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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2년차다. 지금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나. <미디어다음> '아고라'에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미네르바'는 구속되었다. 일제고사 참여를 학생자율에 맡긴 교사들은 해직됐다. 촛불을 들고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구속 등 처벌을 받았고, 집회는 불허되기 일쑤다.

서울광장은 전경버스들로 둘러싸여 접근조차 힘들었다. 국세청 내부게시판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세무조사와 관련하여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하는 글을 쓴 국세청 직원은 파면 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적이 타당한 이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주최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6·15로 돌아가자!'(Let's Return to 6.15)의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주최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6·15로 돌아가자!'(Let's Return to 6.15)의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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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를 독재에 비유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한나라당 그리고 보수단체들은 원색적 용어를 써가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집회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기본권이다. 이러한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국가는 이미 독재국가와 다름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독재라고 비판한 것은 타당한 지적이다.

가스통 들고 도심을 누비며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거나, 군복을 입고 가스총을 쏘아대는 극우세력의 집회를 강력히 처벌하는 게 민주주의 정부의 올바른 태도이다. 헌법은 이러한 극우세력들의 폭력적 집회와 의사표현은 보호하지 않는다. 독일의 경우, 군복을 입고 집단적으로 도심을 누비는 행위 자체를 금지한다. 더욱이 가스통으로 위협하는 행위나 가스총을 쏘는 행위 등이 있었다면 경찰의 폭력진압도 허용된다.

이명박 정부와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이러한 극우세력의 지지와 도움을 받는 것은 정부와 한나라당을 아끼는 진정한 보수세력의 이탈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와 한나라당에 장기적으로도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20일 "도심 대규모 집회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고, 지난 12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서울광장이 집단적 의사 표현의 장소로 사용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했다. 한 총리나 오 시장이나 집회 불허의 이유로 "(집회가) 국가 브랜드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점"을 들고 있다.

집회가 국가브랜드에 나쁜 영향을 준다? 광장에 잔디 깔아 놓는 발상, 광장이라는 용어 자체도 이해 못하는 모습, 공적 집회에 광장 사용료 또는 변상금을 부과하는 서울시의 행태, 촛불을 든 평화적 집회마저 봉쇄하는 발상이 오히려 국가브랜드에 아주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집회를 참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이 국가브랜드를 낮추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빈번하게 수십만의 가두시위가 벌어지고, 연일 어디에선가 집회와 시위가 예정되어 있다. 때론 화염병이 난무하고 거친 시위의 모습도 보인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신나치 등 극우단체의 집회도 평화적 집회일 경우에는 보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프랑스와 독일의 국가브랜드가 나빠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집회는 당연한 국민의 권리로 생각한다.

누가 국가브랜드를 나빠지게 하는가

 10일 밤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6월항쟁 계승 및 민주회복 범국민대회'를 마친 학생과 시민들이 덕수궁 앞에서 경찰들과 대치를 벌이다가 한 시민이 경찰들에게 강제연행되고 있다.
 10일 밤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6월항쟁 계승 및 민주회복 범국민대회'를 마친 학생과 시민들이 덕수궁 앞에서 경찰들과 대치를 벌이다가 한 시민이 경찰들에게 강제연행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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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 유난히 법치주의(法治主義)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치주의(法治主義)의 핵심은 국가의 자의적인 지배를 금지하는 것이다. 헌법상의 기본권이 정부의 발표나 일방적 집행으로 침해받고 있는 현실은 분명 법치와 거리가 멀다.

법치주의는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으름장 놓는 데 쓰는 말이 아니라 정부가 스스로 되돌아보고 국가의 자의적 지배를 항상 경계하라는 헌법원리이다. 지금 현실은 법치가 아니라 인치(人治)일 뿐이고, 그것은 다름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을 형해화하고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독재(獨裁)이다.

다른 말 할 필요도 없다. 제발 헌법재판소가 밝히고 있는, 국가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고, 법치주의를 스스로 가슴깊이 새기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승수 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검찰과 경찰에 아래의 헌법재판소 결정 내용의 일독을 권한다. 

"집회의 자유는 사회․정치현상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공개적으로 표출케 함으로써 정치적 불만이 있는 자를 사회에 통합하고 정치적 안정에 기여하는 기능을 한다. 특히 집회의 자유는 집권세력에 대한 정치적 반대의사를 공동으로 표명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현대사회에서 언론매체에 접근할 수 없는 소수집단에게 그들의 권익과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국정에 반영하는 창구로서 그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집회의 자유는 소수의 보호를 위한 중요한 기본권인 것이다.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 사회'에 대한 헌법적 결단인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3.10.30, 2000헌바67)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함으로써, 평화적 집회 그 자체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위험이나 침해로서 평가되어서는 아니 되며, 개인이 집회의 자유를 집단적으로 행사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일반대중에 대한 불편함이나 법익에 대한 위험은 보호법익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국가와 제3자에 의하여 수인되어야 한다는 것을 헌법 스스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2003.10.30, 2000헌바67)

지난 5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옥외집회 사전신고제를 규정한 집시법 제6조 제1항에 대해서 "일정한 신고절차만 밟으면 일반적, 원칙적으로 옥외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으므로 헌법상 사전허가금지조항에 반하지 않는다"며 합헌결정을 하였다.

