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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일 환담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오연호 대표기자.
 2007년 9월 2일 청와대에서 인터뷰 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오연호 대표기자.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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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노무현은 토론을 좋아한다. 그래서 청와대 인터뷰는 때론 토론이 되었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하면 대통령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역질문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적당한 답을 얼른 찾지 못해 당황하기도 했다.

예컨대 이런 경우다. 그에게 표를 줬던 지지자들이 점점 떨어져 나가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참 어렵죠, 그럴 때.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지지자들 가운데 상처받은 사람이) 뭐 한 사람 두 사람이겠어요? 다들 (노무현 대통령이) 나쁘다고 하니까 정말 지지자들이 헷갈리지 않겠어요? 아 (그땐 나도) 내가 이렇게밖에 못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그러다 대통령은 갑작스럽게 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 한 번 물어봅시다, 내가 뭘 잘못했어요? 뭐가 틀렸어요?"

"내가 대통령 된 것은 당연입니까, 우연입니까?"

 민주당 노무현후보 부부가 19일 밤 개표결과 당선이 확실시되자 여의도 당사를 찾아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02년 12월 19일 밤 노무현 후보 부부가 개표결과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자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 모여 있는 지지자들을 찾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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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도 그랬다.

- 노무현 대통령 당선 초기에 기대를 많이 품었던 사람들이 지금(2007년 10월) 힘이 많이 빠져 있습니다. 하나로 모이는 것도 약해지고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이슈들이 굉장히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한 지도자가 한 방향으로 확 이끈다고 해서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대통령은 이렇게 되물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김대중·노무현이 승리했는데 이 일련의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봅니까, 우연한 것으로 봅니까? 2002년 대선에서 내가 승리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야말로 우연적인 기적이라고 봅니까?"

- 두 요소가 섞여 있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어정쩡한 답을 할 때 내 머릿속에서는 한편으로 노사모·돼지저금통·선거운동원을 자청한 누리꾼들의 동참이 떠올랐고 또 한편으로는 이른바 '제비뽑기'로 불렸던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결과 발표 장면도 떠올랐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답은 이것저것을 적당히 버무린 것이 아니었다. 분명했다.

"나는 그것이 우리의 당연한 승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야말로 일회적인 승리이지요, 의외의 승리."

그런 단정에 나는 조금 서운했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정몽준 후보와 극적인 단일화를 한 것도 있었고, 이회창 후보에 대한 '아들 병역비리 의혹'도 있었지만 가장 큰 승인은 시대의 흐름, 시대정신 아니겠는가.

"노무현의 대선 승리는 특수한 경우"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거듭 말했다.

"내가 2002년 대선에서 이긴 것은 이례적인 사건, 특수한 조건들이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것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도 못 풀어갑니다."

그것은 내게 선문답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노무현 대통령은 왜 2002년 대선은 물론 1997년 대선에서 진보개혁진영이 승리한 것을 우연이라고, 기적이라고 보고 있을까?

"내가 계속 이야기하지만, 해서 이길 수 없는 싸움들이었습니다. 1997년에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이길 기회를 잡은 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보수 후보의 낙마를 통해서였습니다. 말을 막 타고 달리다가, 어느 날 보수가 말에서 뚝 떨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이인제 후보가 등장하고 보수가 분열이 된 것입니다. 보수진영이 실수했기 때문에 김대중 후보는 이긴 거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고 했다.

"2002년 내 승리는 나의 독특한 인생사 때문입니다. 나는 부산에서 입신해가지고, 호남의 표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영·호남을 어느 정도 아우를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이 있었던 거지요. 청문회 스타라고 해서 인지도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고집스러운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겹쳐져서 그때 바람을 만들어 낸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 승리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경우다 이거죠."

대통령은 그렇게 보고 있었다. 노무현이라는 "독특한 인생"과 "고집스러운 원칙을 가진" 후보가 없었다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 말은 선거에서는 어찌어찌하여 노무현으로 이길 수 있었지만, 정치지형이나 한국사회의 경제사회적 기반은 진보개혁 성향의 후보가 보수 후보에게 기본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니었다면"이라면서 우연의 승리, 특수한 경우임을 강조하는 것은 냉정한 현실을 이야기한 것이지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는 아니었다. 그는 "내가 아니라도 역사의 발전은 필연"이라고 했다.

"내가 아니면 이 시기에 진행된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가끔 내가 '이거 나 아니면 못 합니다' 이런 소리를 하기는 합니다. 어제도 어디 강연 가서 '노무현이니까 했지 다른 사람 못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지만, 내가 한 일들은 역사적으로 시간을 조금 앞당기는 것이지, 결국은 역사의 필연이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옛날에는 지도자 한 사람의 노력이 역사를 바꾼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닙니다."

