시 지키고 있다.

내소사 다비에선 연화대를 덮은 멍석이 마를새라 계속 물을 뿌린다. 때문에 개가 앉아 있는 자리에까지 물이 흘러들어 뽀송뽀송하던 털이 진흙탕에 잠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개는 큰 스님이 가시는 길을 끝까지 지켜 드리겠다는 듯 상청의 상주처럼 몇 시간째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혜산 큰 스님의 가르침은 개에게도 불성을 심었나 보다. 그러니 사람들의 가슴에 남겨진 슬픔과 가르침의 그 파장들은 오죽하랴 싶다.

"그동안 꽤나 여러 차례 다비장엘 다녀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다비장마다 독특한 그런 뭔가가 있는데, 선운사 방식이라고 하는 '짚불다비'는 정말 독특하다. (중략) 여느 다비장에서 보았던 연화대가 호탕하고 호들갑스럽다고 해야 할 만큼 휘휘 불꽃을 뿜어댔다면 짚불다비라고 부르고 있는 내소사 연화대는 조용한 사람들의 배시시한 웃음이나 어깨 들썩거리는 흐느낌처럼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어 불꽃이 보이질 않는다.

계속 뿌려주는 물에 축축하게 젖어 있는 멍석 사이로 연기인지 수증기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뭔가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어쩌면 혜산 큰스님의 생전모습이 저 연기를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란스럽게 드러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이 수행에만 전념하시던 구도자였기에 당신을 다비하고 있는 연화대에서조차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처럼 불자들의 마음으로 유유자적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실 거라는 생각이다." - 책속에서

2005년 여름, <오마이뉴스>에서 읽었던 혜산 큰 스님의 다비장 이야기를 얼마 전 출간된 <스님, 불 들어갑니다>(불광 출판사 펴냄)에서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가슴 뭉클한 것은 유골마저 남은 생물들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어 했던 스님의 보시행 때문이리라.

<스님, 불 들어갑니다>겉그림
 <스님, 불 들어갑니다>겉그림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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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 들어갑니다>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걸망에 담아 온 산사 이야기 1. 2권>로 유명한 임윤수 기자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서옹·청화·석주·만봉 스님 등 내로라하는 열일 곱 분 큰스님들의 다비 현장을 직접 찾아 글과 사진으로 묶은 책이다.

일반인들에게 '다비'하면 생각나는 것은 '사리'다. 한때 나 역시 큰스님들이 입적하셨다는 소식마다 '얼마만큼의 사리가 나왔나?'를 궁금해 하곤 했다. 그런데 사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스님의 수행 깊이를 평가하는 것은 미혹한 일이란다. 때문에 임종 전에 사리를 수습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스님들도 있단다. 수덕사의 다비는 사리를 수습하지 않아 아름답다고 저자는 말한다.

혜산스님은 자신의 뼛조각마저 뭇생명들에게 아낌없이 보시되기를 원했단다. 때문에 다비 후 습골한 스님의 유골은 곱게 빻아(쇄골) 보리밥에 섞어 서해바다 물속 생명들에게 뿌려졌다. 스님께서는 한 줌의 재가 되어서도 한 조각의 뼛조각조차도 뭇생명들에게 아낌없이 보시하는 육바라밀을 설법하신 것이다.

혜산스님뿐일까? 어떤 스님은 다비도 필요 없이 거적에 둘둘 말아 태워 생명들에게 뿌려지길 원하기도 한다. 조금 전까지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생활이 늘 곤궁하다고 투정하던 마음을 싹 가시게 하는 스님들의 거룩한 가르침이다.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이미 몇 년 전에 입적하신 스님을 향해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곤 했다. 스님의 가르침을 받는 마음으로.

스님들의 다비식 관련 국내 최초의 단행본

스님의 법구가 연화대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스님의 법구가 연화대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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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 큰스님의 다비장
 숭산 큰스님의 다비장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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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여에 걸쳐 연화법단에 오른 열 일곱 분 선사가 지수화풍으로 되돌아가는 광경을 사진으로 정리하고 글로 그려보았다. 석주 큰스님을 다비한 범어사의 연화대는 돌멩이를 쌓아 올린 석관연화대였고, 정대 큰스님을 다비한 용주사의 연화대는 철궤연화대였다. 정천 큰스님을 다비한 문수암의 연화대는 새끼줄 타래를 쌓아 만든 새끼줄 연화대였고, 혜산 큰스님을 다비한 내소사의 연화대는 짚덩이를 쌓아 만든 지푸라기 연화대였다. 다비를 하게 될 연화대를 꾸미는 방식도 다르고 염화미소 같은 불꽃이 될 원료는 물론 규모까지도 다 달랐다. (중략) …큰스님들의 영결식이라고 해서 항상(恒相)이지는 않을 것 같고, 다비라는 목적은 같지만 치러지는 방법이나 방식이 문중이나 절에 따라 다르기에 다비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정리해 보았다." - 저자의 말 중에서

혜산 큰 스님의 다비는 본사인 선운사 방식인 지푸라기 연화대에서 이뤄졌다. 집안마다 가풍이 있어서 그 가풍에 따라 제사 등을 지내는 것처럼, 사찰마다 일종의 문중이란 것이 있어 사찰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방식으로 상여나 연화대를 갖추고 다비를 한다. 그러니 연화대의 재료나 구조는 물론 습골까지의 시간도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차마 말 못할 일들도 일어난다. 혜산 큰스님의 경우처럼 무난하게 다비가 끝나기도 하지만 화력이 부족해 다비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비중인 스님의 유체가 흉물스럽게(?) 고스란히 드러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연화대를 제대로 설치하고 못하고에 따라 다비가 이처럼 결정됨은 물론이다.

