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해문집의 신간 <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를 보는 순간 '미국인들이 정말 그럴까? 글쎄? 낚시성 제목 아냐!'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실 썩 끌리는 제목이다. 어쨌건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책제목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미국인의 절반이 수도 워싱턴 다음으로 유명한 뉴욕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니. 도대체 왜 그런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어이없는 책 제목은 미국의 엄연한 현실이다. 책제목과 관련된 이야기가 머리말 처음에 나온다.

뉴욕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미국인들

미국의 국민적인 토크쇼 <투나잇쇼>(The Tonight Show)에서 가장 재미있는 코너는 역시 '제이 워킹'. 진행자가 직접 거리로 나가 길가는 사람들에게 초등학교 수준의 질문을 한다. 예를 들면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을 때는 이런 식이다.

"지금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미국?…이 아니라…"

"힌트. 아시아입니다."
"태국인가

"…맨 처음 올림픽이 열린 나라는 어디일까요?"
"미국?"

대답하고 있는 사람은 초등학생이나 양아치가 아니다. 멀쩡한 백인여성이다. 레노(진행자)는 무심코 질문한다.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시죠?"
"교육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에요. 졸업하면 선생님이 돼요!"
- 책속에서

이들은 프로그램에 의해 미리 정해진 사람들이 아니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거리에서 직접 만난 미국 시민들이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란다. 요즘 우리나라 코미디에서나 나올 법한, 시사에도 캄캄하고 상식도 없는 이 대답은 대본에 의한 질문과 대답이 아니란 이야기다.

<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겉그림
 <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겉그림
ⓒ 서해문집

관련사진보기

거리로 나간 방송 진행자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초등학교 수준의 질문을 던진다. "세계대전은 몇 번 발생했을까요?" "히로시마 나가사키 하면 생각나는 것은 무엇이죠?"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이겼을까요? 졌을까요?" …라고.

세계 2차 대전을 직접 경험했다는 노인은  "3차 세계대전"까지 있었노라고 대답한다. 또 다른 사람은 "베트남전은 우리 미국이 물론 이겼죠. 그런데 베트남전을 미국이 일으켰나요?"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어지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들은 상식 이하다. 정말 뉴욕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다운 대답들이다. 실제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조사에 의하면 미국 성인 50%는 뉴욕이 어디 있는지 모른단다. 또한 어떤 조사(2005년 노스웨스턴 대학 존 밀러 교수의)에는 미국 성인 20%가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왜 이렇게 무지한 걸까? 저자에 의하면 이처럼 멍청한 대답을 하는 미국인들은 단지 무지한 것이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사상과 '반지성주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인들 사이에 흐르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사상과 반지성주의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미국의 정치 상황, 경제, 종교, 교육, 언론 등의 속살들을 '명분 없는 전쟁' 심화되는 빈부격차' '썩어빠진 정치' '거짓말 투성이 언론' 등 6부로 나뉘어 들려준다.

입시 지옥보다 무서운 기독교 원리주의 교육

저자가 첫 번째로 소개하는 것은 '도를 넘어선 종교'라는 제목의 종교에 관한 것이다. 모두 9꼭지의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저자는 종교와 미국의 교육 현실을 연관하여 들려준다.

복음주의자들은 아이를 절대 일반 학교에 보내지 않는단다. 과학을 배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신 복음주의 대학을 만들어 성서가 바탕이 된 교육 시스템을 운영한다. 이들의 교육 목적은 오로지 기독교인이 미국을 되찾기 위해 싸울 병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얼마 전 <지저스 캠프>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돼 미국에서 논란이 됐다. 부시를 적극 지지하는 베키 피셔 목사가 운영하는 어린이 교육 캠프인 '키즈 온 파이어'의 실태를 다룬 영화다. 키즈 온 파이어는 6~13세 아이들을 기독교 원리주의자로 양성하는 캠프이다.

베키 피셔 목사는 아이들에게 해리 포터는 하나님의 적, 마법사는 악마의 심부름꾼이니 죽어 마땅하다고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끄는 캐릭터라 아이들은 충격에 빠진다. 이때 그들은 교리를 주입한다. 그만큼 효과 있다. 6살 어린이에게까지 죄인이니 하나님께 무조건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캠프에서는 하드코어 헤비메탈을 틀어놓고 아이들이 이에 맞춰 춤을 추게 한다. 이는 아이의 개성을 살린다거나 자유를 존중하는 등의 썩 민주적인 교육현장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정은 영 아니다. 가사를 잘 들어 보면 '우리는 신의 전사' '사탄을 몰아내라' 등이다. 이들이 1950년대 록큰롤이 등장하자 청소년을 현혹하는 악마의 음악이라며 금지했던 것을 이제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진화론을 철저하게 부정, 우주는 빅뱅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7일 동안 만들었음을 강조한다. 또 "지구온난화는 진보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거짓말"이라고 교육하고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 자연을 전부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책속에서

가정에서 학습을 시키는 100만 이상의 가구 중에서 75퍼센트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다.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부모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러한 상황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 이는 미국의 일류 대학에 다니는 이과 학생 중 절반 이상을 아시아계 미국인과 아시아 유학생들이 차지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의 과학을 선도해왔지만, 지저스 캠프를 보고 있으면 과학의 판도가 바뀔 날도 멀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문명을 자랑하던 이성적인 로마제국이 쇠퇴하고 결국 맹신이 지배하는 중세 암흑시대로 전락했듯이 말이다.


