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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 부모님 마음을 이제야 깨우치게 하는 날

나는 1973년 2월 19일에 ROTC 장교로 입대하는 형과 같은 날 사병으로 입대하면서 고향마을 앞 신작로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릴 때 어머님이 하시던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니는 어디를 가도 술만 안 묵으면 나가 걱정을 하나도 않 허겄다" 하시는 말씀이다.

그 말씀을 듣고 사실은 엉겁결에 "저… 군대 있는 동안 술 안 묵을라요!"하고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군 복무하는 동안(정확히 제대 특명 받기 전까지) 술을 한 잔도 먹지 않았다. 물론 제대 특명 받을 때까지 선임들이나 동료들 모두에게 술을 전혀 못 먹는 것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어머님과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지금 와서 36년 전 얘기를 하는 것은 군대를 가기 싫어 이리저리 빠질 궁리를 하는 철부지 아들이 절대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는 나와 의견 충돌로 마음 고생이 많다가 지난 3월 7일에 논산훈련소에 입대하기로 하고 고속버스 타고 내려간 후 이틀 만에 돌아오고 말았다. 다시 입영신청을 하고, 아들을 설득을 하여 7월 7일에 춘천에 있는 보충대에 입대를 시키고 온 마음이 어찌나 심란한지?

이제야 36년 전 두 아들을 같은 날 군에 보내신 부모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서다.

군대에 가기 싫어 하는 아들

아들이 징병검사 통지서가 나오자 다섯 살 때 코 수술한 병원까지 찾아다니며 진단서를 떼어서 어떻게든 면제를 받아보려고 고군 분투(?)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며, 저렇게 군대가 가기 싫은가? 하며 안타까운 면도 있었다. 논산훈련소 갔다가 돌아온 후 빨리 다시 입대하라는 나의 재촉과 빨리 입대하지 않으려는 아들과의 의견 충돌로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마치 집에서 부자간에 서로 얼굴 보지 않으려고 숨바꼭질하는 식이 되어 갔다. 하지만 어차피 통과해야 할 병역을 빨리 마치는 것이 좋다는 외사촌 형들의 조언이나 가족의 압박(?)에 최대한 빠른 시일인 7월 7일에 입대하기로 결정을 보았던 것이다.

입대는 당일 13시 30분까지 춘천에 있는 102보충대에 도착하여야 한다. 이번에는 나도 하루 휴가를 내고 혹시 늦을지 모른다하여 아침 9시에 춘천을 향해 출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아들은 전날 저녁 친구 만나러 간다고 나간 후 새벽 세 시가 되어야 귀가를 한다. 아침을 먹으라고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 엄마는 아침이라도 먹여서 보내고 싶어, 이것저것 반찬을 준비한 것 같으나 결국은 숟가락을 들어보지 않고 차에 오르고 만다.

다른 때 같으면 북한강 줄기를 따라 뻗어있는 경춘국도의 풍광에 도취될 만도 하지만 오늘은 차안의 공기가 무겁다. 아들 녀석 역시 말이 없다. 내가 군대 갈 때는 어떤 영향이었는지는 기억할 수없지만 "남자는 군대를 빨리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이 완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부담 없이 입대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아들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너무 나약하게 키운 것이 후회스럽다.

102 보충대
▲ 여기가... 102 보충대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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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30분경 춘천의 보충대 근처의 닭갈비집에 들러 네 식구가 닭갈비 3인분을 시켰으나 모두가 입맛이 없는 모양이다. 아들 역시 아침도 안 먹었는데 먹는 것이 영 부실하다. 엄마가 은행에 근무하느라 외할머니 밑에서 자란 녀석이라 동행하신 외할머니가 좀더 먹이려 하지만 그렇게 잘 먹던 녀석이 먹지 못하는 모습이 짠하다.

군대 가기 싫어하는 이유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부대에 도착하니 일천여 대는 됨직한 넓은 주차장에 전국의 번호판을 단 차량들이 속속 들어오고 차량을 정리하는 아저씨들이 땀 깨나 흘려댄다. 그날 입영 장정이 팔백여 명 된다고 하는데 주차장에 주차한 차량이 약 일 천여 대는 된 것 같다. 그런데 외제차는 한 대도 보지 못했고 고급 승용차는 너무 귀하다. 불현듯 외제차나 고급승용차 타시는 분들은 자식들 군대에도 안 보내는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아들로부터 면제받은 친구들 이야기를 들었던 생각이 난다.

주차되어 있는 천여대의 차량중 외제차나 고급차가 귀한것을 보고 슬퍼지는 이유는 뭘까?...
▲ 장정들을 태우고 온 차량들,.. 주차되어 있는 천여대의 차량중 외제차나 고급차가 귀한것을 보고 슬퍼지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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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대입구에는 입영 장정의 불안한 심정을 반영이라도 하듯 여러 가지 용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군화깔창, 전자시계, 군인수첩, 간이 이발소 등등. 훈련받는 데 필요한 각종 소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아들 아이는 전자시계와 군인수첩을 골라서 주머니에 넣으며 이것만 있으면 될 것 같다고 한다. 그 모습이 짠하다.

