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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힘들지 않다', '여기 사람이 있다'

 

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다.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이 다섯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소설만이 아니다. 드라마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다 그렇다. 그런데 요즘 우리 국민이 날마다 보고 듣고 접하는, 소설보다 소설적이고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이명박 정권의 이야기는 그 다섯 단계를 깡그리 무시한다. 그들의 대본에는 오직 위기-위기-위기만 있을 뿐이다. 산중에서 늑대를 피하니 호랑이가 나타나고 사자를 따돌리니 곰이 앞을 가로막는 식이랄까. 

 

작법의 기초도 모르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독자를 실망시킨다. 실망 정도가 아니다. 읽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고 치가 떨린다. 재미? 감동? 차라리 주 기도문이 더 재미있고 국민교육헌장이 더 감동적이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그 허접한 이야기를 외면할 수가 없다. 그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우리가 처한 현실의 비극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형편없고 어이없는 최악의 이야기가 용산 참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네 음절의 단어는 현재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도 등재되어 있다. 유명세가 그쯤 되면 그 내용을 모르는 이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아는 이 또한 드물다. 아니, 제대로 알려고 하는 이가 드물다. 그것이 유가족들을 슬프게 한다.

 

남일당 건물 뒤편, 철거민 고(故) 이상림씨가 운영하던 호프집 간판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우린 힘들지 않다. 

 

그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또 하나의 문장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 사람이 있다.

 

두 문장은 서로 비슷한 구석이 있다. 저렇게 말할 때 심정이 어떠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막막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문장 바닥에 깔린 처절함을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처절함을 우리가 내내 모른 체해왔음을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언제던가.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살고 있는 송경동 시인은 말했다.

 

"제일 힘든 건 다른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용산 문제를 잊어가고 있다는 것, 유가족에겐 그게 가장 괴롭고 힘든 일이지요."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유가족을 가장 괴롭고 힘들게 한 것이 다름 아닌 우리였으므로. 나였으므로.      

 

안다, 다들 바쁘니까, 다들 힘드니까   

 

 

고백하겠다. 참사가 있기 하루 전인 2009년 1월 19일 오후, 나는 우연히 그곳 용산에 있었다. 근처에 볼 일이 있었던 것이다. 분위기가 흉흉했다. 남일당 주변에 경찰 버스로 차벽이 둘러쳐지고 무장 경찰들이 삼엄하게 늘어서 있었다. 행인 누군가 말하기를 철거민들이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있다 했다. 나는 옥상을 흘끗 올려다보았다. 이제부터 긴 싸움이 시작되겠구나 했다.

 

그러고는 볼일을 보러 갔다. 그게 끝이었다. 이튿날 새벽 그곳에서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무려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를 접하고도 그랬다. 경악하고 분노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소설 원고 마감이 코앞이었고 내겐 내 볼일이 먼저였던 것이다. 분노를 행동으로 표출하는 건 다음에, 나중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 하자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은, 나중은, 조금의 여유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많은 날들을 흘려보내고 마침내 용산을 다시 찾은 것도 실은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추모제 무대에서 유가족이 발언을 했다. 오늘은 참사가 일어난 지 63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 다음 용산을 찾았을 때도 유가족은 말했다. 오늘은 75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 후에도 또 그 후에도 유가족들은 어김없이 숫자를 입에 담았다. 99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108일째, 140일째…….

 

처음에는 저 날수를 어떻게 일일이 기억할까 싶어 놀랐다. 하기야 어떻게 잊겠는가. 내 아버지가, 내 남편이, 내 가족이 공권력의 서슬 퍼런 칼날에 무참히 희생된 이후의 시간을. 그 다음에는 날수가 저리 흐르도록 정부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죽은 자도 아니고 죽인 자가 말이 없다니. 철거민들은 조국 통일이나 세계 평화,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 그 추운 날 옥상에 올랐던 것이 아니다. 국가 전복을 꾀하려 올랐던 것도 아니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올랐다. 생존권을 주장했을 뿐인 집 잃은 가장들을 정부는 쥐 잡듯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똑같이 하나뿐인 목숨을, 철거민들에게서 앗아갔다. 그 과정에서 정권이 보여준 태도는 그 전에도 나빴고 그 당시에도 나빴지만 그 후에 더욱 나빴다. 용산 참사에 대한 여론을 잠재우려고 군포연쇄살인범 관련 소식을 적극 홍보하도록 지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연쇄살인범과 그를 불순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정부,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쁠까. 묻기도 답하기도 참으로 씁쓸한 질문이다. 

