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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동성로의 중심이다.
▲ 동성로 주요거리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동성로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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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노점상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어떨까. 북적한 길거리 풍경에 익숙한 시민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간단하게 나눠본다면, "길이 넓어지고 깨끗해졌다"와 "이제 닭꼬치는 어디서 먹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소수의 절절한 목소리까지 포함시킨다면 "그럼 우린 뭐 먹고 사나?"도 있겠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거리의 풍경을 떠올리게 된 것은 단지 '상상' 속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구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동성로'에서 이제는 길거리에 서서 음식을 먹기 힘들어졌다. 대신 지나가다 떡볶이 양념이 튀어 옷을 버릴 일도 없게 됐다. 또 걷다가 지치면 벤치에 앉아 쉴 수도 있게 됐다.

이는 지난해 8월 대구시와 중구청이 동성로 주요거리에 있는 노점상들을 없애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고 벤치를 놓는 등의 사업으로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장 그 '걷고 싶은 거리'를 걸어보기 위해 짐을 꾸렸다.

뒤늦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추억의 거리에 대한 애정뿐만은 아니었다. 노점상이 없는 명동을 상상할 수 없는 서울 시민의 무한 호기심이 발동한데다가 그 많은 노점 상인들을 내몰아야 했던 합당한 이유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성로 '걷고 싶은 거리'에 대한 시민들의 엇갈린 반응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된 동성로에는 각종 홍보물이 설치되어 있다.
▲ 중구는 대구의 중심입니다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된 동성로에는 각종 홍보물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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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노점들 대신 야외무대와 관객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 대구백화점 앞 야외무대 기존의 노점들 대신 야외무대와 관객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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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여전히 쇼핑 나온 여성들과 데이트하는 커플들로 북적였다. 삼 년만에 변화한 동성로를 찾은 나의 당혹스러움과는 달리, 이들은 아무런 변화도 감지하고 있지 않았다. 시민들이 '양념오뎅(동성로의 인기있는 먹거리)' 찾아 헤매는 풍경이라도 기대하고 있었던 건가?

"깨끗해서 보기도 좋고 덜 복잡해서 걷기 편하네요. 그런데 너무 휑해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오랜만에 대구에 내려온 장형조(20·남)씨의 대답이다. 대부분 시민들은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일단은 거리가 넓어져 다니기에 편하지만 북적했던 과거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나보다.

"다들 좋다고는 해도 전 사람 냄새나는 예전이 그리워요. 그게 '시내의 멋'이잖아요?"

김주리(48·여)씨는 이제는 텅 비어 사람들만이 바삐 오가는 한일극장 앞을 바라보며 과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녀에게 동성로는 남에게 부딪치는 거북한 곳이 아닌 옷깃을 스치며 함께 부대끼던 장소였다. 각종 길거리 음식 냄새가 섞여 불쾌한 공간이 아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추억의 거리이기도 했다.

넓어진 거리에 벤치가 놓여 있어 시민들이 쉬어 간다.
▲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시민들 넓어진 거리에 벤치가 놓여 있어 시민들이 쉬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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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해졌다는 의견보다는 노점상을 없애고 오히려 불편해졌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김혜리(21)씨와 이경숙(48)씨의 대답이다.

"급하게 물건을 사기 위해 바로 앞에 있는 노점상을 자주 찾았는데 사라져서 불편해요. 매장에 있는 물건값이 더 비싸고요."
"벤치가 자리는 많이 차지하는데 햇빛이 비칠 때에는 무용지물이에요. 그늘이 없어서 낮에는 앉지도 못하는 걸요. 대구가 꽤 더운데 말이죠."

반면에 노점상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 남성들 같은 경우에는 변화의 긍정적인 면에 무게를 두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정국(26·남)씨와 조안나(26·여)씨의 대답이다.

"길을 더 넓히지 않는 이상 사람들이 다니기에도 비좁은 거리에 노점상들이 있으면 안 되죠. 사람들끼리 부딪치는 게 너무 싫거든요."
"철거된 분들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걸어 다니기에는 훨씬 편한 걸요."

"그 많던 노점상은 다 어디로 간 거예요?"

"그런데 그 많던 노점상들은 다 어디로 간 거예요?"라고 물었다.
▲ 박은미(22)씨와 장혜정(21)씨 "그런데 그 많던 노점상들은 다 어디로 간 거예요?"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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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동성로에 엇갈린 반응을 보인 이들은 사라진 노점상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대부분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고 했으나 일부 시민들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안타깝죠. 하지만 일부 노점상인들 때문에 시민들이 불편을 겪을 수는 없잖아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게 당연한 이치니까요."

전모씨(23)의 대답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대의'와 '소의'는 무엇일까. '대다수 시민들의 원활한 보행과 거리 미관' 그리고 '소수의 생계 수단' 중 '대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다음은 친구와 나란히 벤치에 앉아 쉬던 박은미(22)씨가 한 말이다.