입대 장정을 위한 소품등을 주로 판매하는 상점은 매주 화요일만 성황이라고 한다.
▲ 보충대 입구의 상점 입대 장정을 위한 소품등을 주로 판매하는 상점은 매주 화요일만 성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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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깍지 않고 입영한 장정들을 위한 간이이발소 모습
▲ 간이 이발소 머리를 깍지 않고 입영한 장정들을 위한 간이이발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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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새통 속에서도 상인들만이 활기가 넘쳐 보이나 입영 장정이나 가족 모두의 표정에서 앞으로 있을 예고된 이별을 서글퍼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입영 장정과 가족을 위한 부대의 배려가 돋보인다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부대 안의 입영식이 열릴 곳에 도착하니 뙤약볕을 피해 연병장이 아닌 나무 그늘 아래다. 무겁고 착잡한 분위기 전환을 위해 군악대가 나와 연주도 하고 노래도 하는 등 부대의 배려를 보면서 많이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침울한 분위기 전환을 위한 군악대의 공연이 이어진다.
▲ 군악대의 공연 침울한 분위기 전환을 위한 군악대의 공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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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영식이 시작되자 국민의례 후 "부모님들 걱정 마시고 저희에게 귀한 아들을 맡겨주세요. 훗날 건강하고 씩씩한 남자가 되어 돌아갈 것입니다" 하는 부대장의 인사말이 인상적이다. 이어서 담당 장교의 입소 일정, 소지품 처리 등등의 안내가 이루어지고 20년 동안 품안에서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철없는 자식들을 군이라는 조직에 맡겨야 하는 가족과 장정간 분리 절차가 이루어진다.

그 동안 길러주신 부모님께 큰절을 하고 가족 곁을 떠나다

입영하는 아들에게 한마디....
▲ 어머니가 ..... 입영하는 아들에게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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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입영 장정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가족이나 친지를 마이크 앞으로 불러내어 얘기할 기회를 준다. 그들은 대부분 "아들아 몸이 약한 것이 걱정이다. 건강하게 마치고 돌아오길 바란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다음은 입영장정들을 불러내어 부모나 친지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하도록 한다. 그들 대부분 "그 동안 부모님 속 썩여 죄송합니다.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의젓한 내용이다. 금세 철이 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전송나온 부모님과 친지들에게 큰절을 올리는 장정들...
▲ 부모님과 친지들께 큰절 전송나온 부모님과 친지들에게 큰절을 올리는 장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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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모님을 향해 큰절을 하고 싶은 장정들을 앞으로 불러내니 의외로 많은 장정들이 앞으로 나와 나래비를 서서 그 동안 길러주신 부모님께 큰절을 올린다.

그리고 입영 장정들만 안내 사병들을 따라 짙푸른 등나무 터널을 통해 대강당으로 입장시킨다. 이른바 가족과 장정의 마지막 이별 작업이다.

정면의 등나무 터널 아래 통로를 통해 대강당으로 장정들만 이동하여 정든 가족과 이별이 이루어집니다.
▲ 부모님 곁을 떠나는 장정들 정면의 등나무 터널 아래 통로를 통해 대강당으로 장정들만 이동하여 정든 가족과 이별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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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를 이토록 슬프게 하는가?

가족이나 장정 모두가 그 동안 참아왔던 이별의 슬픔이 눈자위로 내려앉는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눈자위에 이슬이 서린다. 아들놈 역시. 외손자 넷 중 직접 직접 키우셨던 막내손주의 입영에 그렇게 강인하시던 팔순의 외할머니가 손수건에 눈물을 훔치자 눈자위가 붉어 오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수많은 장정들 중, 개 중에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연신 눈을 훔치는 장정과 소리 내어 우는 부모들도 많다.

이제 정든 가족을 남겨두고 대강당으로 입장하는 장정들의 표정이 착잡해 보인다.
▲ 입영 장정들의 착잡한 표정 이제 정든 가족을 남겨두고 대강당으로 입장하는 장정들의 표정이 착잡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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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뭣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이 슬픈 이별을 하게 하는 것인가? 이런 생이별의 징병제는 언제나 없어질까?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가는 작금의 한반도 정세가 걱정스러움을 더해주는 날이다.

자식들을 입영시키고 돌아서는 가족과 친지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 금쪽 같은 자식을 남겨두고 집으로.... 자식들을 입영시키고 돌아서는 가족과 친지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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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대에 철없는 아들을 넘겨주고 심란한 마음으로 서울을 향하는 차안의 분위기 역시 무겁다. 아이를 좀더 강인하게 키우지 못한 점이 후회되기도 하고, 평소 차분하지 못하고 덜렁대거나 쉽게 흥분하는 성격 등등 걱정되는 것이 이만 저만 아니다.

이런 심란한 마음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식을 군에 보내지 않은 부모들은 이해 할 수 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이런 이야기를 그들이 들으면 "바보야! 왜 군대를 보내니?"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일기 예보에 춘천지역에 비가 200mm나 왔다는 소리를 듣고 걱정이 된다. 누가 지금 나더러 "아들이 하나 더 있다면 군대를 또 보내겠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단연 "아니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면제를 받아 볼 거야"하고 대답할 것 같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 보다. 지금 부대 배치를 받았다는 문자메시지가 날아든다.


태그:#군입대, #102보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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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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