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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바위라고요? 옆으로 돌려놓은 우리나라 지도 같지 않으세요.
 매바위라고요? 옆으로 돌려놓은 우리나라 지도 같지 않으세요.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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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학산은 입산금지 아닐까? 전방지역인데."
"걱정할 것 없어, 내가 다 알아보고 가는 거니까."

강원도 철원 동송읍에 있는 금학산으로 가는 열차안에서 일행 한 사람은 공연스레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근처에서 군대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친구였다. 그가 군대생활을 할 때는 민간인 출입을 못하게 했던 산이었던가 보았다.

지난 6월 2일 금학산 등산을 하기 위해 서울을 출발했다. 동두천까지는 전철을 이용했다. 동두천에서 철도종단점인 신탄리역까지는 열차를 이용하고. 마침 동두천에 도착하니 신탄리행 열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열차내부는 옛날에 많이 이용했던 동차와 비슷했다.

금학산 가는 길에서 만난 산나물 채취하러 가는 노인들

평일이어서인지 손님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배낭을 멘 사람들은 등산객이었고 낚시 가방을 둘러멘 노인들 몇 분은 어느 저수지로 낚시를 간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 몇 분과 함께한 남자 노인이 멘 배낭은 지나치게 큰 편이었다.

"저 할머니들하고 큰 배낭을 멘 노인은 산나물 뜯으러 가는 가봐?"
"그래서 할머니들이랑 저 노인이 유난히 큰 배낭을 짊어지셨구나?"

동송읍내 길가의 감자밭
 동송읍내 길가의 감자밭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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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할머니는 신발이 등산화가 아니라 고무장화였다. 뱀이 무서워서 장화를 신으신 걸까, 아니면 등산화가 없어서 시장에서 신는 고무장화를 신은 걸까? 노인들의 행색을 살펴보니 얼굴에서도 옷차림에서도 고단함이 묻어난다. 산나물을 채취하여 시장에 내다파는 노인들이었다.

노인과 할머니들이 안쓰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낚시를 가는 노인들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우리들도 어쩌면 노인들에 비해 여유롭고 호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이웃들은 등산길에서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인 듯 했다.

산나물 채취 노인들은 신탄리역까지 가지 않고 도중에서 내렸다. 신탄리역에서 내려 앞마당 버스정류장에서 잠깐 기다리자 동송읍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버스에는 우리들 외에 낚시 가는 노인 세 분도 함께 탔다. 노인들은 우리들에게 어느 산으로 가느냐고 묻는다.

"그렇게 높은 산을 오른다고요? 동송읍 바로 앞에 우뚝 솟은 산이잖아요? 쳐다만 봐도 현기증이 나던데 젊은 분들도 아니고."

우리가 금학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자 노인들이 깜짝 놀란다. 그렇게 높은 산을 어떻게 오르려고 가느냐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웃으며 그 정도 산은 괜찮다고 했지만 노인들은 몹시 염려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동송읍내 어느 민가의 대문 위에서 꽃피운 아치형 장미
 동송읍내 어느 민가의 대문 위에서 꽃피운 아치형 장미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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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은 곧 내렸다. 오른편 골짜기 저 만큼에 커다란 저수지가 바라보이는 곳이었다. 버스는 싱그러운 숲이 우거진 산골짜기 길을 벗어나 들길로 나섰다. 두 개의 마을 안길을 돌아 나온 버스는 보내기가 끝나 파릇파릇 뿌리가 잡히기 시작한 논둑길을 달렸다.

최전방 지역인 동송읍에서 만난 아름답고 정다운 풍경들

"바로 저 앞산이야. 어때? 꽤 우람한 모습이지?"

동송읍 저 너머로 우람하게 솟아오른 산이 금학산이었다. 버스는 곧 동송읍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산행기점은 철원여자중학교를 지나 거북이 약수터에서부터다, 철원여중으로 가는 길가 밭에는 배추밭과 나란히 감자밭이 있었다. 감자는 수확할 때가 가까워졌는지 하얀색 꽃과 보라색 꽃들을 듬성듬성 피우고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이번엔 골목길 안쪽에 있는 허술한 민가 대문 위에 새빨간 장미가 흐드러져 화려한 모습이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까워 다가가보니 장미는 대문 위에 둥그런 아치형으로 자라 고운 꽃을 함빡 피우고 있어서 여간 아름답고 운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금학산 나무계단길 오르기
 금학산 나무계단길 오르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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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여자 중학교정문을 왼편으로 돌아 올라가자 거북이 약수터가 나타난다. 약수터엔 물을 받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맑은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는 것이 시원하다. 여기서부턴 완만한 산길이다. 조금 더 올라가자 작은 정자와 운동기구들이 갖춰져 있는 쉼터가 나타난다.