"물적 토대의 취약성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자진 신고납부가 시작된 1일 라이트코리아 주최로 열린 '조세저항 국민운동' 결성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15일까지 종합부동산세 납부 거부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힌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자진 신고납부가 시작된 2006년 12월 1일 '북은 핵폭탄! 남은 세금폭탄!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현수막을 내건 보수단체 라이트코리아 회원들이 '조세저항 국민운동' 을 결성, 종합부동산세 납부 거부운동을 결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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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냉정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 밀어주지 않았느냐 하지만, 우리가 사실은 특수한 이벤트를 통해서 정권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취약성 같은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고요. 진보진영이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아도 아직까지는 마이너입니다. 물적 토대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의 물리적 토대의 차이만큼 노무현(지지세력)과 반대편 진영의 물적 토대의 차이가 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득권 보수진영의 "결속력이 매우 강고하고 그 뿌리도 깊다"고 했다.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독특했다. 감성 네트워크와 이익 네트워크의 결합.

"(보수진영은) 인적 조직도 강합니다. 이념적 결속뿐만 아니라, 기득권의 결속도 큽니다. 자생적으로 어떤 이익에 기반한 네트워크가 생기면 그것이 다시 감성적인 네트워크로 재결합·재조직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초등학교 때를 생각해봅시다. 초등학교 때 감성적으로 시작한 친구도 사회에 나와 이익을 같이하는 수준의 동료가 되면 다시 더욱 결합되고, 또 자연적 결합관계가 한 번 더 되면 결합도가 매우 강해지죠. 그런 것이 아주 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죠."

그렇다면 진보진영의 결합력은? 보수진영에 비해 취약하다고 했다. 그 핵심 원인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주로 지역주의 장벽과 진보언론의 수준을 주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우리(진보진영)가 이념에 기반해 사람들을 결속하려 시도하면, 지역으로 갈라져 있어서 결속이 되지를 않습니다. 이념적 주제가 이슈가 안 됩니다, 지역주의 때문에 이슈 자체가 되질 않아요."

진보진영의 취약성은 진보언론에도 나타난다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의 눈에는 "두 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즉자적"인 보도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우리가 (탄핵당했을 때처럼) 위기에 빠졌을 때, 죽어간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막 밀어주던 (진보) 언론들도 일상시에는 또 비판해대요. 물론 (언론이 기본적으로 정권에 비판적인 것은) 할 수 없지요. 그런데 깊이 들여다보지를 않아요. 두 수 앞을 내려다보는 것도 없고, 즉자적이에요. '왜 저것을 했을까' 생각하는 것도 없고, 두 번 생각하는 수준이 안 됩니다. (진보적이라는) 한 신문은 어느 날부터 나를 비판해대는 것을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린 감나무에 너무 많은 열매가 매달리면...

지난 6월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디지털매직스페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인과의 대화' 장면. 지난 6월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디지털매직스페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인과의 대화' 장면.
 2007년 6월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디지털매직스페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인과의 대화' 장면.
ⓒ 청와대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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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경제·사회적 물적 토대가 약한 진보정권을 어린 과일나무에 비유했다. 그 어린 과일나무에 너무 많은 기대와 요구, "너무 많은 열매가 달리면, 죽어버린다"고 했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과수원을 했어요. 감나무도 키우고, 복숭아도 키웠는데, 열매가 많이 달리면 따냅니다, 솎아줍니다. 나무가 어릴 때 열매가 너무 많이 달리면 죽어버립니다, 말라비틀어지거나. 그러니까 그렇게 솎아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는 진보진영이 "순진하다"고 했다.

"뭐 어쩔 도리가 없어요. 내가 대통령이 되었으니까, 좋은 세상이 바로 올 거라고 생각했던 순진함, 막강한 권력의 파워들을 다 저쪽에서 가지고 있는데… 그 순진함."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이 수준 가지고 다음에도 정권을 잡겠다고 하는 게… 허망한 일이에요."

그러고 보니 서로 닮은 듯했다. 2002년 대선에서 그에게 표를 준 지지자들과 노무현 대통령은. 양쪽 다 서로, 지지하는 마음과 섭섭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지지자와 진보진영의 과도한 요구, 순진함에 섭섭해하면서도 그들과 함께 만들어낸 2002년 대선 승리를 가장 보람있는 일로 여기고 있었고, 그만큼 그들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 지난번에 재임 중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열린우리당이 깨질 때"라고 했는데요, 진짜 대통령 하기 참 잘했다, 이런 것을 느낀 때는 언제였습니까?

"당선되었을 때입니다. 내가 당선이 안 되었더라면, 내가 그 시기에 패배했다고 가정해보면 우리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겠느냐.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내 자신의 승리도 있지만, 선거의 과정과 방법에서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선 그 자체가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내가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금 내가 그 당선의 의미를 충분히 살려내고 있느냐, 그 점이 큰 부담이죠. 내가 당선했을 때, 당선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일어났던 시민들의 역동적인 결집 이런 것이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들이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일 아쉬운 것은 그 사람들의 기대와 활력, 자신감 이런 것을 지금까지 유지 못 하고 온 것이 아니냐…."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승리한 것은 이례적인 사건, 특수한 조건들이 결합되어서 승리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무슨 밑천이 있었어요? ... (이번 2007년 대선은 우리 쪽에 어려워지고 있는데)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디에서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인가? 노 대통령은 그날뿐 아니라 세 차례의 인터뷰에서 간간이 그에 대한 답을 전하고 있었다. 그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대전제는 보수-진보세력간 물적 토대의 차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도 못 풀어갈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이후엔?

