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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2년 동안 입시교육을 받다가 이제 다시 직업 교육을 하는 청소년들. 꿈을 향해 다시 출발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렇지만 어른들 시선은 곱지 않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2년 동안 입시교육을 받다가 이제 다시 직업 교육을 하는 청소년들. 꿈을 향해 다시 출발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렇지만 어른들 시선은 곱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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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 마지막 날인 6월 25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산업정보학교 식당으로 학생들이 한두 명씩 모여든다. 생김새만큼이나 교복도 제각각이다. 각각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2년 동안 공부하다가 고3 시절은 이곳에서 직업 교육을 받는다.

입시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경쟁에서 밀려난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제2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국영수 수업 때는 놀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할 때는 구슬땀을 흘리고 이해하려고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다. 인터뷰하러 모인 친구들은 눈빛이 살아있었고, 자신에게도 당당했다.

시험을 끝내고 한 시간 가량 차분하게 기다린 학생이 있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학생 12명 가운데 몇은 질문을 던지기 전에 뿔이 나 있었다. 각각 선생님들에게 10여 분 정도만 이야기하면 된다고 들었는데, 와보니 한 시간 정도는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말에 속이 상한 것이다. 허경대 선생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양해를 구했고 한 시간 넘게 기다린 친구들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대신 자장면과 짬뽕을 '쏘았다'.

고3, 다시 꿈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아이들

박인재.  "관심있으니까 힘든 것도 참을 수 있다."
▲ 박인재. "관심있으니까 힘든 것도 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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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근(정보통신과) 학생은 인터뷰 직전 머리가 단정하지 않다고 선생님에게 지적받고 미용실에 갈 뻔했다. 대근이는 시험이 끝날 때까지 머리카락은 물론 손톱까지 깎지 않아야 한다는 자신의 '징크스'를 설명하고서 원래 모습대로 참여했다. 만약 인터뷰 때문에 대근이가 징크스를 깼다면 많이 미안할 뻔했다.

선생님이 시켰다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강압이 없다. 동의하지 않으면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선생님도 잘못은 솔직하게 말하고 학생들에게 이해를 구한다. 상대가 학생이라고, 어리다고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지 않는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이런 학풍 덕분일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2년 동안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던 친구들은 이곳 서울산업정보학교에서 꿈을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한 학기 공부를 마쳤는데, 중간 평가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박인재(자동차과) : "본교에서 공부한 것보다는 재미있다. 힘들기야 거기서 거기지만 여기서 공부할 때가 시간이 훨씬 빨리 간다. 무거운 자동차 부속품을 만질 때 힘들기도 하지만, 차에 관심이 많으니까 참을만 하다."

강현모(연극영화과) : "예전에는 수업을 아예 듣지 않았다. 이곳에서 단편영화를 찍었는데, 수업이 즐거웠다. 숙제도 했다.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오는 건데, 프리스타일의 연애라는 곡으로 개인과제를 제출했다. 이제는 대학 진학도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강산(귀금속공예) : "처음엔 쉬울 줄 알았는데 할수록 어렵다. 그래도 적성에 맞으니 좋다."

건축, 영화, 미용... 적성 찾으니 배우는 재미도 ↑

산이 외에도 대부분 학생들이 지금 공부가 적성에 맞는다고 말했다. 국영수를 공부하는 것보다 100배는 재미있다고 했다. 건축, 영화, 미용, 자동차 등 적성을 찾아 배우는 재미를 터득하니 이제는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이 다들 굴뚝같다. 아무리 그래도 4년제 대학은 언감생심이다. 국영수 중심으로 평가하기 때문. 전문대를 들어가 이후 진로를 모색해보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강산. "우리 사회는 공고 나오면 인간 취급도 안 해요."
▲ 강산. "우리 사회는 공고 나오면 인간 취급도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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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들은 행복한 셈이다. 처음 직업 교육을 받으려 산업정보학교 문을 두드리지만 그마저도 흥미를 못 붙인 이들은 다시 이전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까지는 이 학교 안에서 전과하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 허 선생님은 "적성을 찾아 과를 옮길 수 있으면 이상적인데, 아직까지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 정책은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2년 동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다가 뒤늦게 직업훈련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입시 교육에 흥미를 잃으면서 수업시간에 집중하기보다는 잡생각을 하거나 자는 데 익숙했기에, 공부 내용이 달라졌더라도 이전 습관을 고치기가 만만치 않다.

이정선(건축모델링과) 학생은 "직업 교육도 관심이 없었지만 보충(수업), 야자(야간자율학습)는 더 싫어서 여기 와 앉아 있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자격증 따는 재미가 붙으면서 할 만하더라"라고 말했다.

