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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푸라푸 추장 동상
 라푸라푸 추장 동상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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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가실 곳은 라푸라푸 공원입니다. 마젤란 공원이라고도 하지요."
까오비안 섬 부근 바다에서 섣부른 스노클링을 하다가 짠물 한 모금을 마시고 혼쭐이 난 어설픈 호핑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오후였다.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은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유적공원이었다.

공원으로 가는 길가의 풍경은 낯설었지만 단조로웠다. 다닥다닥 작은 집과 점포들이 붙어있는 매우 가난한 모습과, 가끔씩 나타나는 넓고 풍족해 보이는 집들이 반복해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가에서 만난 남자들 대부분은 윗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들이었다.

막탄섬 북동쪽 반도 끝자락 해변에 위치한 유적공원이 있는 이 도시이름은 '라푸라푸시'였다. 이 지역 사람들이 가장 영웅시하고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이 바로 라푸라푸 추장이기 때문에 도시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곧 길가에 버스를 세우고 잘 가꾸어진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맨 먼저 눈앞에 나타난 것은 마젤란 기념비였다.

민족의 영웅 라푸라푸 추장과 침략자가 함께 추앙을 받고 있는 현장

"탑처럼 생긴 이 비가 바로 마젤란 기념비입니다. 마젤란이 세부섬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 막탄섬을 정복하려고 쳐들어 왔다가 라푸라푸 추장에게 살해당한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마젤란 기념탑
 마젤란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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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 민속자료들
 공원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 민속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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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는 막탄섬과 마젤란, 그리고 라푸라푸 추장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출신이면서 스페인 왕의 지원을 받아 1519년 8월 스페인 세비야항을 출항한 페르디난도 마젤란 탐험대는 남아메리카와 태평양을 건너 1년 8개월 만에 필리핀 세부섬에 상륙했다. 그들은 신대륙 발견이라고 했다.

그의 항해로 유럽사회에는 태평양 항로와 함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필리핀은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매우 억지스러운 말이었다. 마젤란이 이곳에 오기 전에도 필리핀과 원주민들은 이미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젤란의 '발견'은 원주민들의 입장에선 억울하게 당한 '침략'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수백 년에 걸친 식민지 '수탈'과 '압제'가 시작된 역사의 신호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 주민들이 지금도 마젤란을 침략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젤란이 처음 상륙한 세부섬을 신무기의 힘으로 완전히 장악한 후, 이 막탄섬을 침공하다가 원주민과의 전투 중에 독화살을 맞고 사망한 장소에 세워놓은 이 마젤란 기념비에는 '영광의 스페인'(GLORIAS ESPANOLAS)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영광이라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자신들을 압제하고 수탈하며 300년 이상 지배해 온 스페인에게 영광이라니, 말이 되는 소린가?

"아니, 이 나라엔 민족의식 같은 것이 전혀 없나보죠?"
"네, 그런 면이 많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네 민족의식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요."

일행들은 모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자 마젤란을 기리는 제단까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젤란이 전투중 독화살을 맞은 갯벌
 마젤란이 전투중 독화살을 맞은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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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을 찾은 현지 어린이들
 공원을 찾은 현지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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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것은 마젤란 기념비를 옆으로 돌아 조금 더 들어가자 해변이 가까운 곳에 마젤란을 죽인 막탄섬 추장 라푸라푸의 동상이 함께 서있는 것이었다. 왼손에 방패를 들고, 오른 손에 칼을 들고 서있는 라푸라푸 추장의 동상은 자못 위풍당당했다.

"거참 모를 일이네, 서로 죽이고 죽은 원수를 같은 장소에 동상과 기념탑으로 세워놓다니?"

"우리네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만 가능한 매우 독특한 정서고 문화지요."

마젤란은 처음 세부섬에 상륙하여 이 지역 부족의 추장 주아나 일족과 부족 800여 명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여기까지는 그에게 있어서 매우 성공적인 출발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세부 막탄 섬의 역사와 마젤란

바로 가까이 있는 작은 섬, 바로 이 막탄섬 부족들을 위협한 것이다. 모두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복종하라고, 그러나 이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복종하지 않고 저항한 것이다. 그러자 신무기로 무장하여 자신감이 넘쳤던 마젤란은 미개한 족속이라고 깔보았던 이들 부족에게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고 항복하던가 아니면 죽음이 있을 뿐이라고 위협했다.

더구나 자신들의 다음 항해에 필요한 식량과 물자를 내놓으라고 협박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부족은 결코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다. 마젤란은 마침내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기 시작했다.

 샤넬 5 향수의 원료로 쓰이는 깔라취취 나무 꽃
 샤넬 5 향수의 원료로 쓰이는 깔라취취 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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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인물 조형상
 민속인물 조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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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라푸라푸 추장이 주동이 된 부족용사들은 조직적이고 강력한 저항을 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마젤란이 이끌고 온 배들이 공원 입구 해변으로 침입하다가 갯벌에 걸려 꼼짝 못하고 있는 동안 라푸라푸 부족들이 쏘아댄 독화살 한 개가 마젤란의 몸에 꽂히고 만 것이다. 마젤란은 결국 독이 퍼져 죽고 말았다.

