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월 23일, 그분은 떠나셨고 난 결혼을 했다. 내 남은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맞이할 5월 23일은 내 마음속 영웅을 떠나보낸 날이지만 결코 눈물로만 지새울 수도 없는 그런 잔인한 날이 될 것이다.

잔인한 5월 23일의 스산한 아침이 밝다

남편의 고향은 제주도. 시부모님들과 친척분들 모두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오신 분들이기에 제주와 서울에서 한 번씩 결혼을 하게 되었다. 5월 16일, 부모님과 친한 친구 몇몇만을 초대한 제주도 결혼식을 마치고 5월 23일 서울 식은 편안한 분위기로 즐거운 연회처럼 진행하기로 했다. 5월 22일 결혼식 전날, 신혼집에 모인 친구들은 진행 순서와 사회, 음악을 의논하며 즐겁게 술도 한잔 마시고 내일이면 제대로 유부녀가 되는 나를 축하해주었다.

그렇게 약간의 긴장감과 떨리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고 5월 23일 날이 밝았다. 조금 이른 오전 11시에 식이 잡혀 있어 새벽 6시부터 일어난 나와 친구들 그리고 신랑은 정신없이 준비한 짐들을 챙겨 집을 나섰다. 어둑어둑한 하늘, 금방이라도 빗발이 내리칠 것 같은 스산한 아침이었다.

"뭐 결혼식 날씨가 이래?"
"그러게, 이사할 때 비오면 잘 산다더니 결혼할 때도 비오면 잘 살려나?"

우스갯소리를 해가며 미용실에 도착해 메이크업과 머리를 시작했다. 이미 웨딩촬영과 제주도에서 결혼식도 있었으니 꽤 많은 화장품이 얼굴에 발라질 것이고 조금 지루할 것이고 조금 졸아도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 신부님은 안 떠시네요."
"전 이미 한 번 해봤어요."
"헉?"
"시댁이 제주도."
"아? 아하~~ 아아~ 난 또…."


커피를 홀짝거리며 미용실 직원들과 수다를 떨면서 다른 신부들 화장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먼저 화장을 마치고 동생 녀석들과 담배를 피우러 나갔던 신랑이 들어왔다. 난 그때 신랑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허망한 눈빛, 무언가 반쯤 넋이 나간 듯 주춤주춤 내 곁으로 다가온 그는 조심스레 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응? 왜? 식장에 문제 생겼어?"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하셨대."
"응?"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그 짧은 순간 내 머릿속에선 그 문장과 연결지을 만한 농담을 유추해보고 있었다. 원래 농담을 잘하는 신랑인지라 뭔가 뒤에 다른 말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담이라기엔 지나치지 않은가.

"뭐라는 거야… 결혼식 날 아침부터…."

하지만 이미 내 눈은 반쯤 그렁거리는 눈물로 신랑의 넋 나간 얼굴이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담양 소쇄원 여행 첫날 찾은 담양 소쇄원.
▲ 담양 소쇄원 여행 첫날 찾은 담양 소쇄원.
ⓒ 박봄이

관련사진보기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했던가

"신부님, 울면 안돼요. 화장…."

이미 미용실 안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나처럼 망연히, 어떤 이들은 다급히 휴대폰을 들고 나가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뭐 큰일이라고 저 유난인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이미 도착한 문자가 20여 통.

- 노무현 대통령 서거.
- 언니, 언니 노무현 대통령이… 어떡해….
- 봄아, 오빠 상황 좀 더 알아보고 시간 되면 참석할게.
- 결혼식인데 어쩌니… 지금 난리야….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TV라도 보고 싶었지만 미용실엔 TV도 없었고 그렇다고 드레스를 입고 밖을 나갈 수도 없었다. 반쯤 넋이 빠진 모양으로 서둘러 화장과 머리를 마치고 차에 올라 식장이 있는 한강으로 향했다.

"라디오 좀 켜봐…."

함께 탔던 친구와 사회를 보기로 한 동생은 한사코 말렸다. 일단 결혼식 끝나고 듣자고. 식장에 울면서 들어갈 거냐고. 울면 안 되는데 참아야 하는데 아무리 하늘을 바라봐도 툭툭 떨어지는 눈물은 웨딩드레스를 적셨다.