쉼터에서 잠깐 쉬며 과일을 먹고 본격적인 등산에 나섰다. 여기서부터는 곧 가파른 오르막산길이 나타났다. 멀리서 산을 바라보며 짐작했던 것처럼 오르막은 급경사였다. 조금 올라가자 금방 얼굴과 등줄기를 따라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오르막길에는 중간 중간에 목재 계단길도 만들어 놓았다. 재료가 나무여서 조금 부드러운 느낌을 주긴 했지만 인공계단은 등산객들이 가장 싫어하는 시설이다. 그러나 마침 전날 내린 비와 짙은 안개 때문에 젖은 바위가 미끄러워 안전에는 조금 도움이 되었다.

매바위라고? 지도바위가 더 어울리는 이름인 걸

이 길이 매바위 능선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올라가자 왼편에 뾰족한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바로 매바위였다. 그런데 모양이 조금 이상하다. 우리들이 바라보는 방향에선 어떻게 바라보아도 매의 형상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바위 좀 보세요? 매부리 같죠?
 이 바위 좀 보세요? 매부리 같죠?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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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위 이거, 매바위 맞아? 전혀 매처럼 생기지 않아서 말이야."
"이건 매 모양이 아니라, 우리나라 지도를 왼편으로 돌려놓은 모습인 걸."
"정말 그러네, 또 다른 모습은 옛날 어느 신문에 오랫동안 연재됐던 고바우영감 있지? 그 고바우 영감과 비슷하지 않아?"

일행들은 바위의 생김새를 보며 저마다 한 가지씩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누가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모르지만 이 바위가 바로 매바위가 분명했다.

"아니, 매바위는 여기 있는 걸, 이 바위가 훨씬 매를 닮지 않았어? 저 날카로운 부리도 그렇고."

매바위에서 몇 걸음 더 올라간 오른편의 길가에 절벽처럼 펼쳐진 바위가 정말 매부리 같은 모습이었다. 바위 윗부분의 모습은 정말 매나 독수리의 부리처럼 생긴 것이 매바위라 불러도 손색없는 모습이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오르막능선의 안부가 나타났다. 안부에 오르자 시야가 툭 트이며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산 아래 희미하게 바라보이는 시가지가 동송읍이었다. 그러나 희부연 안개 때문에 시야는 매우 흐렸다.

정상에 오른 일행들
 정상에 오른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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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에서 잠간 쉬고 정상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산행을 시작하면 항상 처음에는 몸이 쉽게 적응하지 못해 쩔쩔맨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산길에 적응하여 오르는 속도에도 탄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와! 저 능선 끝에 보이는 산 좀 봐? 저 산이 혹시 고대산 아냐? 연천의 고대산 말이야, 작년 가을에 다녀왔잖아?"

숨을 헐떡이며 오른 정상근처 헬기장에서였다. 오른편 능선으로 이어진 봉우리는 분명 고대산이었다. 중동부 전방 지역에서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최전방의 산이었다. 헬기장 근처에는 공사용 자재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작업복 차림의 사병들 둘이 잠깐 쉬고 있다가 일어선다. 조금 떨어진 정상 바로 아래는 군부대 막사를 짓는지 콘크리트 건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건축공사장 옆을 지나치게 되어 있었지만 통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금학산과 마애불상의 유래와 전설

정상에 올라서니 시야는 더욱 넓게 열렸다. 주변에는 이 금학산보다 더 높은 산이 없는 것 같았다. 주변이 온통 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한 모습의 정상이래야 '금학산 947미터'라고 쓴 작은 표지석 하나가 서있을 뿐이었다.

금학산 마애석불
 금학산 마애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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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이 학이 내려앉는 모습 같아서 금학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어디 학의 모습처럼 보여?"

"우리가 이곳에서 학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을 거야. 멀리서 바라보거나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볼 수 있는 형상이겠지."
그건 그럴 것이다. 크고 높다란 산 위에서 자신이 서있는 산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모양은 학처럼 생겼겠지만 험준한 바위학의 모습이겠지."

바위학이라? 하긴 종이학도 있으니 바위학도 있을 법 하긴 하다. 이 금학산에는 서기 901년 궁예가 태봉국을 건국하고 철원에 도읍을 정할 때, 풍수지리에 밝은 도선이 이 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300년을 통치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한다. 그러나 궁예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고 고암산을 진산으로 정하여 18년 통치 끝에 멸망하고 말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었다.

금학산에서는 고대산으로 이어진 능선길이 있었으나 우리들에겐 무리였다. 다른 능선으로 내려갈 하산길을 찾느라 두리번거리자 민간인 인부들 몇이 그늘에서 쉬다가 일어나며 우리들에게 내려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 마애석불이 있는 능선길이라고 한다.

