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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닷새째인 27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 찾은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한명숙 전 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닷새째인 27일 오전 분향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 찾은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한명숙 전 총리의 손을 잡은 채 흐느끼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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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봉하마을, 끝없이 이어지는 시민들의 참배가 특별한 이의 등장으로 잠시 멈춰진다. 27일 저녁 8시경, 감옥에서 임시 출소한 '노무현의 오른팔'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전직 대통령의 영정 앞에 큰 절을 올린다. 그의 흐느낌은 계속되고 일어날 기색이 없다. '노무현의 왼팔'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이 의원을 일으켜 세운다.

잠든 노무현의 위안, 한명숙 장례위원장

노무현이 남긴 남자들, '우'광재와 '좌'희정.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언급한 "나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은 너무 많은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두 386참모다. 영정만으로 남은 지도자 앞에서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두 40대 남자는 노무현 정부 인사들로 구성된 상주들을 향한다.

자신이 지도자로 모셨고, 대통령으로까지 만들었던 이의 자살 소식을 감옥 안에서 들어야했던 핵심참모는 얼마나 놀라고 슬펐을까? 이광재 의원은 상주대표로 나와 있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껴안고 흐느낀다. 노 전 대통령 장례식의 공동장례위원장인 한 총리도 울음을 터트린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수십 명의 카메라기자가 터트리는 플래시 소리에도, 분향을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이 다 들을 정도로 컸다.

그곳으로부터 20여 미터 떨어져 있는 마을회관 빈소에 잠들어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장면을 하늘나라에서 봤다면? 만감이 교차하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아마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한명숙 총리가 있어서 내가 걱정이 덜 된다'. 노무현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한 남자들을 가슴에 품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어머니 같은 부드러운 여성 한명숙이 있었기에 봉하를 찾은 상처받은 친노인사들은 다소간의 위안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만약 봉하에 한명숙 전 총리가 없었다면? 공식적으로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정부와 함께 공동으로 국민장을 치르기로 한 봉하의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영결식, 노제 준비 등에서 정부가 제대로 협조를 안 해준다는 것이다. 한 장례위원이 말했다. "그나마 한명숙 전 총리가 장례위원장이어서 그렇지 다른 사람이 맡았으면 진작 정부와 한판 붙었을 것이다."

한명숙(韓明淑, 1944년 평양 출생). 참여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국무총리(2006.3~2007.3)에 임명됐던 그는 이번 국민장의 공동장례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다. 사실 생전의 대통령 노무현은 정치인 한명숙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대통령 노무현은 2007년 9월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내 마음 같으면 한명숙씨를 다음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왜 승부사 노무현은 한명숙을 부러워하고 후계자로까지 주목했을까?  

비보도 전제 "내 마음대로 차기 지명하라면 한명숙"

 25일 저녁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위원회 장례위원장을 맡은 한명숙 전 총리가 장례 절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25일 저녁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위원회 장례위원장을 맡은 한명숙 전 총리가 장례 절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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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노무현을 위해 청와대에서 3일간 인터뷰를 한 것은 2007년 9,10월이었다. 당시는 그해 말에 있을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예비후보들이 경선을 준비하거나 참여하고 있을 때였다. 민주당은 친노진영에서는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씨 등이 예비후보로 거론됐고, 비노진영에서는 정동영, 손학규씨가 나서고 있었다. 또 민주당 밖 진보개혁진영에서는 문국현씨가 대선참여를 선언한 상태였다.

나는 기자로서 퇴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가 이끄는 여권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던 선거판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기회가 왔다. 대통령과 우리 취재팀은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청와대 뒷산의 대통령 전용 데크에서 차 한잔을 하고 있었다. 민감한 이야기를 민감하지 않게 나눌 수 있는 시간과 장소였다.

우선 이렇게 여쭤봤다.

-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 예비후보들을 보면 민주당 후보들이 다들 약합니다. 사전에 좀 더 치밀하게 후계자 준비를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나요?
"후계자는, 그 이상은 내가 어쩔 수가 없어요. 그 이상은 어쩔 수가 없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한명숙씨 이야기 등을 하면서 "충분히 기회를 줬다"고 했다. 장관과 총리에 임명하면서 국민들에게 가능성을 어필할 시간을 줬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2002 대선 과정에서 스스로 여권후보를 '쟁취'했음을 상기시켰다.

"김대중 대통령 말기에 악재가 그렇게 많았어도 내가 대통령이 됐잖아요. 후보는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항상 하신 말씀이 '후계자는 자기가 하는 거지 내가 어떻게 짚어주냐?'였는데 그 말이 맞아요."