한겨레(미용예술과) 학생도 "입시공부나 미용공부나 어렵기는 같지만, 어려운 일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미용 공부가 훨씬 낫다"고 말했다. 어렵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혹은 좋아졌기 때문에 참는 거다. 그럼 고3이 되어서야 다른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건 누구 선택이었을까.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내 의지로 선택했다"

 서울산업정보학교 조리 수업 모습. 모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어서 배우는 게 즐겁다.
 서울산업정보학교 조리 수업 모습. 모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어서 배우는 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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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용 "부모님 설득해서 내 발로 들어왔다. 나중에는 부모님도 지지해주셨다."
▲ 이주용 "부모님 설득해서 내 발로 들어왔다. 나중에는 부모님도 지지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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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용(조리과) :
"내 의지로 왔다.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계속 하겠다고 말씀드리니 허락해주셨다."

이권우(공조CAM과) : "사실 관심이 없었다. '당기는' 과도 없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가라고 하셔서 왔는데, 하다보니까 정이 붙었다. 실습하는 재미가 있다."

손대근 : "난 부모님이 반대한 케이스다. 주변에서 다들 반대하더라. 어차피 본교에 있어보았자 뾰족한 수가 없다고 설득했다."

이화성(웹마스터과) : "내 발로 들어왔다. 그냥 그렇게 노는 것보다 먹고 살 길을 찾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부모님도 내가 뭐든지 해서 보기 좋다고 하셨다."

선명종(컴퓨터그래픽과) : "난 고2 때 담임선생님이 추천했다. 누나 둘이 모두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갔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내가 실업계 고로 진학하는 걸 반대했다. 처음엔 학원도 다니고 했지만, 차츰 다 끊고 손 놓아버렸다. 학교에서는 동아리에 가입해 춤추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렇지만 춤으로 먹고 살기에는 이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더라. 그래서 컴퓨터그래픽과에 진학했다. 컴퓨터가 제아무리 어려워도 국영수보다는 쉽더라."

강현모 : "직업반 이미지는 안 좋다. 부모님께 잘 하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반대했다. 아빠도 처음엔 반대했지만 가라고 하셨다. 열심히 해서 반에서 '톱'했다. 그 뒤에는 반대하셨던 엄마도 뒤에서 은근히 도와주신다."

한겨레 : "서울산업정보학교는 교율이 엄격하다고 소문났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나는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난 평범한 걸 좋아하지 않아 만날 튀어서 부모님이 걱정했는데, 얌전하게 지내는 곳이라니 얼마나 좋아하셨겠나. 부모님이 이번에는 쫓겨 오지 말라고 하시더라."

"본교에서는 '취조' 당했지만 여기서는 '격려' 받는다"

 서울산업정보학교 영화영상 수업 모습. 자기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니까 시키지 않아도 흥이 나서 연구한다.
 서울산업정보학교 영화영상 수업 모습. 자기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니까 시키지 않아도 흥이 나서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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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지내는 것 같다. 배우는 내용도 다르지만, 선생님 등 관계도 달라진 것도 한몫했겠다.
한겨레 : "규율만 엄격하게 적용하고 학생들 생각은 안 하는 분보다 감싸주면서 타이르는 선생님들이 많다. 본교에서는 시험 성적이 나쁘면 '너 대학 갈 거냐'고 취조했다. 여기서는 못하면 잘 할 수 있는 길을 일러준다. 격려도 받는다."

선명종 : "인문계 고는 중학교 때 배운 걸 전제로 가르친다. 나 같은 친구들은 따라가기 어렵다. 선생님들도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차별한다. 그렇지만 여기는 누구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모르더라도 가르쳐주는 게 손이 덜 간다."

- 새롭게 시작하는 마당에 닮고 싶은 사람은 있나. 앞으로 되고 싶은 롤 모델은.
이정선 "내 꿈은 소박하다. 발로 뛰며 배우면서 살고 싶다."
▲ 이정선 "내 꿈은 소박하다. 발로 뛰며 배우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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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 :
"와 닿는 사람은 없다. 책상에서 공부만 하는 사람보다 발로 뛰며 배워가는 사람이 더 매력 있다. 나도 그렇게 공부하고 싶다. 자격증을 따면 동네에서 페인트 가게라도 차릴 수 있지 않을까."

윤찬영 : "롤 모델은 없지만, 전기 자동차 개발에 앞서 있는 도요타 같은 곳에서 연구해보는 게 꿈이다."

강현모 : "브라이언 트레이시라는 사람이 내 롤 모델이다. 서른이 되어서야 대학에 갔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포기할 줄 몰랐다. 그래서 성공했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박인재 : "내 롤모델은 박지성이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꾸준히 뛴다. 나도 그처럼 꾸준히 하다보면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올해는 자동차 정비 기능사, 스무살이 되어 전문대학 가면 산업기사를 취득하고, 나중에 기능장까지 도전해보고 싶다. F1레이싱 정비팀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은 게 꿈이다. 페라리 팀을 좋아한다."

