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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눈물 나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6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이 재래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세가 대단하다. 엄연히 '서민' 출신 대통령이고 꾸준히 서민 정책을 펼쳤는데 억울하게 부자 정권이라는 누명을 썼다는 것이다.

 

허나 진정한 모습은 역시 서민을 위하는 대통령이며 이제 그 진면목을 보여주겠다는 호방한 선언이다. 그리하여 시장을 한 바퀴 휘, 둘러보니 상권은 말라 쪼그라들어 겨우 입에 풀칠만 하는 지경이라. 대통령이 "왜 그러냐"고 물으니 시장의 영세상인들은 입을 모아 "대형마트 때문"이라 하소연을 한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대통령은 어묵과 뻥튀기와 크림빵을 사서 주위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러면서도 대형마트를 규제할 수법이 마땅치 않다고 난색을 표했다. 헌법재판소 가면 반드시 패소한다고 서글프게 이야기했다. 대통령은 정말이지 서민을 살리고 싶었으나 대형마트와 싸우면 질 것이 뻔해 못하겠다니, 어찌 눈물 나는 이야기가 아닐쏘냐. 그 와중에도 재래시장에 인터넷 직거래를 권하는 농담까지 건네셨으니 더욱 훈훈하다.

 

어묵 좀 먹는다고 서민대통령 될까

 

그런데 자칭 '서민 대통령'에 관한 오해가 수북하다. 서민론도 좋고, 중도실용론도 좋은데 그러자면 일단 오해부터 풀고 갈 일이다. 그러니 내 마음에 응어리진 오해부터 풀어줬으면 좋겠다. 일단 이명박 대통령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걱정하면서 비정규직 법안을 밀어붙이려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또 철거민들의 보금자리는 물론 목숨까지 빼앗은 용산 참사를 설명해야 한다. 사교육 대책을 고심한다면서 자립형 사립고, 특수목적고를 무더기로 짓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말하며 '명박산성'을 쌓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교직원이 시국선언에 참여하면 누구든 모조리 징계하겠다는 나라에 양심의 자유가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설명할 것이 많기도 하다. 그러면 가장 최근에 생긴 '오해'부터 풀어봤으면 한다. 요즘 한창 '뜨는' 오해는 이른바 '부자감세 서민증세'다. 만인이 알다시피 이명박 정부는 취임 이후 감세정책을 가열차게 추진했으며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양도세. 소득세 등을 줄줄이 도마에 올렸다.

 

이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감세의 70% 가까운 혜택은 서민과 중소기업에 돌아가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대한민국 우파의 신앙으로 자리를 잡은 '낙수효과론'의 열렬한 간증이다. 낙수효과란 쉽게 말해 부자가 주머니를 열면 콩고물이 떨어져 서민도 살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일까?

 

MB정부는 술과 담배 권하는 정부?

 

실상은 좀 다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 정책은 주로 부자와 대기업에게 주는 '감세선물세트'란 말이 나돌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전체 세금부담 경감액 중 77.3%가 소득 상위 20% 계층에게 몰렸고, 특히 소득 상위 10% 계층에게는 57.4%가 돌아갔다.

 

나머지는 거의 무의미한 수준의 혜택을 받았다. 작년 기획재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중에서 50.4%가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탈세한 것이 아니라 내고 싶어도 못 낸다. 소득이 면세 기준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노동자의 절반이 소득세 감세 혜택과는 아예 인연이 없는 셈이다. 그나마 나는 근로소득세 낼 만한 돈은 버니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그런데 심란한 마음에 들리는 '확인사살'적인 발표가 있었다. 지난 25일, "경기 침체로 세수가 세입예산보다 11조2000억 원이나 모자랄 것"이라며 "술과 담배를 비롯한 간접세 인상을 검토하겠다"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이 독한 울화를 불러왔다.

 

부익부 빈익빈의 못된 세상, 술과 담배라도 있어야 들끓는 마음을 달래지 않겠냐는 말이다. 설마하니 정부가 건강을 걱정해주는 걸까? 담뱃갑에 '여러분 세금으로 4대강 열심히 파겠습니다' 쓰면 전국에 금연 열풍이 불 것이라 장담한다. 정부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으면 술과 담배를 국가 차원에서 권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여튼 더욱 화나는 대목은 "감세 기조는 유지하되 필요하면 비과세, 감면제도 정비를 통해 증세가 필요한 부분은 증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간접세, 비과세 제도, 감면제도 모두 서민이 피부로 느끼는 세금제도다. 하루하루를 악착같이 살아가는 서민의 생활은 더욱 가혹해질 테다.

 

강만수 장관 시절, 여론이 감세정책을 비난하자 정부는 아무 걱정 없다며 큰소리를 쳤다. 허나 이제와 '11조2000억'이라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과연 누가 구멍을 뚫었을까? 올해 정부가 감세한 액수가 약 12조 원이니 구멍 크기에 딱 맞는 셈이다. 부자 세금은 줄이고, 서민 세금은 올린다는 비아냥거림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서민이 부자를 위하여 돈을 모금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건 '중도'도 아니요, '실용'은 더욱 아니니 세상 어디에도 이런 '중도실용'은 없다.

 

'이명박 정부'가 '오해 정부'로 남지 않으려면

 

나도 쫄깃한 어묵 많이 좋아한다. 자주 포장마차 분식으로 끼니를 때우곤 한다. 서민 대통령, 박수 치며 대환영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의 '서민 행보'가 민심(民心)을 읽으려는 '진심'이었는지, 민심을 얻으려는 '흑심'이었는지 여부다. 종부세 감면으로 무려 2300만 원을 돌려받았다는 사람이 어묵 좀 먹는다고 '서민 대통령'이 되기에는 자격이 부족하다.

 

그간 국민이 원망의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정부는 모두 '오해'라고 거듭했다. 허나 언제까지 "어허허, 오해입니다"로 슬그머니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진심으로 '서민 대통령'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서민에 허다하게 떠넘겼던 오해부터 풀어야 할 테다. 이러다가 '이명박 정부'가 '오해정부'로 역사에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


태그:#이명박, #서민 대통령, #부자감세 서민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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