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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공주 왕촌 살구쟁이 학살지 발굴현장에서 나온 의족과 머리뼈와 탄피
 6월 13일. 공주 왕촌 살구쟁이 학살지 발굴현장에서 나온 의족과 머리뼈와 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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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직후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학살된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 첫날인 6월 13일 오전.

"뼛조각이 맞네요."

발굴을 시작한 지 두 시간쯤 지날 무렵 유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발굴 작업을 시작했던 곳에서는 좀처럼 나오질 않던 뼛조각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6·25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7일~9일(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피해자 현황조사단 공주지역 조사단의 예상일)무렵 공주형무소에서 수감 중이었던 재소자와 보도 연맹원(국민보도연맹원) 수백 명이 경찰과 국군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지 59년. 반세기가 넘도록 어둠속에 묻혀 있던 진실들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향수 냄새 같은 것이 나더라고요."

굴삭기 작업을 하던 기사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맨땅을 파헤칠 때와 유해들이 굴삭기에 닿을 때,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냄새도 나고 굴삭기에 닿는 느낌이 이상해서 둘러 봤더니 뼛조각이 나오더라고요."

유해 발굴 기간(7월 31일까지) 동안 만나게 될 장마를 대비한 물길 작업 현장이었다. 유해들이 묻혀 있을 것이라 지정해 놓은 바로 윗부분에서 다량의 뼛조각들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장마비를 대비해 학살 추정지 윗 부분에 물길을 내는 도중, 다량의 뼛조각들이 나왔다.
 장마비를 대비해 학살 추정지 윗 부분에 물길을 내는 도중, 다량의 뼛조각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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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을 내기 위해 굴삭기 작업을 하던 도중에 나온 뼛조각들, 그 바로 옆에서 탄피를 수거했다.
 물길을 내기 위해 굴삭기 작업을 하던 도중에 나온 뼛조각들, 그 바로 옆에서 탄피를 수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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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주최로 열린 공주 왕촌 희생자 추모제 및 개토제를 마친 다음날인 6월 13일 오전. 유해 발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전날 개토제를 찾아던 그 많던 기자들은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진실화해위' 민간인집단희생 유해발굴 조사단(단장 박선주 충북대 교수)의 발굴 작업현장에는 왕촌 희생자 유족인 곽정근씨와 정두화씨가 이른 아침부터 나와 지켜보고 있었다.

공주유족회장을 맡고 있는 곽정근씨는 서울에서, 정두화씨는 여수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전날 추모제를 마치고 발굴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공주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정두화씨 부친(여순 사건에 연류)과  곽정근씨 형님( 태안에서 좌익 활동) 두 사람 모두 공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6·25민족전쟁 직후 왕촌 학살지에 끌려가 학살 당했다.

왕촌 희생자 유해 발굴을 한다는 방송을 보고 찾아왔다는 이재옥씨 부부도 뒤늦게 합세 했다. 이재옥씨 부친은 해방 후 공주시 탄천면 삼각리에서 좌익 활동을 하다가 공주교도소에서 3년형을 마치고 나와 6·25발발 직후 보도연맹원으로 끌려가 학살당했다고 한다.

공주 왕촌 살구쟁이 학살지 발굴현장
 공주 왕촌 살구쟁이 학살지 발굴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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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조각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자 발굴현장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고 애초에 지정된 발굴 현장에서 좀처럼 뼛조각들이 나오질 않자 초조한 낯빛을 보였던 정두화씨가 눈시울을 붉히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무뿌리들이 다 뼈로 보이네…."

굴삭기를 통해 나온 흙더미에도 뼛조각들이 뒤 섞여 있었고 나무뿌리가 뼛속을 관통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왕촌 희생자들의 뼛조각들인지 아직 속단하기에는 일렀다. 오랜 세월동안 버려진 무연고자의 무덤에서 나온 유골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무 뿌리들이 유골을 관통한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나무 뿌리들이 유골을 관통한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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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좀 와 보세요!"

유해 발굴단들이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서울에서 내려온 정두화씨의 여동생과 조카들이 뒤늦게 합세했는데 유골들 틈에서 탄피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M1소총 탄피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발굴현장에서 나온 뼛조각들은 그동안 조사했던 보도연맹 희생자 혹은 공주교도소 관련 희생자들의 뼛조각이 분명했다.