선명종 : "난 아버지를 닮고 싶다. 난 반포에 사는데, 그곳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한다고 해도 내 적성이 아니라면…. 공부 못해도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나랑 같은 생각을 품은 사람이 알아보겠지. 아버지도 그렇게 살고 있다."

이화성 : "디시인사이드 만든 김유식을 좋아한다. 나중에 내가 만든 홈페이지가 그 사람 것처럼 활성화되면 좋겠다."

"실업계 고교 다니면 나쁜 짓만 하는 줄 안다"

-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 험난하겠다. 우리 사회가 상고 출신 노무현, 전문대 출신 미네르바 같은 이들에게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윤찬영 "그동안 시간 죽이며 살았다. 스무살이 되면 시간 낭비하지 않고 살고 싶다."
▲ 윤찬영 "그동안 시간 죽이며 살았다. 스무살이 되면 시간 낭비하지 않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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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찬영 :
"노무현은 퇴임 후 자기 고향에 내려가 잘 살고 있는데, 힘이 약해졌다고 공격하는 것 같았다. 그가 과오는 있지만, 그런 일로 죽는 건 씁쓸한 일이다."

이화성 : "대통령 시절에 탄핵한다고 난리더니 죽고 나니까 훌륭한 사람이라고 한다. 어른들은 참 양면적이다."

강산 : "지금 사회에서는 공고 나오면 인간 취급도 안 한다. 고등학교 나왔다면 알아주지도 않는다. 실업계 출신이라면 인상부터 달라진다. 그러니 나도 위축된다. 실업계 고교 다니면 나쁜 짓만 하는 줄 안다."

산이와 같은 학생들 심정은 이 학교 선생님들이 잘 안다. 학생들만 차별을 느끼는 게 아니다. 교사들도 과학고나 외고 교사라면 올려다보지만, 산업정보학교 교사라면 내려다본다는 게 이 학교 한 교사의 고백이다. 그러니 학생들 심정은 오죽하겠느냐는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이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교사들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은 10대 끄트머리에 와서 새롭게 시작했다. 20대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

"20대엔 노가다를 해서라도 나를 키우고 싶다"

윤찬영 : "그동안 인생을 낭비하며 아무 생각 없이 놀았다. 20대에는 시간 낭비 안 하고 살고 싶다."

한겨레 : "미용하면 대학 갈 필요 없다고 말한다. 나는 대학도 가고 학위도 받고 싶다. 세계를 돌며 그 나라만의 특색 있는 문화를 배워오고 싶다. 한비야처럼 봉사하고 싶다. 봉사는 학벌로 차별하지 않으니까."

이정선 : "선생님들은 '이건 대학 가면 배우니까 알아만 두라'는 식으로 말한다. 정말이지 나도 공부하고 싶다. 그렇지만 책상에 앉아서 배우는 방식은 싫다. 인내심이 부족해서. 발로 뛰며 살아 있는 지식을 얻고 싶다. 노가다를 해서라도 나를 키우고 싶다."

한겨레 "한비야 씨처럼 세계를 누비며 봉사활동하고 싶다. 봉사활동은 학벌 가지고 차별하지 않을테니까."
▲ 한겨레 "한비야 씨처럼 세계를 누비며 봉사활동하고 싶다. 봉사활동은 학벌 가지고 차별하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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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용 :
"대학에 가고 싶지 않다. 대신 세계를 돌며 요리를 배우고 싶다. 실력이 쌓이면 나만의 퓨전요리 집을 차리고 싶다."

이권우 : "난 후회만 안 했으면 좋겠다. 후회할까봐 걱정이다."

손대근 : "나 역시 후회 없이 살고 있다. 공부를 조금 잘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저런 후회를 하며 살았다."

이화성 : "대학 가서 사회에 대한 대비를 하고 싶다. 직장도 제대로 된 데 잡고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싶다. 아직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조금 불안하다."

선명종 : "내가 원하는 대학 가서 앞길 개척하고 군대 가서 빨리 결혼하는 게 꿈이다. 앞가림만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면 결혼하고 싶다."

임수렬(실내디자인과) : "건축가로 이름 알리면 좋겠다. 집이 가난한 사람들, 낡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통해서 말이다. 해비타트 같은 곳에서 참여하고 싶다."

이들이 꾸는 꿈은 구름만큼이나 높아 보이기도 하고, 안타까울 정도로 소박하고 현실적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한 번 부딪쳐보고 싶다는 마음만은 한결 같았다. 만만치 않은 세상과 맞서면서 성공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겠지만, "이제는 후회 없이 살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입시공부에서 밀려난 현실을 체념하지 않고, 다시 인생 공부를 시작한 청년답게 활기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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