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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종로, 중구에서 거주하거나 직장을 다니는 친구, 선후배들과 얼마 전 <역사, 문화와 함께하는 서울시 종로, 중구 걷기모임>을 만들었다.

조선이 한양을 수도로 정한 지 620년이 다 되어간다. 서울에 살면서도 620년 고도 한양의 역사,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옛 한양성곽 안쪽에 있는 종로와 중구를 중심으로 한 도보여행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지난 6월의 첫 번째 모임은 사직공원에서 출발하여 인왕산~창의문~부암동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사실 부암동 순례의 꽃은 백사실(白沙室)에서 식사를 하고 술을 한잔하는 것이었다. 백사(白沙) 이항복 선생의 별장(室)이 있던 곳이라 백사실로 불리는 이곳은 종로의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별천지다.      
                          
서울성곽
▲ 혜화문 서울성곽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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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명이 참가한 첫 번째 모임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후, 7월 5일(일)두 번째 모임은 서울 성곽 동북사면을 걷는 길로 정해져 혜화문(惠化門)에 집결하여 출발했다. 혜화문은 1397년(태조 5)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쌓을 때 도성의 북동쪽에 설치한 문으로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작은 문이 설치되었는데, 이 문은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였다가 1511년(중종 6) 혜화문으로 고쳤다.

1684년(숙종 10) 문루(門樓)를 새로 지은 후 한말까지 보존되어 오다가 1928년 문루가 퇴락하였으므로 이를 헐어버리고 홍예(虹霓)만 남겨 두었는데, 일제는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의 철길을 내면서 이마저 헐어버려 그 형태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1992년 서울성곽의 일부로 복원되었다.

9시 30분 혜화문에 13명이 모여 와룡공원~말바위 쉼터~숙정문(북대문)~북악산 정상~창의문(북소문)~부암동~환기미술관까지 걷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혜화문 옆에 조성된 조그만 정자공원에 집결한 우리들은 더운 날씨지만, 천천히 길을 잡아 와룡공원 방향으로 향했다. 경신중고등학교를 우회하여 걷으면서 이미 학교 담장이 되어버린 성곽에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는 서울성곽의 아픈 흔적
▲ 경신고의 담장 눈물이 나는 서울성곽의 아픈 흔적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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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도 담장을 높이는 관계로 원래의 석축은 가운데 있고, 위에는 학교 담장이 블록으로 조성되어 있고, 석축 아래에는 안전을 위해 일제 때 덧 된 것 같은 돌담이 존재한다. 다시 말하자면 맨 아래에는 일본인들이 만든 것 같은 돌담이 있고, 조금 안쪽으로 원래의 서울성곽의 석축이 있고, 그 위에 학교에서 담을 쌓았다. 웃기고 놀라워 눈물이 다 난다.

경신고를 지나 와룡공원으로 가는 길은 혜화동에서 성북동으로 가는 4차선 도로가 나 있어서 성곽의 흔적은 없어졌다. 좌측에는 서울과학고가 보이고, 우측에는 유명한 왕돈까스 집이 보고, 박태원 생가 등이 보인다.

서울성곽 길이라는 표시가 보이고 와룡공원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좌측에 공원이 보인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연우랑 동행을 한 관계로 신경이 쓰여 걸음이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녀석은 오랜만의 아빠와 동행한 외출이라 그런지 신났다. 아빠의 등산용 지팡이를 뺏어들고 가장 먼저 달린다.

와룡공원에서 말바위 쉼터까지는 약간 힘이 드는 길이다. 성벽의 안쪽을 주로 걷는 길이라 석축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좋다. 하단부의 돌은 조선 초기에 쌓은 것이고, 상단의 반듯반듯한 돌은 조선 숙종 조에 올린 것이라 그런지 모양이 좋다. 석축 기술의 변천사를 보는 것 같아 재미있다.

말바위 쉼터에 도착을 하면 모두가 정신없이 무엇인가를 작성하는 모습이 보인다. 인근에 청와대와 군부대가 있어 군사보안상의 문제로 사진 촬영도 일부 제한되어 있고, 신분증을 보여 주고 출입증을 받아야 하는 곳이다. 나는 연우랑 함께 서류를 작성하고 출입증을 받고는 이내 숙정문(肅靖門)을 향해 올랐다.
               
숙정문에서 바라본 성북동
▲ 성북동 숙정문에서 바라본 성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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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에 오르니 우측의 성북동 간송미술관, 삼청각, 길상사 등과 좌측의 종로, 남산 등이 훤히 보인다. 숙정문은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1396년(태조 5) 도성의 사소문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창의문과 함께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따라서 일상적인 북대문의 역할은 혜화문이 담당을 했다.
           
초등학생이 아들 연우랑, 사촌동생인 연극배우 장재용
▲ 숙정문에서 초등학생이 아들 연우랑, 사촌동생인 연극배우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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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북문이지만, 서울성곽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1968년 1·21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부터 서쪽 성곽 0.5㎞, 북쪽의 진입로 0.6㎞ 구간과 함께 다시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숙정문에서 성곽 길을 따라 소나무 숲길을 오르면 곡장에 닿는다. 원래 서울 성곽 주변의 소나무들은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상당한 숲을 자랑했다고 하는데, 일제의 파괴로 현재는 이름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마음이 아팠다.

곡장은 조그만 둥근 성으로 북악산(北岳山)과 인왕산을 잇는 성곽의 줄기를 관찰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점이며, 사방의 경관을 조망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다. 서울을 전반적으로 바라보는데, 북악산 정상인 백악마루와 함께 추천할 만한 곳이다.
                 
서울성곽
▲ 성곽 서울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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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장에서 내려와 청운대를 거쳐 북악산(백악산:白岳山) 정상인 백악마루에 오른다. 북악산은 정확히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진산(鎭山)으로 경복궁과 남산이 아주 잘 보이는 곳이다. 흐린 날씨로 시야가 좋지는 않았지만, 시내 곳곳이 눈에 들어왔다.


태그:#서울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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