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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서져 내리다'는 '부서져'와 '내리다'로 분절된다. '부서져'의 원래 형태는 '부서지어'로, 그것을 다시 한 번 나누면 능동의 '부수다'에 피동의 의미를 주는 '-어지다'로 나누어진다. 부수는 자가 숨어있다. 그리고 '내리다'에는 오르고 내릴 만한 공간이 전제되어 있다. 7월의 비구름이 부서져 내리듯, 누군가의 도시는 때론 떠밀려 한없이 부서져 내린다.

집들

뜨거운 햇볕을 등지고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골목을 오른다. 부대끼며 나를 맞는 것은 '염리2구역 재개발사업조합 총회'를 알리는 현수막이다. 갈라진 골목들을 오르고 올라 너른 공터를 감싼 공사장 천이 가로 막은 길의 끝에 다다르니 경험한 적 없는 적막이 두렵다. 그 모든 곳이 집인 고양이 한 마리와 매처럼 검고 목이 두꺼운 비둘기 두 마리가 언덕 위 집의 지붕에 앉아있다. 신촌 거리의 지긋지긋한 사람들이 그립다. 가로막힌 곳을 지날 수 없어 올랐던 길을 다시 내려와 공사장 둘레로 우회하는 길을 찾는다.

사람들

국토해양부의 통계는 2005년도에 1만6467동, 06년도에 1만1951동, 07년도에 4만9791동의 건물이 재개발 사업으로 부서져야 했음을 보여준다. 재개발 사업의 대상이 되는 건물을 3인 가구가 사는 작은 집으로 가정하더라도 07년도 기준 14만9373명의 집이 부서져야 했다.

개발과 파괴의 모호한 경계
 개발과 파괴의 모호한 경계
ⓒ 이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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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 가림천 안의 집과 건물들은 이제 한두 채만 외딴 성처럼 남아있다. 현재는 공사를 지휘할 임시건물이 세워지는 중이다. 천에 난 구멍 들여다보기를 그만 두고 돌아서 걷는다. 띄엄띄엄 낡고 허름한 간판 아래 놓인 어두운 가게 안에 사람들이 있다. 다리를 꼬고 바둑을 두는 남자들,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 불은 꺼져 있어도 사람들은 깨어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바닥을 끄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누군가의 다리가 보인다. 발이 보이다 사라진다. 쫓아 골목 안을 들여다보니 어귀에 할머니가 앉아있다. 무릎까지 비닐이 싸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서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할아버지 한 분이 헐떡이며 고개를 올라와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골목
 골목
ⓒ 이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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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바라보는 내 심정은 흡사 외국의 낯선 곳을 겪는 이방인이다. 3층 건물의 창 없는 베란다가, 오르는 계단이 보이는 어두운 현관이, 아치 형태를 갖춘 4층의 난간과 집과 집 사이에 또 다른 세계를 만드는 틈들이. 그것들이 나를 이방인으로 두리번거리게 한다. 경이로움에 같은 위치에서 열 댓 장의 사진을 찍고 있는 카메라 렌즈 안으로 푸른색 체육복 차림에 가방을 멘 남자 아이가 들어온다. 아이야 반갑구나. 망설이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 중간쯤 갔을 때 코가 납작한 하얀 강아지가 내 앞에 서 으르렁 거린다. 이름은 곰순이다. 이름을 묻는 내 이야기에 대답해 주는 아주머니의 말이 정겹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떠든다. 강아지는 온순하다.

사람들의 마음

'염리 제2구역'에서 시작해 공사 구역 한 면을 둘러 내려오니 또 다른 현수막이 펄럭인다.

'경, 염리3구역 조합설립 인가, 축'

70, 80년대 정부의 도시화 정책은 도시의 땅값을 크게 올렸다. 여기에 돈이 몰리면서 집들은 투기의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문제가 된 실수요자의 거주 안정을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 재개발, 재건축 정책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것은 어느 정도 재산 증식 수단으로 변질된지 오래다. 그리고 이러한 변질은 또 다른 투기의 기회를 끊임없이 원하고 있다. 이미 재개발은 주거안정이라는 본래의 필요와 상관없이 시작될 수 있고 원주민의 재정착률이 40%대에 불과하더라도 최대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으로 마무리된다. 투기심리와 파괴적 재개발의 고질적 악순환이 진행중이다.

'존경'하는 조합원님?
 '존경'하는 조합원님?
ⓒ 이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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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남구 이천동의 재개발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책은 이천동 재개발 추진위원장이 '건물 높이 15층 이하' 규정에 대해 분노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에게 새로운 아파트에 누가 와서 살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마을, 그리고 마음은 이제 사람들 아닌 건물들이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이익을 원하는, 혹은 이익과 주거를 동시에 원하는 사람들과 그저 편히 쉴 곳을 원하는 사람들은 쉽게 분리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일종의 변모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때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부서지는 집들이 내 것이 아니라고, 자신은 절대 난장이가 될 일 없다고 자신하기엔 위험한 도시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

물리적 공간과 그 주체, 주체에 대한 인식이 함께하는 도시는 그러므로 세계다. 세 개의 합은 그것을 넘어서는 더 큰 무언가를 포함하기 때문에 그렇다.

골목의 풍경
 골목의 풍경
ⓒ 이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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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어지고 다시 만들어 지는 것은 도시의 본성 중 하나로 보인다. 그러나 본성이라고 해서 그 영향마저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는 없다. 살아온 집이자, 살아가야 할 곳인 동시에 사람들의 세계인 도시의 생과 사는 단순히 건물이 부수어 지고 새로운 건물이 대신 들어서는 것과 같은 의미일 수 없다. 빠르게 들어서는 새로운 건물들은 이미 부서져 버린 누군가의 세계, 그 폐허를 깔고 앉아 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들을 부수는 망치는, 누군가의 세계를 부수고 있는지 모른다.


태그:#재개발, #아현, #염리, #골목,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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