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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바람이 분다'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
 2002년 '바람이 분다'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
ⓒ 탁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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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끝나고, 슬픔보다 혹은 절망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저 이렇게 국으로 앉아 있다가 결국 다시 일상으로 슬금슬금 돌아가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예감. 서늘하지만 분명한 예감에 더욱 절망스러웠다. 그리고 절망의 반은 내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부터, 비록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이쯤 되면 우리가 꿈꾸던 세상에 근접한 것 아니겠는가 믿었었다. 아니 적어도 뒤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얼마든지 뒤로 갈 수 있다는 뼈아픈 현실이 나를 때린다.

당혹스러움이 슬픔으로, 슬픔이 절망으로, 절망이 더 깊은 절망으로 환치될 무렵, 나는 어렴풋한 기억을 하나 떠올렸다.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문화예술계의 몇몇 선배들과 함께 만들었던 공연, 2002년 5월 25일 열렸던 공연 '바람이 분다'가 떠올랐다.

▲ 2002년 공연 '바람이 분다'
ⓒ 탁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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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고백하지만 그날의 공연 '바람이 분다'는 분명하게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바람이 분다'였고 '정치개혁의 바람이 분다'였으며 '노무현의 바람이 분다'이기도 했던 공연이었다. 연세대학교 노천극장과 부산대학교 대운동장에서 2만여 명의 관객과 함께했던 이 공연은 공연이라기보다는 정치집회와 같았고, 정치집회이기보다는 그 시대 희망의 아이콘이던 '노무현'이라는 인물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했다. 

낡은 VHS 테이프로 남은 그날의 공연은 흥겨웠다. 그때는 누구도 7년 후에 있을 비극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개혁의 강한 의지, 새로운 미래와 희망의 내일을 만들겠다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던 공연장이었다. 테이프 속에서는 '문성근'이 환하게 웃으며 공연을 진행하고 있었고, 십년 만에 다시 모였다는 '노찾사' 멤버들이 지난 노래들을 힘차게 부르고 있었고, '정태춘'이 노무현 뿐 아니라 그 다음도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2002 '바람이 분다' 공연 사회를 맡은 김제동.
 2002 '바람이 분다' 공연 사회를 맡은 김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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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바람이 분다' 공연에 출연한 정태춘씨.
 2002년 '바람이 분다' 공연에 출연한 정태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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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에와 크라잉넛과 YB(윤도현밴드)'도 지금보다 훨씬 젊은 모습으로 그들의 노래를 관객과 나누고 있었다. 이따금 비춰지는 객석에서는 '명계남'이 안티조선 서명을 받으며 객석을 누비고 있었고 흥미롭게도 당시만 하더라도 무명이었던 김제동이 공연의 오프닝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는 그런 공연이었다. 뜻을 같이했던 공연기획자들이 쌈짓돈을 갹출하고, 가수들이 무료로 동참하고, 공연장에 온 관객들이 모금을 통해 공연비용을 마련했던, 정당과 단체의 도움을 거절하고 오로지 그 세대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시대정신을 요구하는 대중에 의한 대중문화공연이었다. 386세대를 중심으로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를 지켜온 그 세대들이 다시 한 번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내자는 의지로 만들어낸 자리였다.

그날의 공연을 정태춘은 "침묵과 퇴행의 1990년대를 넘어,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문화행동"이라 규정했고, 노찾사는 "들을 노래, 부를 노래 하나 없는 1980년대 세대들을 위로하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던 노래들을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과 합창하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날의 공연은, 대선후보 노무현과 이 땅의 민주주의 세력이 새로운 시대와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강렬한 소망의 자리였다. 그렇게 그날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는 바람이 불었다.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노란 바람이, 환희와 기대에 찬 바람이 불었다.

▲ 다시 바람이 분다
ⓒ 탁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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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이 지난 오늘, 낡은 테이프나 뒤적거리는 나를 본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믿었던 모자란 나를 본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참담하게 앉아있는 나를 본다. 하지만 2002년 5월과 6월 그날의 나는 이렇지 않았었다. 희망을 이야기했고, 다시, 시작을 이야기했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렸다. 그리고 그것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다. 그날 모였던 2만 관객이, 그래서 결국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 절망 속에서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다시 찾아야 한다. 다시 바람을 만들어야 한다. 

2009년 6월 21일 6시 30분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바로 그 자리,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정확하게 7년 전의 그날, 그 장소에서 이제 새로운 세대 386과 그 다음 세대의 뜨거운 연대와 미래세대, 아름다운 세대를 위한 공연을 기획한다. '다시 바람이 분다'다. 청년, 학생들과 대중문화인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지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제 거대한 바람을 만들려고 한다. 적지 않은 가수들이 이미 동참을 약속했고, 정파에 상관없이 각 대학의 총학생회와 학생들이 기획단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동시에 오늘 우리의 미래에 대해 선언하고 뜨겁게 연대할 수 있는 자리다. 이제 더 이상 좌절하지 말자. 절망하지 말자.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 그 바람을 타고 날자. 훨훨 날아가자.  

덧붙이는 글 | 추모공연에 함께할 문화예술인, 기획자, 자원봉사자, 그리고 후원자를 찾습니다. 함께하시고 싶은 분들은 노무현 대통령 추모 공연기획단 '다시 바람이 분다' 기획단으로 연락 바랍니다. hoonz.kim@gmail.com



태그:#노무현, #추모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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