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그의 지지도가 높지 않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대선은 현 정권에 대한 총체적 심판의 장이 아닌가? 현직 대통령 노무현은 그가 여당의 차기후보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음을 미안해하고 있었다.

"내가 다음 선거까지 책임질 수 있는 지지도를 유지 못한 것은 맞지마는, 다음 선거까지 우세하도록 지지도를 유지 못한 거는 맞지마는..."

- 근데 이른바 친노진영의 후보감을 보면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씨 정도인데요, 민주당 경선에서 비노진영과 제대로 경쟁을 하려면 이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통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실 텐데....
"이거 나가는(보도되는) 거 아니오?"

대통령은 오프더레코드를 요구했다. 당시에 노 대통령이 친노 예비후보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는 너무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프더레코드를 받아들였지만, 그것의 유효기간을 정하진 않았다. 나는 혼자서 퇴임 후 적절한 시점까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가는 거 아니면 내가 말해 주지."
너무 뜻밖이어서 우리는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누가 되는지 모르지만, 나보고 마음대로 지명하라고 그러면 한명숙씨요."

- 아, 그래요? 
"예."

대통령은 "그러나"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왜 지금 한명숙이다, 이런 소리를 내가 안 하냐 하면, 이 선거 국면에서 민심을 움직이는 것은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내가 억지로 뭘 하려고 하다 오히려 판을 깨는 수가 있지요. (친노후보들) 그 사이에서는 별 차이 없으니까 (나는 그냥) 보고 있는 거죠."

"내가 부드러움이 부족하거든, 그것에서 신뢰가 나오는데"

 노무현 대통령과 인터뷰 중인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인터뷰 중인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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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왜 한명숙씨를 차기 후계자로 마음에 두고 있었을까? 그 이유가 참으로 뜻밖이었다.

"앞으로의 우리 정치는요, 이것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상대하고도 대화를 하는 쪽으로 가야 됩니다. 사회적 갈등 과정에서도 사람들하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근데 그 점에서 한명숙씨가 굉장히 탁월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 소신에 관해서는 강단이 있지만 사람이, 느낌이 부드러워요."

노대통령은 부드러움이 신뢰와 연결된다고 했다. 
"부드러우면 상대방한테 신뢰를 줘요. 이 사람하고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다 진심인 줄 알고 진지하게 대화를 해요. 나까지 나서 대화를 해도 도저히 안 풀리는 어떤 사안이 있어서 한명숙 총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이제 그만두십시오. 그거 되지도 않을 타협을 뭘 자꾸 하려고 그럽니까?' 그러면 한 총리가 '아, 그래도 조금 며칠만 나한테 맡겨놓아 주세요' 합니다. 그러면 내가 그 사안을 잊어먹고 있으면 보름 되고 한 달 되고 하는데, 어찌어찌 해 가지고 그 문제를 풀어서 가지고 와요."

의외였다, 승부사적 기질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오른 노무현은 "미래의 지도자는 좀 부드러웠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은.

"앞으로 우리 정치 풍토나 분위기 같은 것으로 봤을 때 좀 부드러운 지도자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정치인 노무현은 자신이 부족한 것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 점이 부족한 것이) 나는 항상 내 약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만 보면 이상하게 이 사람들(정적)이 저 사람이 나를 뭔가 해코지할 거라는 불신 아닌 불신감을 갖고 있거든. '또 저게 무슨 꼼수를 내나?' 저 사람들은 내가 꼼수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 나는. 꼼수를 안 부리는데도."

그는 자신이 정적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원인을 '직선으로 가는 노무현'에서 찾았다.
"내가 하도 직선으로 가니까. (상대편에선) 그럴 리가 없다 싶어서 (그렇게 대응하면) 자꾸만 당하고, 당하고 하니까."

그렇게 얻은 승리는 길게 보아 꼭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근데 그게 좋은 건 아니죠. 항상 자기를 코너로 몰아버리는 적수를 좋아하겠습니까? 자기들이 공격하면 한번 얻어맞기도 하고, 좀 살려 달라고 오기도 하고 해야 되는데, 한 번도 내가 지들한테 살려달라 소리 안 했거든."

청와대 뒷산의 하늘이 흐려지더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그만 내려갑시다"라며 일어섰다.

승부사 노무현은 왜 타협을 강조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노트북을 펴놓은 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컴퓨터에 '원칙이냐, 승리냐'라는 화두를 적어놓았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노트북을 펴놓은 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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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말까지 싸움을 벌인 대통령 노무현은 그렇게 "다음은 부드러운 정치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정치노선도 사실 알고 보면 '부드러운' 것이었다. 

