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십자가 아래 강대상에 잠자리를 마련한 노숙자들.
 십자가 아래 강대상에 잠자리를 마련한 노숙자들.
ⓒ 박지호

관련사진보기


LA Dolores Mission Church의 예배당 강단에는 목사가 아닌 '노숙자'가 있다. 강대상이 아닌 '간이침대'에 누워 있는.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교회 예배당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예배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잠을 자러 온' 사람들이다. 남루한 행색의 라티노 노숙자 50여 명이 왁자지껄 떠들며 이부자리를 깔고 있다. 교회의 통로를 가득 메운 간이침대는 강단에까지 들어찼다.

올 12월 12일이면 Dolores Mission Church가 노숙자들을 맞아들인 지 20년째다. 교회는 지난 2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숙자들에게 예배당을 내어주었다. "왜 굳이 신성한 예배당이냐", "따로 숙소를 만들어주면 안 되냐"고 물어오는 이들에게 스캇 목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은은한 촛불, 장중한 오르간 연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교회를 거룩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진정 우리 교회를 거룩하게 만들어주는 건 갈 곳 없어 교회를 찾은 이분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Dolores Mission Church의 스캇 목사는 노숙자들을 '우리'라고 표현했다. 교회가 노숙자들에게 문을 열지 못하는 까닭은 노숙자들을 '그들'로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Dolores Mission Church의 스캇 목사는 노숙자들을 '우리'라고 표현했다. 교회가 노숙자들에게 문을 열지 못하는 까닭은 노숙자들을 '그들'로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박지호

관련사진보기


"교회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이분들입니다"

노숙자 사역이 시작된 1988년 12월, 당시 수천 명의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내전을 피해 미국에 망명했다. 오갈 데 없던 그들을 Dolores Mission Church가 거두고 돌본 것이 오늘날 사역의 발단이다. 처음에는 예배당에 있는 의자를 침대로 썼지만, 90년대부터 LA 홈리스 봉사 단체가 제공한 기금으로 간이침대를 마련해 사용한다.

사역이 지속되면서 포커스는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온 라티노 불법체류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이후 교회는 노숙자 사역을 'Guadalupe Homeless Project'라고 명명하고,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Proyecto Pastoral at Dolores Mission이라는 재단을 만들어 이들에게 사역을 일임했다.

교회에 머무는 노숙자들 중 상당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국경을 넘어온 가장들이다. 자녀 둘을 둔 에드가 씨(가명)는 엘살바도르에서 미국까지 오는 데 꼬박 3개월이 걸렸다. 국경을 두 번이나 넘으면서 국경 수비대를 피해 풀숲에 숨고, 모래언덕에 몸을 파묻고,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모진 여정을 끝내고 미국에 발을 내디뎠지만 막상 머리 둘 곳은 없었다.

예배당 통로를 가득 메운 간이침대.
 예배당 통로를 가득 메운 간이침대.
ⓒ 박지호

관련사진보기


Dolores Mission Church는 이런 제2, 제3의 에드가를 위해 예배당을 쉼터로 제공한 것이다. 교회에는 최대 55명~65명까지 거할 수 있다. 예배당과 교회 창고와 별관에서 나눠서 잔다. 지난 20년 동안 쉼터를 거쳐간 사람이 줄잡아 1만5000명에 이른다. 

이 쉼터에서는 최장 3개월(90일)까지 머무를 수 있다. 아침과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구직을 돕는다. 영어 교육부터 대중교통 이용법, 예금 저축 방법, 집 구하기 등 교육 내용도 다양하고 실제적이다. 매주 수요일에는 무료 건강 검진도 실시한다. 각종 예방 접종부터 에이즈 검사와 간염 검사, 마약 및 알코올 중독에 대한 예방 교육도 마련되어 있다.

국경을 넘어오다 다쳐서 오른쪽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파블로(가명)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동네를 돌면서 폐품을 모아 팔아 하루에 6~10불씩 모았다. 쉼터를 떠날 때쯤엔 건강도 많이 회복되고, 거처를 구할 수 있을 만큼 돈도 모을 수 있었다.

트럭 운전을 하다 실직해 길거리에 나앉게 된 곤잘레스.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자 아동보호소에서 6살 난 딸을 데려갔다. 그는 교회 쉼터에 머무는 동안 장난감 가게에서 시간당 9불을 받고 일했다. 지금은 집을 빌릴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아서 딸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곤잘레스는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식사 기도를 하고 있는 노숙자들. 노숙자들의 식사는 지역사회에서 기부한 것이다.
 식사 기도를 하고 있는 노숙자들. 노숙자들의 식사는 지역사회에서 기부한 것이다.
ⓒ 박지호

관련사진보기


덜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한 사람을 돕는 프로젝트?

'Guadalupe Homeless Project'에는 지역 커뮤니티가 함께 참여한다. 교회가 있는 곳은 LA 다운타운 남동쪽 라티노 빈민가다. 남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빈민가 주민들이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옷과 음식을 기꺼이 나누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노숙자들의 식사는 지역사회에서 제공된 것이다. 커뮤니티는 각종 옷가지나 침구류도 모아서 교회에 기부하고 세탁도 도와준다. 지역에 있는 유치원생들과 학부모가 함께 식사를 준비해 노숙자들을 대접하기도 한다. 학부모가 요리를 하고 학생들은 음료수와 접시를 나르며 함께 어울린다.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쉼터에서 살았던 미구엘은 이제 자원봉사자로 노숙자 사역을 돕고 있다. 이곳을 통해 직장도 구하고 집도 구할 수 있었던 미구엘은 새로 온 노숙자들에게 조리 기술을 가르치면서 구직을 돕기도 하고, 기타 치는 것을 가르치며 말벗이 되어주기도 한다. 미구엘은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나누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주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LA , #노숙자, #교회 , #예배당, #교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 한국갈등전환센터 센터장 (서울시 이웃분쟁조정센터 조정위원, 기상청 갈등관리 심의위원)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