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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에서 받드는 신의 종류에는 천신(天神), 지신(地神), 인신(人神), 잡신(雜神)이 있다. 이 중에 인신(人神)은, 영웅적인 생애를 살았으나 억울하거나 비참하게 최후를 마친 장수가 신으로 추앙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최영 장군이다. 아다시피 최영 장군은 역사적 인물이다. 그런 그가 신령이 된 것이다.

최영 장군 무신도 왼쪽은 국사당 소장(Copyrigh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오른쪽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최영 장군 무신도 왼쪽은 국사당 소장(Copyrigh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오른쪽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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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과 유사한 인물이라면 이순신 장군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신령으로 모시지 않는다. 왜 그럴까? (충남의 일부 지방에서 발견된 무신도는 이순신 장군도 한 때 신령으로 모신 흔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현재는 소멸된 상태다. 그에 비해 최영 장군 신격화는 현재도 일반적인 현상이며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최영 장군의 가장 큰 공로 가운데 하나가 왜구를 물리친 일인데, 그 점에서는 후대의 이순신 장군에 못미친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은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고 물자 조달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활약했고 전술 또한 신기에 가까웠다. 장수로서의 업적과 명예를 따지자면 분명 최영 장군이 한 수 아래다.

여러분은 최영 장군 일대기가 TV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됐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가? 한번 상상해 보라. 비교적 안정된 기반에서 전투마다 승리하는 장수의 얘기를. 보나마나 시청율은 3% 미만이 될 것이다.

이에 비해, 간신의 모함을 받은 후에 백의종군하다가 다시 3도 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활약하는 이순신 장군의 삶은 상당히 극적이다. 갖은 고초를 극복하고 승전을 이끌어 낸 순간 죽음을 맞는 것은 더 극적이다. 최영 장군은 왕조를 지키기 위해 이성계에 맞서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요새말로 하자면 "개고생" 다 하고 나서 영화도 누리지 못하고 죽었으니,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이런 점들을 보면 신격화 시키기에는 이순신 장군이 더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인간으로 남아 있다. 민중은 최영 장군을 인간이 아닌 신으로 받들게 되었으며 무당은 결국 그 신을 자신들이 모시는 신의 목록에 올려놓았다. 둘 사이에는 과연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이순신 장군은 사후에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뿐만 아니라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사후 2백여 년 후인 정조 17년(1793)에는 영의정으로 추서된다. 생전에 못받은 명예와 영광을 사후에 보상받은 것이다. 이에 반해 최영 장군은 '역적'으로 죽었고 그 후로도 복권되지 못했다. 둘 다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죽은 영혼의 처지에서 보면 이순신 장군은 만족스러운 반면 최영 장군은 원통하고 애통할 뿐이다.

아마도 맨 처음에는 그러한 최영 장군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李)씨 왕조 하에서 공식적으로 최영 장군의 넋을 달랜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을테고. 그러던 민중은 최영 장군에게 자신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겪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영 장군은 귀신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해 줄 것이고, 자신의 원통한 사연을 다른 어떤 신보다도 잘 이해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후. 임시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인근에서 추모객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 간이분향소(?)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한 임시 분향소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누군가 돌담길에 이런 분향소를 마련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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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덕수궁 앞에서는 또 하나의 신이 탄생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덕수궁 앞의 분향객 행렬은 덕수궁 담을 돌고도 모자라 시청앞 지하철역 안마저 몇겹으로 둘러싸며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흰 국화꽃 한송이, 담배 한 대를 영정 앞에 놓기 위해 몇시간을 기다리면서, 이 정권과 검찰에 의해 죄인으로 낙인 찍히고 죽은 노무현에게, 원통해 하며 죽었을 노무현에게 그들은 자신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퇴임 후 고향에 내려가 평범하게 살고 있던 한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그는 신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민중의 원망과 분노와 애절함을 담은 신으로 말이다. 그 신은 그들의 멍울진 가슴이 풀어질 때까지 촛불과 투표로 살아날 것이다. 이 뿐만이랴. 한 쪽 정치가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그의 무덤을 찾을 것이며 유세 때는 표를 모으기 위해 잠든 그를 불러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쪽 정치가들 역시 저주가 두려워 그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할 것이다.

이래저래 노무현은 살아 생전보다 더 바쁠 것 같다. 바쁠 때 바빠지더라도 그 전까지는 좀 쉬세요, 그동안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노무현 신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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