 

150일째 되던 날 유가족은 말했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저희가 공권력의 탄압을 받아가며 싸워온 지 벌써 150일이 됐습니다. 하지만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1500일이 걸린다 해도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얼굴은 초췌했으나 그녀의 목소리는 당차고 결연했다. 150일이란 그런 시간이다. 평범했던 가정주부를 공권력의 탄압이니 진상 규명이니 투쟁 따위를 스스럼없이 부르짖는 투사로 만드는 시간. 그리고 곁에서 관심 갖고 지켜보던 시민들을 하나둘씩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시간. 유가족과 함께 촛불을 들어주고 구호를 외쳐주고 눈물을 흘려주던 이들의 수는 나날이 줄어만 간다. 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들 바쁘니까. 다들 힘드니까.

 

내 주위만 봐도 그렇다. 대학 졸업 후 3년째 취업을 못하고 있는 후배가 있고 월급이 넉 달 밀린 친구가 있다. 권고사직을 당한 선배가 있는가 하면 대출금을 갚지 못해 온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은 이웃도 있다. 저마다 자신의 망루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남의 망루를 걱정하겠는가. 어디 남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이 있겠는가.

 

내일은 우리 차례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자. 용산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참사 현장에서 마주치는 피켓들의 문구가 이를 말해준다.

 

어제는 용산에서 그들이, 내일은 우리 차례가 될지 모릅니다.

내 작은 이웃들이 벼랑에 몰렸습니다.

 

내가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고 이웃이 내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망루 안에 고립될 수밖에 없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쳐도 듣지 못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누군가 웃고 있다면 어디선가 누군가는 울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웃으니까 그걸로 족한 것, 남의 울음은 상관없는 것, 그래서 모두 곧 용산을 잊어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난 150일 동안 정부가 간절히 바라온 일일 것이다. 길고 잔인한 용산의 시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틀 후면 160일이 된다. 

 

나는 가끔 생각해본다. 1월 19일 그날, 내가 볼일을 보러 가다 말고 남일당 건물 앞에 멈춰 섰더라면.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의 절규에 귀 기울였더라면. 그래서 나와 또 다른 나, 그리고 또 다른 나, 수많은 나의 눈과 입과 귀가 그곳에 모여 야만 정권과 폭력 경찰에게 너희의 만행을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음을 엄중히 경고했더라면.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 최소한 정부가 철거민이 옥상에 올라간 지 겨우 하루 만에 특공대를 투입하는 가혹하고 기민한 진압 작전 대신 그들과 대화를 해보려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수많은 내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아아, 정말이지 그랬다면.

 

결국 나의 무심함이 그들을 망루로 내몰았다. 우리의 무정함이 망루를 불태웠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것은, 죽음의 머릿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유가족의 눈물이 모자라서도 아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웃느라 그곳에서 울고 있는 이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까닭이다.

 

참사 현장에서는 매일, 그러니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저녁마다 천주교 사제단의 추모 미사가 열린다. 물론 전부 불법이다. 저녁 늦게 불법 추모제가 끝나면 유가족들은 여태 냉동고에 갇힌 채 눈도 감지 못한 망자들 곁으로, 아직까지 빈소가 마련돼 있는 병원 장례식장으로 귀가(?)한다. 조문객용 탁자 사이에 누워 새우잠을 잔다. 철거민 고(故) 윤용헌 씨의 고교생 아들은 아예 그곳에서 학교를 다닌다. 장례식장이 집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차피 이 세상 전체가 장례식장이다. 용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언제 어디서든 검은색 상복을 벗지 못할 것이므로.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용산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했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법원의 수사 기록 공개 결정을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유가족의 공분을 사고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법질서를 농락한, 심지어 공안 전문 검사이기까지 했던 자를 검찰총장으로 내정했다. 이는 정부가 앞으로 용산 참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문제가 어디 그뿐이랴. 미디어법 강행, 4대강 생태계 파괴, 노사 갈등 및 국론 분열 조장….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서민 경제는 파탄 나고 남북 관계는 악화일로에 처했다. 위기 넘어 또 위기 넘어 다시 위기. 온통 위기뿐인 이명박 정권의 이야기 속에서 국민은 숨 돌릴 틈이 없다. 게다가 황당하고 억지스럽고 졸렬하기가 세상에 어떤 엉터리 삼류 소설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다. 솜씨 없는 작가는 지필묵을 탓한다던데, 그래서 정부는 툭하면 고인이 된 옛 대통령을 탓하고 지나간 십 년을 탓하고 나아가 애먼 국민을 탓하나.

 

이것이 소설이어도 독자로서 불행하겠지만 국민으로서 더더욱 불행하게도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2009년 6월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나는 바란다. 형편없는 작품이라 해도, 허섭스레기 같은 글이라 해도, 차라리 이게 정말 소설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럼 책을 통째로 리어카에 실어 고물상에 넘겨버리면 그만일 테니 말이다.

 

* 작가 소개 : 소설가.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 시작. 2007년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문학동네)를 펴냈다.


태그:#용산참사, #김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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