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담근 오이지이다. 소금물을 팔팔 끓여 붓는다.
 내가 담근 오이지이다. 소금물을 팔팔 끓여 붓는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여보, 오이가 또 달렸을까? 눈에 보이면 두세 개만 따지?"
"뭐 하려고?"
"점심에 고추장 찍어먹게요."
"풋고추도 몇 개 따야겠네!"

아내가 상추, 쑥갓 등 쌈 채소를 뜯으면서 나를 고추밭, 오이밭에 가라고 한다. 야채 쌈으로 점심을 준비할 모양이다. 우리 텃밭엔 야채와 푸성귀가 한창이다. 조금만 손을 뻗치면 반찬거리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바로 거둬 금세 먹는 맛이 참 싱싱하다.

요즘 들어 작물 자라는 게 하루가 다르다. 텃밭이 초록으로 가득하다. 초록에는 소담한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자연은 씨를 뿌리면 움이 트고, 가지를 치고, 꽃을 피워 기쁨의 열매를 맺어준다. 열매를 맺기까지는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하지만, 작물을 가꾸면서 자연을 배우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고추밭에 풋고추가 주렁주렁 달렸다. 가지가 벌어진 곳마다 달린 고추가 숱하다. 고추 여남은 개를 땄다. 며칠 전만 해도 약이 덜 차 맛이 밋밋했는데, 이젠 매운 고추 맛이 들었을 나나?

장마철에 오이가 주렁주렁!

한창 오이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있는 우리 오이밭. 수시로 드나들며 오이를 수확한다.
 한창 오이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있는 우리 오이밭. 수시로 드나들며 오이를 수확한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발길을 오이밭으로 옮긴다. 오이덩굴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고 있다. 마디마디에 오이가 달렸다. 오이는 하루에 얼마쯤 자랄까? 요즘은 따가운 햇살과 수분을 많이 흡수해서 그런지 정신없이 자란다. '장마철에 오이 자라듯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오이 암꽃
 오이 암꽃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오이 수꽃
 오이 수꽃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널찍한 잎사귀 사이로 숨겨진 오이가 숨바꼭질을 한다. 노란색의 암꽃과 수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벌들이 꽃을 찾아 윙윙댄다. 녀석들이 옮겨 다니면 수분이 되고, 그러면 암꽃에 달린 열매는 통통한 살을 찌우리라. 꽃이 벌을 손님으로 맞이하는 동안, 열매는 계속해서 달릴 것이다.

"여보, 오이 딸 게 너무 많아!"
"엊그제도 따서 몇 사람과 나눴는데, 또 달렸어요?"
"쭉쭉 뻗어 주렁주렁이야!"
"그럼 죄다 따세요."
"고추장 찍어먹는다며 많이 따서 뭐해?"

"다 쓸 데가 있죠. 제때 안 따면 오이순은 늙잖아요."
"그럼 많으니까 오이지나 담가볼까?"
"난 오이진 별로인데! 부추베다 오이소박이 담그면 좋은데."
"그건 일이 많잖아! 그리고 밖에 나갈 일이 있다며?"
"그럼 당신이 오이지 담가? 별로 어렵지 않으니까!"

한 집에 사는 사람도 식성이 다르다. 아내는 오이소박이를 좋아하고, 난 오이지를 좋아하고! 우리 집 애들도 오이지에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까 아내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오이지를 담가보기로 했다.

잎사귀 사이로 무럭무럭 자란 오이가 드러났다.
 잎사귀 사이로 무럭무럭 자란 오이가 드러났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오이가 달린 모양이 여러 가지다. 밑으로 곧게 뻗어 보기 좋은 것은 상급이다. 따는 시기가 좀 지난 것은 어느새 팔뚝만하다. 요놈은 얼마 안 있어 노각이 될 것이다. 영양이 부족한 것들은 허리가 꼬부라지고, 끝이 가늘다. 허리가 잘록한 놈은 딸 때가 좀 이르다.

오이지는 예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아내 표정을 보아하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셈인 모양이다.