신고제는 집시법 제1조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평화적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는 목적에 부합할 때 헌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옥외집회의 경우 일정한 신고절차만 밟으면 관할경찰관서장은 일반적·원칙적으로 옥외집회 및 시위를 허용해야 한다.

옥외집회의 사전신고제의 합헌의 전제조건은 "일정한 신고절차만 밟으면 일반적·원칙적으로 옥외집회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현실은 그런가? 이명박 정부 들어 집회는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사전허가제로 운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런 현실을 알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집회에 대한 신고제가 허가제로 운용되고 있는 위헌적 현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경고했어야 옳았다.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법무부가 스스로 위헌이라고 자백한 집시법 제10조

'집시법 10조는 위헌이다'
 '집시법 10조는 위헌이다'
ⓒ 남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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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위헌이 제청된 집시법 제10조 야간옥외집회 금지조항에 대하여 지난 3월 12일 헌법재판소는 공개변론을 연 바 있다.

[집시법 제10조]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경찰관서장은 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

헌법 제21조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다. 즉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법률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야간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집시법 제10조는 위헌조항이다.

한편, 법무부는 2009년 3월 2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변론요지서에서 다음과 같이 헌법이 금지하는 집회의 허가제에 대하여 재정의하고 있다.

6·10 범국민대회를 경찰과 서울시가 불허한 데 반발해 10일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광장 봉쇄를 차단하기 위해 서울광장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6·10 범국민대회를 경찰과 서울시가 불허한 데 반발해 10일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광장 봉쇄를 차단하기 위해 서울광장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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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제는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허용이라는 형식을 취하면서 그 허용에 있어서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되는 경우"이다(변론 요지서 12면).

법무부 주장에 따르면, 헌법이 금지하는 집회 허가제는 첫째,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허용 형식, 둘째, 집회에 대한 예외적 허용 시 관할경찰관서장의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되는 경우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된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동일한 변론 요지서 22면에서 "(부득이한 경우가)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충분한 실무적, 이론적 자료가 축적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3월 12일 공개변론에서도 법무부 측에서는 '부득이한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 답변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서, 야간옥외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부득이한 경우'가 어떠한 경우인지 해당 관할경찰관서장, 검찰, 법무부 모두 모른다는 것이다. 즉, 야간옥외집회의 허용여부를 지금까지 관할경찰관서장 등이 광범위한 재량의 범위내에서 자의적으로 결정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무부가 주장하는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제의 요건에 집시법 제10조는 정확히 일치한다. 법무부 스스로 집시법 제10조가 위헌이라고 자백한 셈이다.

법무부는 '부득이한 경우'가 어떠한 경우인지 이론적으로도 자료가 축적되어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헌법이론적으로는 "부득이한 경우"가 어떠한 경우인지 최소한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 등에서라도 밝히고 있지 않다면 이 또한 위헌이 된다. 헌법학계에서는 이미 집시법 제10조 자체는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 허가제에 해당하여 위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본권이 죽으면 헌법재판소 존재 이유도 없다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을 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법무부 측에서조차 집시법 제10조는 위헌이라고 부지불식간에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결정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도 숙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현재 집회의 신고제가 허가제로 운용되고, 정치적 집회는 원천봉쇄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다. 그것은 바로 헌법의 위기이기도 하다. 헌법의 정신과 국민의 헌법상의 기본권을 지켜주어야 하는 헌법재판소의 책무를 더 이상 방기해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는 가능한 빨리 야간집회금지 조항에 대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이번 집시법 제10조 결정을 통해서 헌법재판소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헌법적 판단에 따른 결정을 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1989년 헌법재판소가 개원한 후 벌써 20년이 지났다. 헌법상의 기본권을 지키겠다는 각오로 성년이 된 헌법재판소 스스로 책임을 다하기 바란다. 헌법상의 기본권이 죽고 난 이후에는 헌법재판소도 존재이유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남경국 기자는 독일 쾰른대학교 '국가철학 및 법정책 연구소' 객원 연구원입니다.



태그:#집회의 자유, #헌법재판소, #야간집회금조조항, #민주주의, #법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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