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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울고 있다.
▲ 오열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29일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울고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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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성을 표출하고 전달하는 데 분노와 눈물만큼 효과적인 매개체는 없다. 대중은 자신들이 화가 날 때 함께 분노하고, 자신들이 슬퍼할 때 함께 눈물을 흘리는 정치인의 인간적 모습에 감응한다. 그런 점에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감성의 정치인'이다.

2002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그는 자신을 연대후보로 선출한 개혁국민정당 문성근의 지지연설을 들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열렬한 지지자였던 문성근의 감동적인 연설을 들으면서 자연스레 떠올린, 대선후보가 되기까지의 간난(艱難)과 신고(辛苦)가 그의 심금을 울렸을 것이다. 그 장면은 나중에 대선 정치광고로 만들어져 유권자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곧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라크에 주둔한 한국군 자이툰 부대를 방문해 병사들을 만나서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퇴임을 앞두고 '노사모' 회원들을 청와대 녹지원에 초청해서도 눈물을 뿌렸다. 그리고 그의 서거 이후 많은 사람들은 '친구 같은 서민 대통령'을 잃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노무현은 감성의 정치인, 김대중은 이성의 정치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감성의 정치인이라면,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이성의 정치인'이다. DJ는 1987년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처음으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했다. 그러나 DJ는 서민이 아니었고 서민이 될 수도 없었다. 그는 서민들과 공명(共鳴)하기보다는 서민을 위한 정치에 본분을 두었다.

그의 대척점에 그를 영원한 경쟁자로 여겼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있다. 두 사람은 30년 민주화 동지이자 경쟁자였다. 그래서 DJ와 YS를 비교한 말과 글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박지원 의원의 이런 평보다 더 적확한 '촌철살인'은 보지 못했다.

"YS는 한 번에 180도를 바꾼다. DJ는 논리적이어서 하루에 1도씩 바뀐다."

87년 당시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처음 참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광주 영령들 앞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고 있다.
▲ 오열하는 DJ 87년 당시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처음 참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광주 영령들 앞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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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DJ가 노무현의 주검 앞에서 오열했다. DJ가 대중 앞에서 펑펑 운 것은 1987년 5.18 국립묘지(당시는 망월동 공동묘지 5.18묘역)를 참배해 통한의 눈물을 흘린 이후 처음이다(1980년 5월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그가 7년만에 광주 영령들 앞에 섰으니 어찌 오열하지 않을 수 있으랴).

DJ는 5월 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부인 이희호씨와 함께 헌화와 분향을 마친 뒤 유족에게 다가가 권양숙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오열했다. 이에 영결식 내내 슬픔을 억누르던 권씨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 내외, 그리고 한명숙 공동장의위원장도 함께 일어나 눈물을 흘렸다. 앞서 헌화한 이명박(MB) 대통령이 인사할 때 유족들은 앉은 채로 외면했다.

무엇이 노구의 전직 대통령을 펑펑 울게 했을까?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영결식에 참석한 노(老) 대통령은 영결식 내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비통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오열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 오열의 정체는 뭘까? 무엇이 노구의 전직 대통령을 펑펑 울게 했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DJ의 분신인 박지원 의원은 알 것 같았다. 2일 박 의원에게 물었다.

- 김 전 대통령이 영결식장에서 오열하는 것을 봤다. 지켜본 소감이 어떤가.
"영결식장에서 오열하시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어제도 대통령님과 같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와 관련)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때 본 것과 대화 내용을 토대로 모레 대학 강연 때 얘기하려고 한다."

박 의원은 오는 4일 목포대 경영대학원에서 '노무현의 죽음과 김대중의 슬픔, 민주정부 10년의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라는 주제로 특강을 할 예정이다.

- DJ가 그처럼 오열한 것은 예상 밖이었다. 왜 오열했는가.
"DJ 대통령께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째, 민주주의가 5공과 유신으로 회귀하는 것 둘째, 서민경제와 소외계층 및 중소기업이 도탄에 빠진 것 셋째, 남북관계가 위기에 처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DJ 대통령께서는 민주정부 10년을 이끈 전직 대통령으로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 세 가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어떤 구상'을 했다는 것을 (DJ와) 대화할 때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서거하자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고, 저와 대화할 때도 '날개 한 쪽이 뜯겨 없어졌다'고 한 것이다."

DJ "내 몸의 반이 무너지고 날개 한 쪽이 뜯겨 없어졌다"

DJ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23일 "평생 민주화 동지를 잃었다"며 "민주정권 10년을 같이했던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고 애통해했다. 그리고 유족과 한명숙 장례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하려고 했지만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자, 5월 28일 서울역 분향소에서 조문을 한 뒤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와 환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청와대 오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청와대 오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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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진 마음이 앞으로 민주주의, 좋은 경제, 남북관계 화해 등 노 대통령이 추진하던 3대 정책에 발맞추어 국민이 나아갈 것이다.

이 나라 민주주의는 노무현과 김대중이 앞장서서 해왔고, 남북관계도 그랬다. 경제도 내가 외환보유고 1400억불을 노 대통령에게 넘겨줬다. (내가 정부를) 처음 맡을 때는 (외환보유고가) 37억불이었다. 노 대통령도 1200억불을 보태 다음 정부에 2600억불을 넘겨줬다. (그것이 없었다면 이명박 정부가) 세계적인 금융위기 앞에서 차입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박지원 의원은 기자들이 DJ와 노무현, 그리고 MB 정부의 국정 운용의 다른 점을 묻자 "(조각 당시) DJ는 정치인과 교수-시민단체 그리고 관료를 3분해 중용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시민사회단체에 치중했고, MB는 교수집단을 중용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인은 현실적이고, 시민사회단체와 교수는 이상적이고, 공무원은 안정을 중시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DJ가 현실에 발을 디딘 이상주의자라면, 노무현은 이상에 발을 디딘 현실주의자이다.

DJ가 구체적으로 '어떤 구상'을 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진보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던 것처럼, 김 전 대통령은 현실에서 민주주의 후퇴와 3대 위기 극복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노 전 대통령과 연대를 구상했던 것만은 분명했던 것 같다.

몸의 절반 혹은 날개 한 쪽을 잃은 아픔과 슬픔 말고도, 위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바로 그 '연대의 상실감'이 오열로 나타난 것이다.


태그:#노무현, #김대중, #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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