"작년엔 오이지 담가 우리는 조금 먹고, 남들이 잔치를 했는데."
"맛나게만 해주라구. 올핸 많이 먹을 테니까. 무쳐도 주고, 냉국도 하고…."

우리는 해마다 오이지를 넉넉하게 담가먹는다. 넉넉하면 여러 이웃들과도 나눠먹는 것도 많다.

난 예전 즐겨먹었던 음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중 장아찌가 가장 생각난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찬거리를 오래두고 먹으려면 절였다. 소금에 절이기도 하고 간장, 된장, 고추장에도 절여두었다. 무, 오이를 비롯하여 콩잎, 깻잎, 고춧잎, 마늘, 양파 등을 절이면 나중 맛난 장아찌가 되었다.

장아찌는 짠맛을 들여 저장기간을 연장해서 먹는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다. 절인 장아찌에 깨소금, 참기름, 파, 마늘 등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먹는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입맛이 깔깔할 땐 찬물에 밥을 말아서 장아찌반찬 하나면 입맛이 돌아오기도 했다.

특히, 장마철에 담근 오이지는 무더운 여름반찬으로 최고였다. 오이지무침뿐만 아니라 물에 타먹는 오이지냉국 맛 또한 일품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 냉국은 다른 반찬 없어도 시원하게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었다.

또한 오이지는 소중한 도시락 반찬거리였다. 지금이야 학교급식이 있어 도시락 싸는 일도 없지만, 예전 양은도시락통에 단골로 등장한 오이지는 짭조름한 맛이 참 좋았다. 국물이 흘리지 않도록 꼭 짜서 무쳐놓은 '어머니표 오이지무침'이 가끔 생각난다.

오이지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반찬이다.

오이지는 소금물을 끓여 부어 담근다

점심을 먹은 뒤, 아내는 오이지 담그는 것은 나 몰라라 하고 차를 몰아 밖으로 내뺀다. 뭐가 그리 만날 바쁜지!

혼자서 슬슬 오이지를 담가볼까? 물과 소금의 비율은 얼마가 좋을까? 이럴 땐 인터넷이 선생님이다. 물 12컵에 소금 2컵 정도의 비율이 가장 적당하단다.

우리가 오이지를 담그려고 거둔 오이이다.
 우리가 오이지를 담그려고 거둔 오이이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간기가 빠진 소금과 고무통을 준비했다. 수확한 오이가 30개 남짓이니까 소금은 반 바가지면 될 것 같다.

오이지 담는 것은 간단하다. 우선 오이를 씻지 않고 고무통에 켜켜이 쌓는다. 그리고 소금물 비율을 맞춘다. 적당한 비율의 소금물을 팔팔 끓인다. 소금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오이가 담긴 고무통에 붓는다. 마지막으로 오이가 소금물 위로 떠오르지 못하도록 나뭇가지를 가로 걸치면 끝이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오이지가 생각난 듯 내게 물었다.

"당신, 오이지 담갔어요? 어디 제대로 했나 점검해볼까!"

아내가 오이지가 담긴 고무통 뚜껑을 열어본다. 뜨거운 소금물에 절인 오이가 벌써 쭈글쭈글하다. 색깔도 노랗게 변했다. 아내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담근 지 하루가 지난 오이지. 일주일 후 오이지무침과 오이지냉국으로 입을 즐겁게 할 것이다.
 담근 지 하루가 지난 오이지. 일주일 후 오이지무침과 오이지냉국으로 입을 즐겁게 할 것이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아내는 이틀 있다가 소금물을 다시 한번 끓여 붓자고 한다. 그땐 소금물을 식혀서 부어야한다고 한다. 그러면 소금물이 지저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뚜껑을 닫으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아내가 말을 꺼낸다.

"수고 했네요. 일주일 지나면 맛이 들겠네! 청양고추, 양파, 파를 송송 썰고, 얼음 둥둥 띄워 시원한 오이지냉국을 만들게요. 오이지무침도 하구요. 당신, 손맛이 내 입맛에도 맞으려나?"

일주일 후가 기대된다.


태그:#오이지, #오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