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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께 절을 올리는 호주 동포들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께 절을 올리는 호주 동포들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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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시드니의 시차는 1시간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과 서울광장 노제가 끝나고 운구행렬이 화장장으로 떠날 즈음, 시드니에서 추도식과 노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저녁 6시, 늦가을의 어둠 속으로 빗줄기가 흩뿌렸다. 지난 5일 동안,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분향소가 차려졌던 시드니한인회관도 슬픔에 겨운 듯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비에 젖고 있었다.

한인회관 입구 쪽 어둠 속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복받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시간, 거기에 모인 시드니동포들은 너나없이 상주의 모습이었다.

시드니 촛불 바다에서 위로 받다

시드니 추도식장으로 모셔지는 고 노무현 대통령 영정
 시드니 추도식장으로 모셔지는 고 노무현 대통령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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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한인회관 대강당의 무대는 촛불 바다였다. 그리고 200여 명의 동포들이 서있는 강당은 눈물 바다였다. 오직 한 분, 고 노무현 대통령만 영정 안에서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미안합니다. 여러분을 슬프게 만들어서요"라는 그분 특유의 음성이 환청으로 들리는 듯 했다.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 성품으로 미루어보아, 당신과의 영결을 애도하면서 슬피 우는 동포들을 위로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여 개의 작은 촛불들을 밝힌 무대 중앙에는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쓰인 펼침막이 걸려있었다. 영정 앞에는 노란색과 흰색의 국화꽃이 놓여있고, 그 양쪽에는 태극기와 호주국기가 걸려있었다.

애국가 제창과 호주국가 연주 등의 국민의례에 이어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묵념이 1분 남짓 동안 이어졌다. '호주한인연대'가 마련한 '고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및 시드니 노제'가 시작된 것.

"참여정부는 결코 실패한 정부가 아니다"

추도사를 바치는 장경찬 '호주노사모' 1기 대표
 추도사를 바치는 장경찬 '호주노사모' 1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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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호주 노사모'가 준비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삶과 정치역정을 조명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특히 참여정부 재조명의 순서에서는 발표자가 각종 통계자료를 제시하면서 "참여정부가 일부 언론의 폄하와는 달리 경제발전, 사회복지 증진 등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호주 노사모' 측이 한국통계청, 한국은행 등의 각종 자료를 토대로 만든 그래프는 그동안 참여정부가 얼마나 왜곡된 평가를 받아왔는지 여실히 증명해주었다. 특히 복지지수의 현격한 개선, 외환보유액 증가, 1인당 명목소득 증가, 역대 최고의 수출액 기록은 물론이고, 부도업체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한국은행 통계자료도 눈길을 끌었다.

'호주 노사모' 측은 이어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이룩한 지역균형발전과 남북화해정책은 대한민국 역사의 물꼬를 바꾸었다"면서 "특히 남북화해정책으로 얻은 성과는 해외동포의 입장에서 더욱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첫 번째 추도사를 맡은 장경찬 '호주노사모' 1기 대표는 "오사카 출신, 전과 14범과 삼성의 떡고물이나 받아먹고 사는 '떡검'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고 북받치는 감정을 토로하면서 "그러나 이 슬픔을 빨리 극복하고, 지금부터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똑바로 계승하는 것이 진정한 추모"라면서 앞날의 결의를 다졌다.

깊은 슬픔을 삭혀낸 시드니 노제

시드니 추도식에서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호주동포들
 시드니 추도식에서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호주동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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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추도식 2부는 시드니 노제 형식으로 진행됐다. 추도시 낭송, 추도음악 연주, 추도무용 등으로 꾸며져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깊은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시와 음악, 그리고 무용이 전해주는 추모의 울림도 아주 컸다.

김오 시인(호주한인문인협회 회장)은 추도시 '분노가 우리를 관통한다'를 통해서 "저 똥 벽 / 기득권과 권위주의 / 차별과 위선의 냄새덩어리 속에서 / 화합은 시들고 평화는 길을 잃었다 / 아직도 평등은 가볍고 민주는 어둡다"라며 "분노가 우리 온 정신을 관통한다 / 오늘 분명히 / 그리고 영원히"라고 갈무리했다.

이어서 테너 조종춘씨가 '아침 이슬'을 불렀고, 이영대 목사를 주축으로 구성된 '노래하는 세상' 팀이 안치환의 노래 '너를 사랑한 이유'를 연주했다. 특히 멤버 중에 키보드와 드럼을 연주하는 어린이들이 있어 이채를 띠었다.

