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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대법원은 고 최진실씨에 대한 광고주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 들였다. 판결의 요지는 고 최진실씨가 사회적 도덕적 명예를 훼손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품위 유지를 약정하였으나, 언론을 통해 자신의 가정폭력의 사실을 드러내 광고하는 아파트 이미지를 손상시켰고, 망인에게 책임 없는 사유라 하더라도 적절한 대응을 통해 이미지 손상을 최대한 줄여야 함에도 가정 내부의 심각한 불화 사실이 공개되어, 아파트의 긍정적 이미지가 손상되어 이에 따른 경제적 손해를 광고주에게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말하는 '품위유지'란 도대체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품위'란 단어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이라고 되어 있다. 과연 고 최진실씨가 자신의 가정폭력 사실을 공개한 것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을 떨어뜨린 것인가?

 

그녀가 자신의 가정폭력 사실을 드러낸 것은 한 가정폭력 피해 여성으로도 어려운 결정이었다. 또 연예인이라는 이미지가 자신의 삶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더욱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최진실 사건, 명예훼손 아닌 인권침해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범죄다. 2007년 여성부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선 두 가구 중 한 가구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있으나, 경찰의 구속률은 0.7%, 법원의 기소율은 13.7%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통계로 볼 때 가정폭력을 해결하는 첫 번째 시작은 자신이 가정폭력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가정폭력 사실을 세상에 알린 고 최진실씨의 행위를 '사회적 도덕적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고 최진실씨는 사회적 도덕적 명예훼손을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생존'의 최소한의 권리인 '안전하게 살 권리'를 사회에서 박탈당하고, 수많은 피해자와 같이 가해자에게 폭행을 당했으나 오히려 폭행의 가해자로 몰리는 도덕적 비난에 해명하기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밝힌 '인권'을 침해당한 피해자이며 생존자였다.

 

그럼에도 재판부의 이러한 판결은 가정폭력으로 고통당하는 이 땅의 수많은 피해자들의 입을 막고, 그들이 자신의 인권을 찾고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현실을 외면했다.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오히려 사회적 도덕적 명예를 훼손하고,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무지로부터 야기된 판결이며, 사람의 인권보다 돈벌이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또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사회적 기대도 포기하게 만든 잘못된 판단이다. 오히려 고 최진실씨는 자신의 마지막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명성이나 이미지를 버리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한 사람 이다.

 

대법원의 판결, 가정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몰이해'

 

재판부는 고 최진실씨가 폭행당한 모습과 기물파손 된 집안을 공개한 것을 적시하며 '적절한 대응을 통하여 그 이미지의 손상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했는데 혹시라도 그 적절한 대응이 법적 대응이라면 그것은 전혀 '적절한 대응'이 될 수 없다. 가해자가 쌍방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최진실씨가 그러한 주장을 반박 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피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외에는 없다.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구속률과 기소율에서 보듯이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처리는 매우 미온적이다. 때때로 피해자들은 어떠한 사회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살해당하거나 자살하거나 우발적 살인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가정폭력에 대한 사법기관의 '적절한 대응'은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가정폭력 사건에 대해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상태로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가장 초보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을 때가 많다.

 

재판부의 '적절한 대응'이 혹시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나 대화로 해결하라는 것이면, 이는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며, 더 이상 해결방법이 없어 마지막으로 자신을 드러낸 피해자들의 상황에 대한 몰이해일 뿐이다.

 

대법원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가정폭력 사건에 대응할 수 있는 한 방안으로 삼을 수 있도록 판결문에서 적시한 '적절한 대응'의 내용을 밝힐 것을 요청한다. 또 그 '적절한 대응'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실현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법률적인 아닌 현실적인 판단이 있어야한다.

 

인권에 대한 대법원의 의식수준이 의심된다

 

재판부는 고 최진실씨가 자신의 가정폭력 사실을 드러내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부각 시키려는 해당 아파트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주었다고 판시하고 있으나, 이것이야 말로 가정은 누구의 희생과 상관없이 유지되고 표면적으로 '사랑과 행복'으로 포장되어야 한다는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인식을 드러내 것이라 하겠다.

 

대법원의 판결은 다른 하급심의 기준이 되며, 국민들은 사회의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대법원이 '정의'와 '인권'의 최후의 보루가 되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고 최진실씨 손해배상 판결은 '인권'보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고 법률적 판단 기관인 대법원의 인권에 대한 의식수준을 의심케 하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우려와 좌절을 느낀다.

 

고 최진실씨 손해배상 사건의 본질이 가정폭력 문제에 있으며,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안전할 권리' 에 대한 침해인 이 사건을 맡을 원심 법원의 용기 있는 판결을 요청한다.

덧붙이는 글 | 정춘숙 기자는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입니다. 


태그:#최진실,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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