해남 대흥사 해남 두륜산 대흥사 가는 길.
▲ 해남 대흥사 해남 두륜산 대흥사 가는 길.
ⓒ 박봄이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식장에 도착하니 상황은 더욱 최악이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하객들. 인사하는 하객들마다 결혼식 아침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안타까움을 표해왔다. 하지만 예정대로 식은 진행해야 했고 결국 예상했던 하객의 절반도 모시질 못했다.

수습해야 할 상황에 머릿속이 하얘지고 눈앞이 캄캄했지만 어쩌겠는가. 축가도 부르고 편지도 읽고 준비했던 모든 순서는 진행되었다. 절반의 위로와 절반의 축하는 받으며 그렇게 식은 잘 마무리 되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결혼식장과 계약한 250명의 인원을 채우지 못했기에 남은 돈을 고스란히 물어내야 할 판국이었다… 400여 만 원 돈이었다. 폭탄 맞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더군.

웨딩플래너는 예상치 못한 일도 벌어졌고 계약했던 하객 인원과 상당히 차이가 많이 나는 터라 한 번 이야기를 해보겠다 했지만 예식장 측은 절대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부모님께 고개를 못 들게 된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전 아버지는 경기침체로 운영하던 사무실과 가게를 모두 정리하셨다는 것이다. 결혼할 딸이 걱정할까 그간 속앓이만 하신 것.

식장측은 계약서에 사인했으면 끝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선심 쓰듯 10명 분 정도는 깎아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3일간의 말미를 줄 테니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을 담보로 맡겨놓고 가시라고. 사업에 엎어져본 사람은 안다. 돈을 잃고 명예를 잃으면 사람도 잃고 자존심도 잃는다는 것을. 하나 있는 딸내미 하객도 없이 지방에서 결혼시키는 게 안쓰러워 최악의 상황을 불구하고 서울에서의 식을 허락해준 아버지에겐 참으로 가혹한 현실이었다.

친구들과 지인들은 어차피 남은 음식 바로 다음 식에 쓸 것 아니냐고, 아니면 남은 음식 포장해서 가지고 가자며 항의하려 했으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미 축복받은 결혼식은 날아가 버렸고 참석해주신 친척 어른들께 면목 없을 뿐이었다.

낙산사의 연못 화마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낙산사는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 낙산사의 연못 화마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낙산사는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 박봄이

관련사진보기


추모 기간 동안의 신혼여행

우리의 신혼여행은 전국일주로 계획되어 있었다. 바닥을 친 경제 상황에 해외 나가 돈 쓰느니 차라리 전국에 가보지 못한 곳을 둘러보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해외여행쯤, 나이든 후에도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전국일주는 이번이 아니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언제나 빠지지 않는 나의 동반견 복삼브라더스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우리나라 곳곳을 달리는 것. 지금 생각해도 그 선택엔 후회가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신혼여행 자체를 취소하고 싶었다. 빚만 안고 끝난 결혼식, 아버지의 늘어진 어깨, 그리고 내 마음 속 영웅이셨던 분의 죽음. 어쩜 이리도 5월 23일은 잔인하기만 한 것일까. 이런 기분으로 신혼여행을 꼭 갈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 하지만 오늘 마음고생하신 어른들을 위해선 다녀오는 게 도리였다. 잘 가서 재미있게 여행하고 돌아오는 모습 보여드리는 게 오히려 마음의 빚을 갚는 거라고.

집으로 돌아와 출발 전 나머지 짐을 정리하며 잠시 TV앞에 앉았다.

TV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으로 침통하기 그지없었고 난 갑자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다른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현실의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하면 된다. 우린 잘 살아갈 것이고 앞으로 수많은 날들 중에 하루일뿐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신념과 이상을 공유했던 그 분이 떠났다는 것에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의 절망은 그분의 절망에 비해 턱없이 작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토록 숨통이 죄이는데 도대체 그분의 고통은 얼마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기에 생의 끈까지 놓아버리고자 하신 것일까.

깜깜한 어둠을 뚫고 첫 목적지인 담양으로 향했다. 라디오에선 새벽까지 눈물과 비통함에 젖은 추모방송이 이어졌다. 왜그리 입가에서 양희은의 한계령이 맴돌았는지….

