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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담론의 위기

 

국민의 관심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장례에 쏠려있었던 기간 동안 남북관계는 실로 심각한 악화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이 기다렸다는 듯이 PSI 전면참여를 선언하자 북한은 다시 동해상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초강경 대응으로 맞불을 지피며 남북 관계가 평화 공존에서 대결구도로 급속하게 냉각되었고, 정세가 이 추세로 진행된다면 조만간 휴전 이래 최악의 군사대결까지 예상해야 할 만큼 상황이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보다 심각한 것은 남과 북의 강경대치가 남북 대결을 부추기는 매파의 목소리를 보다 크게 만드는 반면, 평화 공존을 주장하는 비둘기파의 목소리와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남북 정세가 군사 대결을 불사하는 이른바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평화와 공존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책임한 평화주의자'라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칫 적전 상황에서 이적행위자로 내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통일 정책은 냉전시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이 있었던 5~60년대를 제외하고는 줄곧 '평화통일 원칙'을 고수해왔다. 이승만의 구호뿐이었던 '북진통일론'을 폐지하고 남북의 공존과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통일 원칙을 수립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반공 이데올로기를 국시로 삼아 정적을 제거하는 등 권력을 유지수단으로 활용했었던 박정희 정권이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이 땅에서 다시는 끔찍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지 않겠다는 우리 민족의 몸부림이었고 절규였던 만큼, 남북은 무장공비침투나 공작원 북파 같은 상대의 군사적 도발에도 더 이상 대결을 전면전으로 확대시키지 않기 위해 대응을 자제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남북 관계에서는 도무지 '자제'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뿐 만 아니라, 남북 관계가 군사 대결도 불사하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누구도 섣불리 평화를 주장하기 어려울 만큼 대북 강경 대응 목소리만 커지고 있기에 지금은 남북 관계의 위기인 동시에 평화담론의 위기라고 판단했는데, 마침 갑천 둔치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대전 충남 통일마라톤대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북의 핵개발, PSI전면 참여 등 시국 현안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궁금해져 마라톤 대회장을 찾았다.

 

아래 소개하는 내용은 대회에 참가한 통일관련 시민 단체 관계자와의 방담을 간략히 요약한 것으로, 기자가 궁금한 점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질문하고 답을 들었기 때문에 기사에 기자의 주관이 많이 반영되었음을 밝힌다.

 

행사 스케치

 

행사 시작을 한 시간 앞둔 오전 7시경 갑천 둔치에 도착하니 행사장은 행사 참가자로 북적일 것이란 기대와 달리 한산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시민단체 관계자와 스태프 그리고 자원봉사를 나온 학생들만이 막바지 행사 준비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다. 행사 시작 전 다양한 참가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바람은 무산되었지 싶었다. 명색이 6.15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마라톤대회가 아니던가? 왠지 힘이 빠졌다.

 

다행이 시각이 임박하자 행사장은 붐비기 시작했다. 2천 명이 넘는 마라톤 참가신청자와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함께 나온 가족들이 서로 배번을 달아주며 격려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아빠와 함께 출전 신청한 초등학생에게 왜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아이는 눈을 똘망이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잖아요. 그래서 나왔어요."고 외쳤다. 우문현답이었다.

 

역주하는 여성 참가자 통일마라톤은 우승보다 함께 달리고 끝까지 달리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진 대회이다.

배번을 준비하는 아이 정성껏 아이의 배번을 달고 있는 아빠

 

간단한 개막식과 축하공연 그리고 준비 체조를 마친 뒤 6.15Km를 달리는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일반부. 남학생부. 여학생부가 순차적으로 출발했지만 순위나 기록 등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함께 달리고 끝까지 달리는 것'이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대회이니 말이다.

 

평화통일에 대한 방담

 

선수들이 출발한 후 한산한 틈을 타 평화통일운동을 주도하는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의 천막을 찾아 궁금했던 문제들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들었다. 아래는 장도정 평통사 대전충남 사무국장과 기자의 방담과 일부 대답을 대신하여 내민 홍보 인쇄물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최근 대결구도로 치닫는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는가?

답 : 외형적으로 북한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이 남북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요인이 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대결 마인드에 있다. 미국이나 우리 정부의 군사적 압력이 없고 화해 공존 분위기가 유지된다면 북한이 핵을 개발할 명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북측에는 경색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뜻인가?

답 : 북측에 책임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남북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는 점을 주목해 달라.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서 이룬 합의를 후임 대통령이 전면 부정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북한이 심하게 반발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북한은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기간에 핵실험을 강행 했다. 국민들이 애도에 잠긴 기간에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답 : 지금 사회분위기에서 답변하기 조심스럽지만, 핵실험은 사전에 잡힌 스케줄에 의해 진행됐을 것이고 노무현대통령 서거는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돌발 사태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북한의 핵무장에 찬성하는가?

답 : 물론 반대한다. 평통사는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여 통일에 이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따라서 북한과 남한 그리고 미군을 포함한 한반도의 비핵화 뿐 아니라 재래식 전력의 군비축소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에 못지않게 최근 북한도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최근 대남 화해를 주장해온 인사의 처형설이 전해지는 등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 : 사실 외부 세계가 북한 내부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처형설은 아직까지는 설에 불과할 뿐이며 북한에서 강경파가 득세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은 남측이다. 우리 정부가 화해 포용정책기조를 유지했다면 강경파의 입지는 좁아졌을 것이다.

 

최근 북한은 김정운을 후계자로 지명하여 3대째 권력 세습을 시도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 : 북한의 인권문제나 체제 문제를 외부에서 거론하고 간섭할수록 북한은 폐쇄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북한사회가 폐쇄될수록 인권문제도 악화될 것이다. 개방과 교류가 장기적으로 북한 인권문제나 민주화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남북의 대치상황으로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지가 좁아졌다. 위축된 통일운동을 대중에게 확산하기 위한 대비책은 있는지?

답 : 특별한 대비책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남북 모두가 강경책으로만 맞서는 현 상황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이야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크게 피해볼게 없는 입장이고, 오히려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할 것이다. 이 땅에서 전쟁이 난다면 결국 피를 흘리게 되는 것은 우리들이다. 북에 대해 강경대응을 지지하는 국민들도 전쟁까지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험한 착각이 지배하는 사회..

 

행사를 참관하고 시민단체 관계자 그리고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거웠다. 우리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고수하며 북을 자극하고 거기에 반발한 북의 보복성 군사 도발이 행사되는 악순환은 전쟁이나 북한 주민의 고사(枯死) 같은 끔찍한 비극으로 발전할 개연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발선을 뛰쳐나가는 아이들 통일마라톤이 즐겁기만 한 아이들의 역주

덩달아 뛰는 아이들 참가자들이 골인지점을 달리자 산책나온 아이들이 덩달아 뛰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의 웃음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누군가 "모든 전쟁은 (전쟁 당사자의)착각에서 비롯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경하게 나가면 결국 굴복하겠지,,' '우리 전력이라면 만약 전쟁이 나더라도 충분히 적을 제압 수 있다.'는 생각 등이 자칫 전쟁의 참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착각들이라 할 것인데, 남북 상호간에 서로를 위협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며 함정을 배치하며,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이적행위자로 몰아붙이는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바로 그렇다.

 

정말 우리들은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것일까?

모험주의자들의 선동에 휘말리지 말고 냉정을 회복해야야할 필요가 새삼 느껴지는 요즘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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