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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인류는 자신들이 건설한 역사적 토대를 망각하곤 한다. 그리곤 마치 새로운 개념을 창안해낸 듯 "유레카"를 외치며 자화자찬한다. 요즘 '뜨는' 용어인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혹은 대중의 지혜(The Wisdom of Crowds)가 바로 그러하다.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잠시 17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한 권의 정치철학서를 펼쳐보자. 프랑스의 철학가인 몽테스키외는 저서 <Sprit of th Law 2권 2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인간의 장점을 판별할 수 있는 민중의 자연적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테네인들과 로마인들이 계속적으로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운이었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집단지성'이 역사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훌륭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은 몽테스키외의 경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입증됐다. 제임스 서로위키의 <대중의 지혜>에 의해 근래에 탄생한 기발한 아이디어는 아니라는 얘기다. 몽테스키외나 그 이전 민주주의 제도에 관심을 가져왔던 저술가의 수사를 변형,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의 집단 지성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겉그림.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겉그림.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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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리드비터의 저서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는 '집단지성'의 역사적 기원을 파헤쳐 민중의 지혜를 웹2.0 시대에 걸맞게 세련된 모습으로 복권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제임스 서로위키가 <대중의 지혜>에서 놓쳤던 집단지성의 역사적 맥락을 그는 하나 둘씩 퍼즐 맞추듯 복원해낸 것이다.

우선 집단지성의 근간이랄 수 있는 공유문화의 발원을 ▲ 히피 ▲ 농민 ▲ 컴퓨터광 ▲ 연구자의 문화적 행태에서 찾고 있다. 웹이 창조하는 문화는 컴퓨터광으로 비유되는 탈산업화 네트워크와 히피적으로 비유되는 저항문화의 반산업화 이데올로기, 농부로 비유되는 산업화 이전의 조직관이 결합해 형성된 강력한 조합물이라는 것이다.

<일리어드>와 <오딧세이>가 호머의 단독 창작물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전역의 시인과 공연자 수백 명이 발전시켜온 집단지성의 산물이며 1800년대 기술자 공동체가 발간한 <린스 엔진 리포터>라는 간행물도 모두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협업을 장려한 사례가 모두 집단지성의 역사적 증거물이라고 그는 해석한다. 

<미디어의 이해> 마셜 맥루한이 관료제 이전의 인본주의와 부족사회로의 복귀를 주장한 것도 롤랑 바르트가 '저자가 죽어야만 텍스트의 이해에 적극적으로 몰두하는 참여자로서의 독자가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모두 집단지성의 인류사적 보편성을 '지원'하기 위해 동원한 문구들이다.

그리곤 엘리트 문화와 민중 문화 사이에 'vs'를 위치시킨다. 집단지성의 부상은 그간 엘리트 문화에 의해 지배당하고 경시돼온 민중 문화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그리고 "민중문화의 물결은 디지털이라는 도구 덕분에 명사 중심의 인공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주류 문화를 교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엘리트들은 진입 장벽을 높힘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존해왔다. 난해한 이론과 그들만의 고답적인 문법을 익히지 않고선 그들 집단의 바운더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도록 허락한 도구가 바로 웹 2.0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브리태니커의 권위를 넘어서고 있는 위키피디아, MS의 독점적 소유 전략에 반발해 확산되고 있는 오픈소스 프로젝트, 프로페셔널 저널리스트들과 끊임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시민기자 등은 엘리트 문화에 저항하는 민중 문화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지성 프로젝트의 5가지 성공원칙

6.10 항쟁 기념일인 지난해 6월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6.10 항쟁 기념일인 지난해 6월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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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집단지성'은 '집단광기'라는 표현을 등장시킬 만큼이나 위험스러운 존재기도 하다. 항시적으로 선을 향해 작동하지 않는 데 대한 비난이 쏟아지면서 이 자체에 대한 회의론자들도 많아진 상황. 이로 인해 집단지성을 주제로 한 적지 않은 저서들은 모두 작동의 조건을 엄격하게 내걸며 집단광기라는 반론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도 예외는 아니다. <대중의 지혜>의 '지혜로운 대중의 조건 3가지(다양성, 독립성, 분산과 통합)와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다. 저자의 시각에 따라 어떤 조건이 부가되고 또 어떤 조건이 삭탈되는지도 살펴보길 권한다.

찰스 리드비터는 '집단지성 프로젝트의 5가지 성공원칙'이라는 표제로 집단지성의 작동 조건을 제시한다. ▲ 핵심의 원칙 ▲ 기여의 원칙 ▲ 관계 맺기의 법칙 ▲ 협업의 원칙 ▲ 창의성 원칙 등이다. 창의성의 원칙은 제임스 서로위키의 독립성, 기여의 원칙은 다양성과 맥을 같이 한다. 여기에 두세 가지를 조건을 더 부가함으로써 집단지성과 집단광기의 차이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대중의 목소리와 황우석 사태 당시 터져나온 그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왜 집단지성과 집단광기로 극단적으로 나뉘는지 이 조건을 적용해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집단지성의 관건은 다수의 유능한 기여자들을 협업 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이라며 엘리트의 참여를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즉 민중만의 지혜가 아니라 말하자면 'Pro-Am'(프로+아마추어 결합) 모델이 집단지성 프로젝트 성공의 전제 조건임을 역설한 것이다.

집단 지성과 민주주의

검찰이 황우석 교수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 발표를 한 지난 2006년 5월12일 오전 황 교수 지지자들이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검찰이 황우석 교수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 발표를 한 지난 2006년 5월12일 오전 황 교수 지지자들이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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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에서 가장 인상적인 챕터를 고르라면 6장 '집단지성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꼽고 싶다. 집단지성이 민주주의에 어떤 기여를 하고 또 할 것인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책이 왜 실용서가 아닌 사회과학서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측면이기도 하다.

이 장에는 귀에 익숙한 정치학자와 사회학자의 이름이 등장한다. 하버마스와 한나 아렌트가 대표적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끊임 없는 대화를 허용해 진정한 민주주의 토대를 형성한다"(하버마스), 시민들은 직접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사물의 작동 방식을 탐구하고 정책결정을 주도하는 전문가의 권력에 도전하면서 민주주의를 만드는 뛰어난 장인이 될 것"(한나 아렌트), "웹은 직접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구원할 것"(딕 모리스)이라는 발언에서 집단지성의 힌트를 발견하고 민주주의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특히 웹의 협업적 특성이 불평등을 완화하고 웹의 이용이 민중의 다양한 발언과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민주화를 촉진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중동의 예를 살펴보면 충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집단지성은 무엇인가>는 비즈니스와 관련한 대단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대중의 지혜>가 시장주의자의 시각이 또렷이 묻어나고 있다고 한다면, <집단지성의 무엇인가>는 시장 비판적 시각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집단지성>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웹 사용자들의 경향성을 진단하고 예측하고 싶다면 이 책을 반드시 권하고 싶다.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

찰스 리드비터 지음, 이순희 옮김, 21세기북스(2009)


태그:#집단지성은 무엇인가, #집단지성, #대중의 지혜, #제임스 서로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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