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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21일 '공안통'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 후보자로 내세웠다.

 

지난 1월 서울지검장에 임명된 지 5개월 만에 검찰 총수 자리에 오른 천 후보자는 용산 철거민 참사와 MBC <PD수첩> 수사를 진두지휘한 인물로, 이명박 정부가 공안 통치를 강화하려는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해석이 많다.

 

청와대는 천 후보자의 총장 내정에 대해 '파격'과 '개혁', '지역 균형'이라는 의미 부여를 했다.

 

전임 임채진 총장(사법시험 19기)보다 3기 후배인 천 후보자가 검찰총장이 됨으로써 검찰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충남 출신 검찰총장의 등장으로 '고소영 인사' 시비를 어느 정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22기인 천 후보자가 검찰 총수가 되면 권재진 서울고검장과 명동성 법무연수원장(이상 20기), 문성우 대검 차장·문효남 부산고검장·김준규 대전고검장·이준보 대구고검장(이상 21기) 등의 선배 검사장들은 후배의 운신 폭을 넓혀주기 위해 검찰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다.

 

이진삼·신상진 의원 구속수사... 일부 정치인과 '악연'

 

그러나 대부분의 검사 생활을 공안부에서 보낸 그의 전력에 더 주목하는 시선이 있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서울지검 공안1부 검사(1991년), 수원지검 공안부장(1997년), 부산지검 공안부장(1998년), 대검 공안1과장(1999년), 서울지검 공안2부장(2000년), 서울지검 공안1부장(2001년), 대검 공안기획관(2002년) 등을 역임했다.

 

정치·사회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많이 맡다보니 현역 정치인들과도 이러저러한 악연으로 얽혀있다.

 

1991년 7월 서울지검 공안1부 검사 시절의 그는 8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집 절도 및 86년 양순직 당시 신민당 부총재 폭행을 지시한 혐의로 이진삼 자유선진당 의원(전 국군 정보사령관)을 구속 수사했고, 2000년 8월에는 의료계 폐업 사건과 관련해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의권쟁취투쟁위원장)의 구속 수사를 지휘한 적이 있다.

 

2006년 2월 그가 울산지검장에 발탁된 것은 검찰 조직에서는 '이변'으로 여겨졌다. 2000년 이후 서울지검 공안1·2부장을 지낸 공안통 중에 검사장에 오른 것은 천 후보자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그에게는 '검사장의 무덤'으로 불리는 수원지검장을 맡았다가 10개월 만에 검찰 내 4대 요직의 하나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오르는 '관운'이 이어졌다. 작년 8월 수원지검이 북한 여간첩 원정화를 적발하는 등 국민들의 공안의식을 고취시킨 것에 대해 천 후보자가 '보상'을 받았다는 풀이도 나온다.

 

영남위원회·원정화 사건 등에서 무리한 기소로 피해자 양산

 

그러나 공안검사 시절의 무리한 수사가 억울한 피해자들을 무더기로 양산한 일도 있었다.

 

부산지검 공안부장 시절의 그는 1998년 9월 영남위원회(일명 동창회)라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위원장 등 15명을 구속 기소했는데, 2000년 1월 부산고법은 대법원 파기환송심에서 김 위원장 등 12명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영남위원회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내 공안파들이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대대적인 조직 사건을 기획했다가 무리수를 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정화 사건의 경우에도 수원지검은 원씨의 계부 김모씨를 간첩 혐의로 구속기소했지만, 법원은 2월18일 "간첩 혐의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1심에서 김씨의 무죄를 선고한 상태다.

 

그러나 '인권 침해' 수사라는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천 후보자의 활약은 서울중앙지검을 맡은 후에도 계속됐다.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경찰에 면죄부를 준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과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MBC <PD수첩> 사건 등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권력의 손을 들어준 두 사건의 수사에 대해 시민사회의 반발이 컸던 만큼 '천성관 체제'의 검찰에 대한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민변)의 박주민 변호사는 "안 그래도 말이 많은 두 사건의 수사책임자가 차기 검찰총장에 내정돼서 어이가 없다"며 "임채진 총장의 퇴임 이후 '반성하고 개혁하는 검찰'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인사"라고 말했다. 야당 대변인들도 "앞으로 정치보복과 표적수사가 얼마나 더 진행될지 걱정스럽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법무부가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권침해 문제를 개선하겠다며 '수사공보제도 개선위원회'를 발족시킨 상황에서 천 후보자가 개혁 대상이 되어버린 검찰 총수를 맡는 게 합당한 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2001년 방북사건 '북한지령설' 언론에 흘렸다가 부랴부랴 취소

 

천 후보자 자신이 서울지검 공안1부장 시절 피의자 혐의를 기자들에게 함부로 흘렸다가 뒤늦게 취소하는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2001년 8월23일자 신문들에 따르면, 그해 '8·15 평양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측 대표단의 이적여부 수사를 지휘했던 그는 같은해 8월21일 오후4시경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처음부터 팩스 등을 교환하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방북행사 외 별도 행사를 사전에 기획한 게 있다. 그래서 국정원에서 조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지령을 받았다면 범민련이 북한과 종속관계에 있다는 말이냐"고 확인 질문을 했을 때도 그는 "그런 것 아닌가. 그러니까 북한이 보낸 연락이라면 지령이 되는 거지"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조선일보> 등 일부 신문이 다음날 조간 1면 톱기사 제목을 '방북단 일부 북 사전지령 받아'로 뽑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부랴부랴 기자들을 다시 만나 "일반적인 가능성을 얘기한 것이지 이번 사건에서 지령이 있었다는 말은 아니었다"며 '지령'이라는 표현을 '사전교감(교신)'이나 '사전접촉' 정도로 바꾸어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조선>은 "일부 북과 사전교신 가능성"이라고 제목의 수위를 누그러뜨렸고, 검찰도 범민련 간부들이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거나 사전교감을 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했다.

 

불확실한 혐의를 기자들에게 흘려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이 검찰 총수가 됨으로써 정부의 '수사공보제도 개선' 약속도 흐지부지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태그:#천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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