"여행길 내내 추모기간일 거야. 전국에 분향소가 많이 마련되어 있으니까, 보이는 곳마다 들러서 향이라도 피워드리자. 그렇게 하면 네 마음도 좀 나아지지 않겠니? 좋은 곳 가시라고, 고생 많으셨다고 위로해 드려."

가장 행복해야 하는 신부의 퉁퉁 부은 눈이 안쓰러웠던지 위로를 건네는 신랑. 그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진을 찍다가, 바다를 거닐며, 혹은 고요한 산사의 투명한 냇물을 지그시 바라보다가도 문득문득 서러운 한숨을 뱉어내는 신부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정치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웠던 20대 어린 시절, <오마이뉴스>에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고 대통령 노무현, 인간 노무현이라는 분을 가슴에 새기게 되면서 이상향의 민주주의 국가,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세상, 그리고 잘못된 역사를 기억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국민의 선택이 아닌 의무라는 것. 그 많은 것들을 알고 배우고 깨달으며 비로소 어른이 된 나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나를 위로했다.

양양 낙산사 양양군 오봉산에 위치한 낙산사의 절경.
▲ 양양 낙산사 양양군 오봉산에 위치한 낙산사의 절경.
ⓒ 박봄이

관련사진보기


Goodbye to romance...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하며 설치된 분향소마다 국화꽃 한 송이를 바쳤다. 영정 속에 환히 웃고 있는 그분의 얼굴. 전혀 기대할 수 없던, 전혀 이상을 찾을 수 없던 그곳, 그 사람들, 그 무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처음으로 희망이 되어준 사람. 이제야 이 나라에 우리가 염원하던 대통령이 나와 주었구나, 그가 퇴임을 하더라도 그를 닮은 이들이 뒤따라 나와 주겠구나. 썩은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희망이 우리에게도 있구나. 지금으로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밝은 빛을 보여준 사람. 마주하고 앉은 그에게 읊조렸다.

'얼마나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들을 아끼셨으면 당신 목숨 버려가면서까지 숙제를 주고 가셨습니까. 뒤늦게 후회하며 울고불고 해봐야 소용없다고, 이제라도 알았으니 앞으로 정신 바짝 차리라는 말씀이지요? 네, 나무보단 숲을 보겠습니다. 역사적 사명감과 의무는 소수계층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는 것. 내가 발 딛고 선 이 땅에 대한 책임감과 국민으로서의 도리, 임무 그리고 권리를 져버리면 어떤 결과가 돌아온다는 것. 이제 잘 압니다. 지키며 살겠습니다. 알고 살겠습니다. 그러니 나머지 숙제는 저희에게 미뤄두시고 이젠 하늘에서 원하시던 대로 밀짚모자 쓴 촌부로 살아가세요. 숙제 검사는 오랜 시간 후에 하늘나라 가서 받겠습니다.'

돌아오는 길 오렌지 빛으로 물든 강.
▲ 돌아오는 길 오렌지 빛으로 물든 강.
ⓒ 박봄이

관련사진보기


훗날, 내 아이가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면 1979년 10월 26일과 그 날 돌아가신 어떤 대통령에 대하여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면 2009년 5월 23일에 돌아가신, 그러나 엄마의 생일날 돌아가신 그 분과는 많이 다른 또 한분의 대통령에 대하여 이야기해 줄 것이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이 얼마나 많은 분들의 피와 눈물, 고귀한 땀방울로 다져진 곳인지에 대하여, 반복되는 시대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홀로 저항하다 쓸쓸히 산화되어간 그 분의 곧은 정신에 대하여.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를 원망치 않았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해 줄 것이다.

일주일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선 오지 오스본의 굿바이 투 로맨스(Goodbye to romance)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가슴에 품었던 젊은 날의 로망처럼 아름다웠던 영웅 노무현. 찬란히 산화한 그의 영혼은 대한민국의 심장이 되어, 정신이 되어, 이정표가 되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오렌지 빛 등불로 기억되리라.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접시물에 코박고 죽을 당신일지, 접시꽃처럼 어여쁜 당신일지는 당신 하기나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