"걷다가 힘들 때는 앉아서 쉴 수도 있고, 거리도 전보다 깨끗해졌고 다 좋아요. 그런데 그 많던 노점상들은 다 어디로 간 거예요?"

'생계형 노점상'으로 선정, 이들의 '생존권'은 어디에?

인적이 드문 외딴 골목에 있는 동성로의 허가된 노점
▲ 동성로 노점의 대체부지 인적이 드문 외딴 골목에 있는 동성로의 허가된 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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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동성로에 있던 노점상들이 모두 철거된 것은 아니었다. 대구시와 중구청은 노점상인들을 '생계형'과 '비생계형'으로 나눠 '생계형'부터 우선적으로 대체 부지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동성로 주요 거리를 중심으로 이리저리 찾아보았으나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찾은 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외딴 골목. 양말이나 액세서리, 음반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곳 상인들을 만나보았다.

"원래는 봉산동에 대체 부지를 배정받았는데, 허허벌판에서 장사가 되겠어요? 6개월 정도 버티다가 끊임없이 요구한 끝에 여기로 온 거예요. 그런데 아직 개시도 못했네요."

초저녁인데 아직 개시도 못했다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묻어났다.

"'생계형', '비생계형'으로 나눠 우선적으로 관리할 노점상들을 뽑았어요. 우리가 바로 그 '생계형'입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기본 생활조차 안 되고 있어요. 애들 학교도 못 보내게 생겼단 말입니다."

사람들이 다니기는 했으나 중심가에서는 한참 떨어져 적막감이 감도는 대체부지를 보고 있자니 이들의 한숨이 좁은 골목을 꽉 채우고도 남는 듯했다.

"시위는 꿈도 못 꿔요. 괜히 시위한답시고 벌금만 물고 물러가는 동료들도 많이 봤구요. 어차피 우리 몇 사람 나서면 몇 백 명이 몰려와 위협하는데 게임이 되겠어요? 더 좋은 자리 마련해 줄 때까지 기다릴 뿐입니다."

이처럼 철거당한 이들에 대해 대구시는 기본 생계조차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중심가에서 벗어난 노점상은 더 이상 시민의 눈길을 잡는 노점상으로서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양말 한 켤레 사기 위해 일부러 그 좁은 골목을 찾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서울시 종로 '젊음의 거리' vs. 대구시 동성로 '걷고 싶은 거리'

규격화된 노점과 지붕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기존의 이미지에서 탈피했다.
▲ 젊음의 거리 규격화된 노점과 지붕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기존의 이미지에서 탈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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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거리'의 노점상들은 품목별로 모여 장사를 한다.
▲ '젊음의 거리' 액세서리 코너 '젊음의 거리'의 노점상들은 품목별로 모여 장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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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1년은 '대구 방문의 해'다. 도시 관광 활성화를 위해 동성로 개발이 필요했다는 점은 일리 있다. 하지만 일부 상인들의 생계수단까지 잃게 하면서 노점상들을 밀어내는 것이 최선이었나.

지난 6월, 서울시 종로구도 도시 발전을 위해 '젊음의 거리'를 조성했다. 이들의 방법은 동성로와 달랐다. 거리는 깨끗하게 유지하되, 대로변과 골목마다 난잡하게 널려 있던 노점들을 '젊음의 거리'로 옮겼다. 그곳은 과거의 '피아노거리'로 젊은이들이 주로 다니는 중심거리다.

노점들은 규격화되어 통일성이 있다. 종목별로 모여 난잡하던 광경이 사라지고 볼거리는 풍성해졌다. 그곳 상인들을 만나보았다.

"그동안 눈치 보며 일하다가 이제는 합법적으로 허가된 장소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좋아요. 세금부담은 있지만 불법으로 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아직은 홍보가 덜 된 상태라 매출은 그저 그렇지만 곧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깔끔하니 시민들도 좋고, 우리들도 마음 편하고, 참 좋습니다."

'젊음의 거리' 안에 액세서리, 꽃, 의류 등의 품목은 들어서 있었으나 여전히 먹을거리 노점상의 문제는 주변 상가의 반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나 앞으로도 종로구와 노점상인들 간의 협의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이다.   

동성로는 대구 최고의 상권이다. 따라서 안에 있던 노점상들을 철거하며 '대체부지'를 지정해 주겠다는 지켜지지 않을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단 소리다. 아직 초기 단계인 종로구 '젊음의 거리'는 대구시와 시민들, 노점상들이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모델이다.

동성로에서 만난 박은미씨가 종로구의 사례를 듣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대구시는 그걸 몰랐나요? 왜 우리는 그렇게 안 했대요?"

'걷고 싶은 거리' 사업을 담당한 대구시와 중구청이 이를 몰랐을까. '동성로는 좁아서 노점상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핑계를 댄다면 그들에게 제안한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젊음의 거리'로 한번 나와 보시라.


태그:#동성로, #젊음의거리, #걷고싶은거리, #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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