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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 부산지역 공연이 예정된 부산대학교 정문에서 9일 저녁 부산대측이 공연장비 반입을 막기 위해 버스와 트럭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뒤 교직원들을 동원해서 교문을 봉쇄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 부산지역 공연이 예정된 부산대학교 정문에서 9일 저녁 부산대측이 공연장비 반입을 막기 위해 버스와 트럭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뒤 교직원들을 동원해서 교문을 봉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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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꼭 26년 전이군요. 제 나이 20세. 처음 맞이한 대학 생활에 꿈과 희망을 가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입학식 당일 날, 처음 본 정문 주변에 왜 그리도 호떡집들이 많은지. 백두산, 금강산, 강의실, 체육관 등등의 이름을 가진 호떡집들은 참으로 살풍경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가난한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부산대는 촌티 날리고, 뭔가 음울하고, 어디선가 싼 티가 물씬 풍기는 학교였습니다. 

캠퍼스는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부마민중항쟁의 발원지였다는 사실은 그저 먼 옛날의 이야기였습니다. 서울 지역 대학들에서는 간간히 시위 소식도 전해져 왔지만 부산대학교는 그저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아, 그래서 부산대학교가 유신대학이라고 조롱을 받는구나. 일설에 의하면 10.16부마항쟁이 일어나기 전 모 여대생들이 부산대학교에 가위와 고추를 보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에라이, 이 등신들아 그냥 잘라라 뭐 그런 의미였겠지요.

봄과 여름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시월의 어느 날이 다가왔습니다. 중간고사를 앞둔 좁은 캠퍼스 안에 약간의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예감. 말로만 듣던 데모가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오후 3시가 되었을까요. 갑자기 자연대 건물 앞에 일단의 학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어느새 모인 수 백 명의 사람들. 누가 그러더군요. 저 건물 안으로 시위 주동자 2명이 끌려 들어갔다고. 나무 위에 올라가 독재 타도를 외치던 2명의 학생들이 저 건물 안으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끌려들어갔다고.

총장과 보직교수가 총출동했고, 날카로운 눈을 번득이는 '짭새'들이 사방에서 몰려들더군요. 끌려간 학우를 내 놓으라는 학생들의 요구는 계속 묵살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앉아 있던 수 백 명의 학생들이 우 자리를 털며 일어나 본격적으로 데모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엉겹결에, 너무나 소심하게, 그리고 허망하게 데모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좁은 캠퍼스를 수 십 번 돌면서 독재타도를 외쳤고, 저녁 늦게 서야 시위는 잦아들었습니다. 정문 앞에는 중무장한 전경들과 페퍼포그차(일명 코끼리 차) 2대가 블랙호크처럼 육중하게 서 있더군요. 당시 우리는 전경들을 안드로메다 군단이라고 불렀습니다. 안드로메다 군단. 아이들의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 군대의 이름이 지상에 출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녁식사시간이 되자 안드로메다 군단들은 큰소리로 쩝쩝거리며 밥을 먹더군요. 그리곤  요란하게 일어서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경고방송을 합니다. 교내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즉각 해산하라고. 그러면서 철커덩, 끼잉하는 소리를 내며 육중한 철문이 열렸습니다. 곧 이어 쏟아져 들어가는 사복경찰들의 일렬횡대.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학생들이 모두 걸음을 멈추고 야유의 함성을 보냈습니다. 다시 들리는 경고 방송. 그리고 어느 구석에서 터져 나오는 아침이슬 노래. 그때 받은 감동, 그때 받은 정서. 아마, 40대 중반에도 그 감동과 함성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부산대 정문. 곡절과 사연이 많은 곳입니다. 84년의 유화 국면을 거치면서 부산대에서 조직적으로, 공개적으로 학생운동이 벌어지면서 수많은 최루탄과 화염병, 돌덩어리에 의해 무수히 깨지고 망가진 곳이 바로 부산대 정문이었죠. 이 정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운동일꾼들이 길러졌는지. 그리고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체취와 흔적이 얼마나 많이 남겨 있는지.

26년 만에 만난 부산대 정문. 학생들은 무릎을 끓고, 교직원들은 고개를 돌리며 서로에게 설득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2009년 여름의 부산대 정문. 졸업생의 한 사람으로서 그 장면을 보노라니 그저 회환과 쓰라림이 덮쳐 옵니다. 저래선 안 되는데, 부산대는 저렇게 해선 안 되는데….

지난 8일 부산대 교직원들이 노무현 추모공연에 반대하며 정문에 앉아 있자 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20여분간 앉아 정문을 열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8일 부산대 교직원들이 노무현 추모공연에 반대하며 정문에 앉아 있자 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20여분간 앉아 정문을 열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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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부산대는 그리 만만한 학교가 아닙니다. 10·16부마항쟁의 발원지이자, 노무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부산대는 한강 이남 최대의 운동세력 양성소랍니다. 지금, 봉하마을을 지키고 있는 일꾼 중에도 부산대 출신들이 많답니다. 처음, 님이 변호해준 학생들도 부산대학생들이었고, 처음, 님이 후보로 나왔을 때 가장 많은 자원봉사를 한 사람들도 부산대학생들이었습니다.

부산대학교 당국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총장과 보직교수들의 속내는 결코 공연 불허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정문을 막아선 교직원들의 속내도 결코 불허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생계형이라고 인정하면 됩니다. 그들을 욕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톱니바퀴에 물려 돌아가는 조직의 일원인 그들에게 무슨 책임을 묻겠습니까? 원망과 책임, 욕설과 항의를 받아야 할 세력은 명약관화합니다. 그렇게, 그렇게 알고만 있으면 되겠지요.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부산대학교 당국은 형식적으로라도 불허를 고수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 나라의 건전한 시민들에 불과하기에, 먹여살려야할 처자식이 있는 이 땅의 가장들이기에 최선을 다했노라는 핑계가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교문을 막아선 교직원들이나 학생들은 마음속으로 교감했을지도 모릅니다. 다 알고 있다면서, 다 이해한다면서, 그러면서 형식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묵계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이 땅의 불쌍한 가장들이기에, 그들은 이 땅의 가련한 민중들이기에.

방금 공연에 필요한 모든 물품이 반입되었다고,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문자메시지가 날아왔군요.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부산대 민주화운동 세력의 내공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죽음과 이별, 한이 뭉친 부산대 정문은 그렇게 닫힌 공간이 될 수 없습니다. 공연은 예정대로 될 것이며, 우리는 님의 노래를 목청껏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잊지 맙시다. 부산대 정문에서 벌어진 그 모든 일들을 잊지 맙시다. 장중하면서도 슬프게 님의 노래를 부릅시다. 이 모든 갈등을 일으킨 그 "놈"을 결코 잊지는 맙시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부채를 진 부산시민들은 그 "놈"에게 언젠가는 분노의 칼날을 들이대겠지요. 그게 부산 시민들의 운명임을 결코 잊지 맙시다.


태그:#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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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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