잠간 내려오다가 점심을 먹고 능선을 따라 곧장 내려왔다. 내려오는 능선길도 경사가 심하고 가파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길이 미끄러워 몇 번인가 엉덩방아를 찧고 세 갈래 길에 당도하니 근처에 마애석불 안내판이 서있었다.

옛 절터 근처에 남아 있는 부도 갓
 옛 절터 근처에 남아 있는 부도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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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문화재자료 33호인 마애석불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옛 사찰이 있던 터 뒤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것이다. 석불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절터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의 한 면을 바탕으로 석가의 상을 조각하고, 바위 위에 있는 작은 돌을 머리로 하여 조성한 것이었다.

크기는 전체 높이가 3미터, 폭이 2.5미터인데 주변에는 부도 갓과 석탑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마애불 아래 커다란 바위 밑에는 촛불을 켜놓고 치성을 드린 흔적과 함께 종이컵 몇 개가 버려져 있는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었다.

동송읍으로 내려오니 그 사이 안개가 걷히고 햇볕이 따갑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의 역순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신탄리역 앞에 내렸다.

"그냥 갈 수 없잖아? 작년 가을 고대산 다녀오는 길에 들렀던 막국수집에서 저녁 겸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야지?"

일행 한 사람이 열차역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린다. 근처에 있는 음식점이었다. 음식점에 들어서자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반색을 하며 맞아준다. 우리들을 기억하느냐고 물으니 정확히 기억해 낸다. 7개월이나 지났는데 놀라운 기억력이었다.

옛날 목로주점을 떠올리게 한 식당 아주머니의 정겨움과 감성

곧 막걸리와 함께 녹두 빈대떡이 한 접시 나왔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갈 때쯤 막국수도 나왔다. 그런데 막국수가 한 그릇 더 나왔다. 웬 거냐고 물으니 산에서 내려와 시장할 텐데 더 먹으란다. 주문하지 않은 계란부침도 나왔다.

누군가 바위 밑에 버리고 간 종이컵들
 누군가 바위 밑에 버리고 간 종이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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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서비스에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 계란은 거래하는 양계장에서 실수로 껍질이 조금 깨져 거저 얻어온 거예요. 그러니 부담 없이 많이 드세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의 친절이 그리 살가울 수가 없다. 심심할 테니 같이 한 잔 하자고 청하자 스스럼없이 다가와 앉는다.

"이렇게 장사해서 떼돈 벌겠어요? 손님들과 어울리면서 재미있게 살려고 하는 장산데."

아들과 남편은 가게에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렇게 너무 퍼주면 남는 게 있느냐고 잔소리를 하기 때문이란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 고대산 아래 자락을 한 바퀴 돌아와요. 집에만 들어앉아 있기가 답답해서요. 물론 혼자 가지요. 노래도 흥얼거리고, 새들이 우짖으면 왜 그렇게 우느냐고 달래주기도 하고, 예쁜 꽃을 만나면 쓰다듬어 주면서 꽃과 이야기도 나누고."

우와! 이 아주머니가 어설픈 이 시인을 놀라게 하고 기죽인다. 시인보다 더 시인스러운 감성 아닌가. 일행들이 얼큰하게 취해 일어나려고 하자 술은 서비스로 몇 병이라도 더 드릴 테니 더 쉬었다 가라고 붙잡는다. 옛날 드라마에서나 보았음직한 목로주점의 정겨움이 물씬 풍겨나는 분위기였다.

덕분에 일행들은 얼큰하게 취해 동두천행 열차에 올랐다. 여름에 가족동반해서 놀러오라는 아주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그렇게 열차에 올라 동두천으로 오는 열차에서는 아침에 만났던 산나물 채취하러 갔던 노인과 할머니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노인들의 흐뭇한 표정처럼 커다란 배낭들이 불룩하게 배불뚝이가 되어 있었다.

열차 안에서 승차권을 발행해 주는 여승무원
 열차 안에서 승차권을 발행해 주는 여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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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표 못 끊으신 손님 있으시면 차표 끊어 드립니다!"

이크! 이게 무슨 소린가. 이건 20여 년 전에나 들을 수 있었던 말 아닌가. 그런데 말소리와 함께 나타난 여승무원은 급히 열차를 타느라 차표를 사지 못하고 열차에 오른 노인들에게 표를 발행해 주고 있었다. 1인당 5백 원,

"오늘 산행도 좋았지만 오가는 길이 더욱 재미있고 좋은 걸, 아까 그 식당 아주머니도 정겨웠고."

일행은 차를 몇 번씩 갈아타고 오가는 산행길이 불편하기보다 오히려, 즐겁고 좋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랬다. 강원도 철원 동송읍에 있는 금학산 등산은 등산보다도 오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이 더욱 정겹고 즐거운 길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어설픈 시인, #금학산, #식당 아주머니, #시인 이승철, #동송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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