시드니 노제의 마지막 순서는 창작 진혼무 '기억'이 장식했다. 노란 한복을 입은 무용가 한송이씨가 맨발로 등장해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억하는 듯 격렬한 춤사위를 보여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박병천 선생의 구음(口音) 시나위를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 살풀이 형식으로 구성한 추도 무용은 금방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끝내 다시 살아나는 노무현 정신을 강하게 암시했다.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창작 진혼무 '기억'을 추는 한송이 무용가
 창작 진혼무 '기억'을 추는 한송이 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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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식 3부는 승원홍 시드니한인회장의 인사말과 여러 한인 단체 대표들이 바치는 송사로 꾸며졌다. 주로 진보 성향의 한인 단체들이었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송사를 갈무리했다.

승원홍 회장은 "10만여 명의 한인동포들을 대표하여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추모한다"면서 "그분은 진심으로 존중받았던 지도자였고,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민주와 평등의 큰 교훈을 남기셨다"고 추모했다.

지성수 목사는 송사를 바치면서 "지금쯤 한 줌의 재로 돌아가셨을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니 절통하다"면서 "오늘은 막말 좀 하겠다"고 전제한 다음 한국의 기득권층인 일부 언론과 검참 등을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젊은 시절부터 대통령 시절까지 천덕꾸러기로 살았다. 사법연수원 시절에도 '어이 상고 출신 답변 좀 해보시오'라는 놀림을 받았고, 정치인이 돼서도 출신지역에서조차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면서 고인에 대한 연민의 정을 토로했다.

이어서 나온 황재성 평화연대 총무는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나야 한다"면서 "그의 유지를 받들어 민주 정의 평화의 깃발 아래 다시 뭉쳐야 한다"고 호소했다.

'호주교민포럼'의 제임스 강 대표는 "자꾸 눈물이 흐르지만, 솔직히 울고 싶지 않다. 상식은커녕, 모략과 중상이 난무하는 사회,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회,  미쳐버린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서 울먹였다.

마지막 송사를 바친 하성민 노사모 회원은 "42년 동안 살면서 노사모 한 것을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억울하고 비통하다"면서 "노무현을 죽인 자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일생을 걸 각오"라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에 추모의 글들 보내겠다"

추모음악으로 '너를 사랑한 이유'를 부른 노래하는 세상
 추모음악으로 '너를 사랑한 이유'를 부른 노래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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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한인회관에서 5일 동안 한인동포들의 조문을 받았던 분향소 운영과 29일 추도회는 '호주 한인연대'가 주관했다. '호주한인연대'는 길벗모임, 노사모 호주지부, 시드니 민족교육문화원, 시드니 사랑방, 평화연대, 호주건설노조, 호주교민 포럼 등이 연대한 조직이다.

호주건설노조(CFMEU) 고직만씨는 광고를 통해 "처음에는 지성수 목사 자택에 분향소를 차릴 예정이었는데, 시드니한인회의 양보로 한인회관에 분향소를 마련했다"면서 "약 500여 명이 조문하면서 추모의 글을 남겼는데, 나중에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이 생기면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전해진 이후 시드니한인회관, 원불교 시드니교당, 정법사, 시드니총영사관 등 네 곳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29일 오후 6시, 한인회관에서 '호주한인연대'가 주관하는 추도식이 열렸고, 오후 8시에는 원불교 시드니교당에서 추도법회가 열렸다.

그러나 시드니총영사관에 마련된 분향소가 무성의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곳에서 조문을 한 이모씨 부부는 "조문을 하고 나오면서, 노 대통령께서 돌아가신 다음에도 홀대를 받으신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미어졌다"면서 "특히 총영사관에 차려진 분향소에는 시드니 주재 각국 외교관들이 조문을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원불교 시드니 교당의 추도식장
 원불교 시드니 교당의 추도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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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추도식과 시드니 노제는 2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힘없고, 가난하고, 설움 많은 사람들의 편에서 고생만 잔뜩 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29일 밤, 시드니에는 비가 내렸고 어둠 또한 유난히 깊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동포들이 귀가하는 시간, 한인동포 출신인 권기범 스트라스필드 시장은 다시 한 번 묵념을 올린 다음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펼침막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가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이 오래 귓전을 맴돌았다.

"오늘 우리가 고 노무현 대통령께 다짐한 마음들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빈다. 그분의 유지를 되새기면서 역사의 진보를 이룩해야 한다. 그게 그 분이 유서에 담지 않은 간절한 소망일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쉽게 잊으면 안 된다."


태그:#호주 , #노무현, #시드니, #바보 노무현,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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