때문에 다비에 관한 일종의 어떤 지침서가 필요하다. 원만한 습골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화력이 필요한지, 일정한 화력을 위해선 어떤 재료들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어떤 구조와 형식의 연화대와 상여가 있는지 등, 스님들의 다비를 길잡이 해줄 수 있는 그런. 때문에 임윤수 기자님의 이와 같은 다비 기록은 무척 중요하다.

근래 입적하신 큰 스님들의 다비를 종단이나 사찰 차원에서 형식적으로 짧게 기록한 것은 있지만 이처럼 글과 사진으로 세세하게 기록한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은 다비에 관한 국내 첫 단행본으로서 의미가 크다. 덧붙이자면 책속 다비 현장 사진 150장은 누구나 쉽게 찍을 수도 없거니와 쉽게 볼 수 없는 것들로 평가 받는다.

상여가 다비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및 순서
 상여가 다비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및 순서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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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과 다비는 어떤 절차로 어떻게 봉행되며 만장 등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 상여는 무엇으로 어떻게 꾸몄으며 연화대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다비와 습골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불은 어떻게 타올랐으며 습골까지의 시간은 얼마나 걸렸는지…저자는 열일곱 분 선사의 다비 현장을 찾아 마치 생중계하듯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는 또한, 단지 스님의 다비 현장만을 기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남겨진 사람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간절함이나 슬픔, 스님의 살아생전의 삶과 가르침, 스님들의 다비현장에서 예사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이나 이변 등을 진중하고 맛깔스럽게 전한다. 때문에 불자는 물론 일반인들도 쉽고 재미있게 스님들의 다비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불자인지라 큰 스님들이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다비가 참 궁금했었다. 때문에 다비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있는 이 책을 무척 반갑게 읽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거화요" 하는 안내에 따라 연화대에 불을 붙였습니다. 연화대를 에웠던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스님 불 들어 갑니다'하고 함성을 지릅니다.
 "거화요" 하는 안내에 따라 연화대에 불을 붙였습니다. 연화대를 에웠던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스님 불 들어 갑니다'하고 함성을 지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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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화(炬火)라는 선창에 따라 연화대에 불이 붙는다. 화염이 치솟자 다비장 근처에 있던 스님과 신도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 책속에서

입적하신 스님이 나올 리 없다. 그걸 신도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자들은 스님이 마치 살아계시는 것처럼 어서 나오시라고 간절하게 외친다. 그렇다. 이 소리는 스님의 영혼을 부르는 불자들의 간곡한 외침이다. 누가 영혼을 불러주지 않아도 스님의 영혼은 쉽게 극락왕생 할 수 있으리라. 이걸 불자들이 모를 리 없다. 그래도 다비장마다 거화를 하는 순간 스님과 불자들은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라고 간절하게 부른다.

언제부터 왜? 거화 때 이렇게 하게 되었는지 저자도 모른단다. 다만 추측해볼 뿐이다. '이것은 어쩌면 삶의 등불이 되어 주신 스님의 가시는 길을 최선의 마음으로 밝혀드리고 싶은 불자들의 간절한 발원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육신은 가시었지만 가르침은 변함없이 숙지하겠노라는 약속 아닐까?'라고. 때문인지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만나는 이 거화의 선창에 가슴이 설레곤 했다.

우리들은 누구나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쉽게 실감하지 못하고 산다. 이런 우리들이 그나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마땅한지를 가장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는 누군가의 죽음을 접할 때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정신없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내 삶을 진중하게 돌아본 <스님, 불 들어갑니다>를 읽던 며칠간이었다.

스님들의 죽음은 죽음 자체로도 크고 높은 가르침이라는 걸 실감하며 읽은 책이다. 다비장에서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들 또한 남다르게 와 닿는다.

"숭산 큰스님의 운구행렬이 이어지던 '다비장 가는 길이 다시금 걸어 나올 땐 생활로 돌아가는 길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의 오솔길일 뿐이다. 손전등이 비추는 그 길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진흙길이었지만 다비장 가는 길과 일상의 길이 다르지 않음을 보았으니, 기꺼운 마음으로 성큼성큼 딛는다. 내딛는 한걸음 한발이 작은 깨침을 더듬어 가는 탁마의 발자국이니 가슴 벅찬 순간이어라." - 책속에서

덧붙이는 글 | <스님, 불 들어갑니다>(임윤수 글과 사진 / 불광 출판사 / 2009.7.15 / 값 1만2천 원)



스님! 불 들어갑니다. 빨리 나오세요 - 스물여덟 분 큰스님들의 다비식

임윤수 지음, 재원(2013)


태그:#다비장, #입적, #원적, #불교, #생활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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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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