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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이 여는 아침 궁궐음악회 <국악의 아침을 거닐다> 공연 중 궁중정재 '춘앵전'
 국립국악원이 여는 아침 궁궐음악회 <국악의 아침을 거닐다> 공연 중 궁중정재 '춘앵전'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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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음악회는 저녁을 거르거나 간단히 요기만 하고 극장에 들어가 하루의 피로와 싸우며 한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상(?)이다. 어린이 대상 공연이나 주말 공연 중에는 더러 낮 공연도 있지만 대개 음악회는 밤에 열린다.

지난 11일 이른 아침(7시 30분)부터 창경궁 명경전 뒤뜰에서 고즈넉한 평시조로 운을 뗀 국립국악원의 현장 공연 <국악의 아침을 거닐다>는 보통의 음악회보다 12시간 이른 아침에 열린다 해서 화제가 됐다.

이날 연주된 곡들은 순서대로, 평시조 '동창이', 우조시조 '월정명'을 남녀 가객이 맡아 불렀고, 효명세자가 창제한 궁중정재의 흔치 않은 독무 '춘앵전'에 이어 대금독주 '청성자진한잎(청성곡)'이 아직 설풋한 잠에 취해 있는 궁궐의 아침을 어루만져 깨우는 듯 했다. 차분한 아침 공기에 공명하는 대금소리는 우기의 아침이 선사하는 아련한 옅은 안개와 더불어 신비감을 자아냈다. 끝으로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조금 긴 합주곡 '별곡'을 연주함으로써 이날 음악회의 대미를 장식했다.

국립국악원 아침 궁궐음악회 <국악의 아침을 거닐다> 연주 장면
 국립국악원 아침 궁궐음악회 <국악의 아침을 거닐다> 연주 장면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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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송혜진 교수의 살뜰한 해설로 진행된 이번 연주회는 부지런한 4백여 명의 애호가들은 물론이거니와 연주자 스스로도 음악에 동화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요즘의 국악은 극장이라는 우리 악기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낯선 장소에서 연주되기에 본디 자연 그대로의 성품을 해치지 않고 만들어지는 우리 악기로서는 사무치는 바가 아무래도 덜한 까닭이다.

프로시니엄에 길들여진 요즘, 누가 보아도 명경전 뒤뜰은 흔히 말하는 연주와 감상에 적합하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렇다 할 무대도 없거니와 객석은 더더욱 그러하다. 아침이긴 해도 마주 서면 눈 따가운 아침햇살이나 겨우 가려줄 처마와 청중을 위한 차일이 드리워진, 사람들의 옷만 옛 것으로 바꿔 놓는다면 그대로 적어도 기십 년은 과거로 돌려놓은 듯한 풍경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소담스러울 수도, 조금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그러나 독주건 합주건 어디에도 그 흔한 마이크 하나 놓이지 않고, 음향판도 전혀 설치되지 않았건만 다른 어떤 곳보다 뛰어난 음향적 만족감, 완성도를 전달해주었다. 이 날에서야 비로소 우리악기가 서로를 배려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성된 한 음을 결코 놓치는 바 없이 하나인 듯 어우러지는 심오한 조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1시간 가량 진행된 국립국악원이 여는 창경궁의 아침 <국악의 아침을 거닐다>는 두 가지 면에서 특별한 음악회이다. 기존의 통념을 깨고 과감히 국악원을 벗어나 그것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연주하겠다는 발상이 그 하나이고, 겨우 신발을 찾아 신을 정도 시간에 꼬맹이 초등학생 아들이며 딸 손을 잡고 집을 나선 청중이 다른 하나이다. 아무래도 좋은 음악회는 청중이 결정짓는 것이 분명하다. 열정과 정성이 남다른 청중이 그득히 앉은 명경전 뒤뜰은 설혹 음악이 없어도 음악이 들릴 지경이었다.

국립국악원 궁궐음악회 <국악의 아침을 거닐다>를 관람하는 청중들. 겨우 간난쟁이를 벗어난 아이에게 모국의 정서를 심어주려는 듯한 모습의 젊은 모성이 눈길을 끈다.
 국립국악원 궁궐음악회 <국악의 아침을 거닐다>를 관람하는 청중들. 겨우 간난쟁이를 벗어난 아이에게 모국의 정서를 심어주려는 듯한 모습의 젊은 모성이 눈길을 끈다.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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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를 지켜본 국립국악원 박일훈 원장은 "올해 국악원은 '국악을 국민 속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이것은 국악원이 아닌 전국 어디서나 국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도 찾아주는 분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국악을 천직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좀 더 만족스럽고, 더 많은 분들이 경험할 수 있는 국악만의 특성화된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하였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30대 부부는 공연이 끝난 후 '주말의 늦잠 대신에 일찍부터 서두른 보람이 있다. 생각보다 궁궐에서 듣는 궁중음악이 너무도 아름답다. 이제 가족끼리 인적 드문 궁궐을 산책할 생각을 하니 설레기까지 한다. 국악원에 감사한다'고 했다.

또한 국악원 게시판에 한 청중은 '6시에 일어나 커피까지 싸갖고 집을 나가면서부터 기분은 완전 저만의 세상인 듯했다. 늦지 않게 가려고 서둘러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고 갔다'면서 1시간의 공연시간이 짧아 아쉽다고 공연의 잔향이 큼을 나타냈다.

국립국악원의 발상을 바꾼 아침 궁궐음악회 <국악의 아침을 거닐다>는 그 시작이 좋았다. 비로 취소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은 일곱 번의 음악회도 한층 더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내년 여름에도 이 음악회는 궁궐의 아침을 거닐 것이다. 

국립국악원 아침 궁궐음악회. 대금독주 청성곡(청성자진한잎)연주 장면.
 국립국악원 아침 궁궐음악회. 대금독주 청성곡(청성자진한잎)연주 장면.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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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의: 02-580-3300,3333
*신청방법: www.gugak.go.kr >국립국악원> 창경궁의 아침 공연안내> 예약하기(공연일시, 예매자, 매수, 연락처, 이메일 기재)


태그:#국립국악원, #궁궐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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