"죽으러 가는 사람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

애초의 학살 예상지보다 산 높은 곳에서 뼛조각들이 나오자 곽정근씨가 말끝을 흐렸다. 왕촌 희생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형님, 그는 형님이 죽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을, 그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의 무게를 뼛속 깊이 새기고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시작한 오후 발굴작업에서 8개의 탄피가 나왔고 의족이 발견되기도 했다. 무릎 부위까지 의족을 했던 희생자는 누구일까? 의족 바로 옆에는 탄피 하나가 놓여져 있었고 머리뼈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발굴현장에서 나무뿌리 하나도 허투로 넘기지 않고 있는 박선주 유해발굴 조사단장.
 발굴현장에서 나무뿌리 하나도 허투로 넘기지 않고 있는 박선주 유해발굴 조사단장.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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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의 뼛조각은 지상으로 부터 50cm 정도의 땅속에서 나왔다. 하지만 박선주 단장의 말에 따르면 학살 당시 시신들을 50cm 깊이에 묻어 놓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50cm쯤에서 유해가 발견되고 있다고 해서 애초에 그 깊이로 묻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59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그 만큼의 흙이 쌓여져 있는 것이지, 희생 당시 그만큼의 흙에 묻혀 있었던 것은 아니죠. 시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충 덮어 놓았다고 볼수 있죠."

뼛조각이 나온 지점에서 대략  50cm 위로 형성된 흙과 그 아래 부분의 흙이 눈에 띌 정도로 확연히 달라 보였다. 시신 위에 덮혀 있는 흙은 그만큼 최근에 형성된 지층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 할 수 있었다.

지난 2007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피해자 조사 당시 필자가 만났던 이재천씨(공주시 반포면 송곡리)의 증언과 일치했다. 이재천씨는 당시 보도연맹원이었던 재덕 재만, 두 형님이 경찰들에게 끌려가 학살된 지 한 달도 채 안 돼 어머니와 함께 왕촌 현장을 찾아 갔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왕촌에서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쥬. 형님들이 거기에 묻혀 있을 것이라 여기고 부모님과 함께 찾아 갔는디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아주 끔찍 했슈. 아마 100m쯤 됐을 건디 구덩이 3군데에 시신들이 흙으로 살짝 덮혀 있었쥬,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그 위를 밟으면 발이 툭툭 튀어 나오고 '꾸럭꾸럭' 소리가 날정도 정도로 시신들이 띵띵 불어 있었으니께, 거기서 어떻게 형님들을 찾겠슈. 그냥 돌아왔쥬."

당시 시신들을 흙으로 살짝 덮어 놓았기에 산짐승들에게 유실당하고 장맛비에 쓸려 나가 대부분 유해들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많다는 게 박 단장의 설명이다.

유해 추정지에서 누락된 위쪽에서도 유해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조사단은 발굴에 앞서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자력 탐사, 3차원 전기비저항탐사, 3차원 GPR(지표 투과 레이더) 탐사 등을 수행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발굴작업 첫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뼛조각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만큼 발굴 작업이 쉽지 않다는 반증이다. 결국 암매장 추정지를 좀 더 넓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유해 발굴기간은 7월 31일까지.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앞으로 두 달도 채 안 남았다. 이번 발굴 작업이 끝나면 더이상 발굴 계획이 없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주 왕촌 학살지의 현장 보전은 물론이고 한국전쟁 전후의 참혹했던 진실을 밝혀내고 있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조차 그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다.

공주 왕촌 살구쟁이 학살지 발굴현장에서 나온 탄피들, 6월 13일 오후 동안 8개의 탄피를 발굴했다.
 공주 왕촌 살구쟁이 학살지 발굴현장에서 나온 탄피들, 6월 13일 오후 동안 8개의 탄피를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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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화해는 기대할 수 없다. 공주 왕촌 희생자 발굴 작업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 온 한국전쟁 전후 집단학살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 밝히기' 작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추진해 왔던 '진실 찾기' 작업을 멈춰서는 안될 것이다. 역사는 냉혹하다. 주는 대로 되돌려 받는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는 그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태그:#공주왕촌희생자 발굴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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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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