우리들이 공원을 둘러보고 있는 동안 마침 썰물이어서 마젤란의 최후를 재촉한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그 갯벌에는 당시의 상황을 어림해볼 수 있는 마젤란의 배와 막탄 섬을 지키는 망루가 재현되어 있었다,

"필리핀은 국민의 83퍼센트가 가톨릭교도입니다. 가톨릭이 국교나 다름없지요,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민족의 영웅 라푸라푸와 가톨릭을 전파한 마젤란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가이드의 설명을 모두 들으니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물론 이 나라만의 매우 독특한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곳 막탄섬과 세부인들에겐 라푸라푸 추장뿐만 아니라 침략자 마젤란도 영웅시 되고 있었던 것이다.

 각각 딸과 아들이 있는 재혼부부
 각각 딸과 아들이 있는 재혼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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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공원을 둘러보고 나올 때쯤 어린이들 몇이 한쪽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다가가 말을 건네니 이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이들이었다. 그들 중 제일 큰 어린이에게 라푸라푸와 마젤란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가 미리 설명했던 것처럼 이들 어린이들도 외세에 맞서 당당히 싸워 이긴 민족의 지도자 라푸라푸 추장과. 침략자였지만 가톨릭 종교를 보급한 마젤란은 똑같은 영웅이고 존경의 대상이었다. 어쩌면 조금은 슬프고 안타까운 모습이지만 이들에겐 돌이킬 수 없는 삶이고 현실이었던 것이다.

"저 꽃 보이십니까? 저 큰 나무에 피어있는 하얀 꽃들 말입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나무는 잎이 제법 크고 무성한 나무였다. 나무에는 제법 탐스럽게 큰 하얀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저 하얀 꽃이 바로 그 유명한 향수 '샤넬 넘버 5'의 재료로 쓰이는 깔라취취 나무 꽃입니다."

열대지방인 이곳에는 수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많은데 이들 나무들 중에는 각종 약재와 화장품 등에 유용한 재료로 쓰이는 나무들도 많다고 했다. 깔라취취 나무도 그런 다양한 나무들 중의 하나인데, 바로 그 유명한 샤넬 향수의 재료가 되는 나무였다.

 성당 신부 앞에서 혼인 서류에 서명하는 재혼 신부
 성당 신부 앞에서 혼인 서류에 서명하는 재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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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밑에는 이곳에 거주했던 옛 부족의 형상을 한 작은 조각 작품들 몇이 서있는 모습이 이방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공원 문을 나서 조금 걸어가자 이번에는 특이한 건축 양식의 성당 하나가 나타난다. 그런데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결혼예식이 한창이다. 조용히 들어가 앞자리 가까운 곳에 앉았다.

우연히 들른 성당에서 재혼하는 신랑신부를 만나다

주례신부 앞에 나란히 선 신랑신부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나이가 상당히 들어 보이는 모습이다. 그런데 주례신부가 혼인 예식에서 쓰는 말은 영어가 아니라 필리핀 말이었다. 예식이 끝나자 주례를 맡았던 신부가 내 앞으로 다가온다.

신부는 나에게 한국인들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성당 신부는 우리일행들 모두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식을 끝낸 신랑신부가 사진을 찍는 것을 보니 각각의 앞에 아이들이 한 명씩 붙어 선다. 신랑 앞엔 4~5세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그리고 신부 앞엔 7~8세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였다.

마침 일행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하는 신부에게 저들이 재혼하는 커플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신랑은 36세. 신부는 38세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각각 전에 부부였던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소생들이었다.

사진을 찍고 난 재혼 신랑신부는 다른 성당 신부 앞에서 혼인 서류에 서명을 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재혼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부부를 축하하기 위해 보여든 30여 명의 가족 친지들의 축하를 받으며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재혼부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재혼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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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신부에게 다가가 저들이 이혼한 후 재혼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여성은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다가 재혼하는 것이란다. 그러나 남성은 전 부인과 특별한 사정으로 이혼했다는 것이었다. 가톨릭 나라답게 이 나라에선 거의 대부분의 결혼식이 성당에서 치러진다고 한다.

예상치 않게 몰려든 이방인들이 사진을 찍고 조금은 어수선해진 분위기였지만 예식을 마친 신랑신부는 환하게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들과 가족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방인들을 대표하여 그들 신랑신부에게 행복하게 살라고 축하를 해주자 고맙다고 마주 인사를 한다. 밖으로 나오자 땅거미가 지고 있는 숲에서 무더운 열기가 어둠처럼 덮쳐온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에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갈등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가 83퍼센트나 되는 필리핀이지만 이혼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 나라의 이혼율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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