첫째, 조급주의를 버려야 한다.

노 대통령은 이런 예를 들었다.

"내가 시장에서 천원을 벌어왔는데, 왜 2천 원 못 벌어 오냐고 뺨 때리는 일이 벌어져 왔어요. 자기는 시키면 500원도 못 벌어 올 거면서. 그러면 내가 이렇게 하소연할 수밖에. 내가 그날 장에 갔더니 난장판이고, 장이 다 무너져 가지고 판때기 놓을 데도 없었는데요, 그래서 1000원밖에 못 벌었는데요?"

둘째, 당장의 유·불리를 떠나, 견해 차이를 인정하고, 대의 앞에 하나 되어야 한다.

노 대통령은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이 "(대선 직후에 치러질) 다음 국회의원 선거만 의식했기 때문에 대의를 가지고, 멀리 보고 하나가 되지 못했다"고 했다. 각자 자기들 살려고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하거나 비판에 앞장섰다는 말일 것이다. 그는 김대중 정권 때 자신은 "(선거운동) 전 기간 동안 목에서 피가 나도록" 대의를 위해 홍보지원을 자청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권 전 기간 동안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열 명이든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모아놓고,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김대중 정권 억울하게 언론에 당하고 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가치가 중요하다, 전략적으로 사고하자'며 정말 목에 피가 나도록 홍보하고 다녔어요. 그렇게 하면 이겨요. 그런데 비 온다고 밖에 안 나가고 바람 분다고 안 나가고 하면 이기겠습니까?"

"가장 큰 장애는 야당이 아닌 조중동"

 2007년 6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참여정부 평가포럼'에서 강연한 내용을 다룬 조선일보 2007년 6월 4일자 1면.(일요일자 신문 발행이 되지 않아서 월요일인 4일자에 다뤘음)
 2007년 6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참여정부 평가포럼'에서 강연한 내용을 다룬 <조선일보> 2007년 6월 4일 자 1면.
ⓒ 조선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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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국민에게 어디로 갈 것인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역량, 특히 미디어 역량을 길러야 한다.

"나는 지난 5년간의 투쟁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야당이 아니고, 조중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이죠. 그럭저럭 정책은 했습니다만, 그러나 역사투쟁이랄까, 기세 싸움에 있어서 (조중동의 영향 때문에) 우리 세력의 사기를 돌려놓지 못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공권력·정보(이데올로기)·돈, 이 3자가 결합해서 권력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는 그중에서 유권자의 최종선택을 결정짓는 정보(이데올로기) 마당이 "결전의 장"이라면서 미디어 공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주권자인 유권자들이 정보와 이데올로기를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움직이니까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부분에서 약합니다. 그럼 어떻게 (진보언론이) 독자층을 넓혀갈 것이냐? 소비자의 성향을 바꾸지 않으면 주류가 될 수 없습니다. 독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비전·전략을 보여주면서 끊임없이 그들을 설득하고 훈련시키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넷째, 혼신의 힘을 다하자, 그래야 대중은 감동한다.

노 대통령은 "왜 2007년 대선에서는 진보진영 후보에게서 감동이 느껴지지 않다고 보느냐"고 물으면서 황산벌 전투에서 병사 수는 턱없이 적었어도 신라군에 결사항전한 "백제의 계백 장군 결사대처럼 모든 것을 걸고 싸우면 대중은 감동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가 정치학 강의하면 100강 정도 할 수 있을 것"

나는 이날 인터뷰를 하기보다는 대통령으로부터 정치학 강의를 들은 셈이었다. 한 번 말을 시작하면 10분이고 20분이고 그렇게 '강의'를 했다. 그런데 그것은 지루하지 않았다. '정치학 교수 노무현'은 본인의 경험을 사례로 들어가며 열강을 했고, 다소 주관적인 해석도 있었지만 깊이 있는 분석을 했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은 그렇게 공부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진보의 미래를 위해. 

- 퇴임 후에 정치학 특강을 한번 하시죠, 제가 미리 들어본 셈인데 수강생이 많이 몰릴 것 같습니다.

"아마 내가 하면 1시간짜리로 100강 정도 해야 할 겁니다. 아니 200강 정도 될까? 기회가 되면 한번 하고 싶어요."

그러나 우리는 전직 대통령의 정치학 특강을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됐다. '정치학 교수 노무현'은 강의노트를 인터뷰 대화록으로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숙제를 우리들에게 내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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