보수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을 '좌파'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노 대통령의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는 관저에서 인터뷰할 때 참여정부의 기본 노선을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 정부가 성공을 했든 안 했든 간에, 기본적으로 우리 참여정부가 하려고 했던 것은 시장권력과 언론권력을 제어함으로써 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신장하려고 한 것입니다. 시장에서 최소한의 기본선 아래로 낙오하는 사람들을 함께 끌어안고 가는 것이 우리 정부의 역할이라고 분명히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런가 하면 진보진영에서는 노 대통령이 해나가는 것을 보고 성에 차지 않아했다. 노 대통령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진보진영에서는 '왜 빨리 하지 않냐, 확 엎어버려야지' 이런 식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시장의 저항이 일어나죠. 시장의 원리 자체에서 시장이 위축되거나 시장에 심각한 저항이 일어나면 전체적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파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 '속도 싸움'이 중요합니다."

노 대통령은 일부 진보학자를 거론하면서 "투쟁사관만으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역사라는 것이 투쟁으로 발달한다는 투쟁사관만 가지고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지요. 오늘날 어느 정도 앞서 가고 있는 나라는 투쟁의 역사만으로 성공한 게 아니지요. 투쟁과 절제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투쟁에다 그 사회 지배세력의 관용과 절제가 적절하게 배합되어야 합니다. 두 개는 같이 가야죠. 투쟁 없는 역사도 없지만, 그러나 관용과 배려가 없는 역사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노 대통령은 "그래서 투쟁과 타협은 적절하게 배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링컨이 성공한 대통령이 된 것은... 죽어버렸거든"

그러나 그게 어찌 쉬운 일인가? 진보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보수와 적절히 타협해 일을 제대로 실현해나간다는 것은. 그것이 제대로 이뤄질 때 국민통합은 가능할 것이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대통령은 성공하는 국가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 노무현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했던, 그래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은 링컨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01년 11월 펴낸 <노무현이 만난 링컨>(학고재)에서 그는 링컨을 "낮은 사람이, 겸손한 권력으로, 강한 나라를 만든 전형을 창출한" 대통령으로 적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링컨의 성공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링컨이 성공한 대통령이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요. 첫째는 국가적 통합을 이뤄냈지요. 전쟁까지 감수하는 단호함을 보이면서도 결국 국가적 통합을 이루어냈습니다. 두 번째는 노예해방을 이뤄내 그것이 이후에 보편적인 가치로 계속 자리 잡게 되면서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요. 세 번째로는, 그분의 인간성이 정직하고 소박해서 그것이 지금까지 칭송되고 있는 거지요."

노 대통령은 덧붙였다.
"그 다음에 또 하나 성공 요인은....."

대통령 노무현이 링컨의 성공요인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은, 솔직히 말해 당시 인터뷰에서는 반쯤은 농담처럼 받아들였다.

노무현이 만난 링컨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1년 펴낸 '노무현이 만난 링컨' (스캔본)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1년 펴낸 '노무현이 만난 링컨'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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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성공 요인은 죽어버렸다는 거죠."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를 비롯한 <오마이뉴스> 취재팀과 배석한 비서들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죽어 버렸거든. 골치 아픈 거 해결해야 될 때는 죽어버렸거든. 전쟁으로 한쪽을 패배시키는 것은 쉽지만, 패배한 상대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거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을 때 죽어버렸거든."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승리(1865년 4월 9일)한지 닷새만에 포드극장에서 남부 출신 배우의 총에 맞아 숨졌다. 링컨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암살당한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자살한 대통령이다.

27일 저녁, 두 번째로 찾은 봉하마을.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에 술 한잔을 올리면서 그날 그 인터뷰를 떠올렸다. 링컨의 죽음을 말씀하며 환하게 웃던, 그래서 우리의 웃음까지 자아내게 했던 대통령을 생각했다.

봉하마을 만장 "또 하나의 바보 노무현을 만날 때까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지도자도 죽는다.

링컨은 패배한 상대를 끌어안는 일을 하다 타살돼 역사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불리고 있다. 노무현은 패배한 상대를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승자의 검찰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밤 9시, 나는 봉하마을을 떠나고 있는데 조문객들은 여전히 몰려들고 있었다. 분향소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까지 2차로를 꽉메운 사람들, 두세 시간 기다려도, 밤을 새워도 좋다고 온 사람들. 그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인도한 그 힘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그들이 분향차례를 기다리고 서 있는 봉하마을로 가는 길 양쪽에는 5백여 개의 만장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부산의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밤샘해서 만들어왔다는 그 만장 중에는 이렇게 적힌 것도 있었다.

'또 하나의 바보 노무현을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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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