복음주의자가 많은 남부의 주, 이른바 바이블 벨트에서는 1920년대부터 주법으로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법은 1960~1980대에 위헌 판결을 받았다. 이에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지 않고 자신들이 가르친다.

이 정도는 아주 짧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책에는 부시를 위해 기도하는 세뇌 캠프요, 입시지옥보다 무서운 기독교 원리주의 교육의 실태 외에 가톨릭교회 소년들이 신부로부터 동성애를 배우거나 성적 학대를 받는 것이 보편화 되었다거나, 사상 최대 종교 사기꾼 목사 이야기, 부시가 추진한 절대금욕 성교육의 정체 50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고 있다.

너무 어이없어 웃음이 나오거나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도 부지기수다.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지극히 민주적이며 지극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미국에서 정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정말 미국 사람들이 이렇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또한 "미국 사람들이 이렇게 멍청해?"라고 반문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오바마는 이슬람의 스파이? 섹스하려면 콘돔 없이?

미국인이 시사 문제에 무지한 원인에는 우파 언론의 횡포와 교회의 붕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어쨌든 뉴스를 보지 않는 사람들, 외국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결정하고, 그 대통령이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키고 쓰레기 같은 정책으로 경제를 붕괴시키면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부조리함에는 이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종교, 정치, 경제,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넘쳐나고 있다. 이 책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내가 미국에서 생활하며 보고 들은 어처구니없는 뉴스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책의 저자는 재일교포 1세 아버지를 둔 마치야마 도모히로.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에 거주하면서 칼럼니스트이자 영화평론가로 활동, 여러 권의 관련 책들을 낸 바 있다. 책의 내용들은 이런 그가 수년간 미국 뉴스와 미국 생활에서 얻은 것들이 바탕이 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책속에는 워낙 말들이 많다. 그 중 눈에 솔깃한 몇 가지만 우선 소개하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들
최근 미국의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책속에는 워낙 말들이 많다. 그 중 눈에 솔깃한 몇 가지만 우선 소개하면.

▲(청소년들에게) 섹스는 절대금지! 하려면 콘돔 없이 하라 ▲나에게 동성애를 가르쳐 준 것은 신부님 ▲9·11 테러는 게이의 나라 미국에 신이 내린 벌! ▲"하나님, 병사들을 죽여주셔서  감사 합니다" ▲병사 부족이 초래한 이라크인 학살사건 ▲전쟁을 모르는 강경파가 전쟁을 일으킨다?

▲미국은 고문까지도 해외에 아웃소싱 ▲연봉 3만 6천 달러의 애송이가 200만 달러의 주택 대출을? ▲메이드인 차이나 성조기를 금지하라 ▲미국의 옥수수 밭은 일본의 총면적보다 높다 ▲병든 자의 죽음을 외면하는 미국의 의료보험이야말로 병들었다 ▲부시와 부시맨을 이어 주는 자 ▲실용화된 전기자동차는 왜 사라졌는가?

▲부시를 사상최대의 대통령으로 임명 합니다 ▲이라크 전쟁을 조종한 언론의 제왕 ▲그자들이 노리는 것은 '부시 암살'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부시 두뇌▲오바마는 이슬람의 스파이다!▲"여성에게 선거권을 주지 말라!"고 한 여성 정치평론가 등이다.

저자는 우리들에게 알려진 미국과는 많이 다른, 하지만 미국의 엄연한 실태를 최근 미국에서 이슈가 된 영화나 뉴스 등과 연관하여 들려준다. 미국의 정치나 경제이야기는 좀 복잡하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혀진다.

저자는 '에필로그'와 '한국어판 출간에 부치는 말'에서 "부시가 만든 10조 달러의 재정적자 때문에 미국은 국채를 마구 찍어대고 있지만 국채 44퍼센트를 외국이 사고 있다"거나 "미국 젊은이들이 대학 학자금 대출 때문에 사회에 진출할 때 10만 달러 이상의 빚을 떠안고 있다" 는 등 집필 이후 최근 미국의 현실을 자세히 들려준다.

책속 이야기들은 미국과 미국인에 관한 것들이다. 책은 재밌다. 제목만큼 썩 끌리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현실은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는 것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되리라. 때문에 책을 덮고 생각이 깊어진다.


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야마 도모히로 지음, 강민정 옮김, 서해문집(2009)


태그:#미국, #미국인, #오바마, #부시, #이라크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