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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내가 너를 다시 볼 때는

고통도 망각도 없을 것이다.

 

알프레도 레 베라가 작사를 하고, 아르헨티나 탱고의 황제인 까를로스 가르텔이 작곡한 <나의 사랑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노랫말 중 일부이다.

 

왜 사람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고통도 망각도 없는 도시라 했을까? 아르헨티나 엘 살바도르대학에서 한국문화사 교수 역임했던 고부안씨는 <부에노스아이레스-남미의 파리>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포용적인 도시이다. 말 한 마디 못하는 사람들까지 다 포용한다. 수많은 이민자들이 말 한 마디 배우지 못한 채 아르헨티나 왔지만 세월과 더불어 집을 짓고 풍족한 가정을 이루게 한, 어머니의 품 같은 여유와 따뜻함이 있는 도시이다."(7쪽)

 

고향과 나라 떠난 '사람'들이 사는 도시

 

이민자들에 어머니 품 같은 여유와 따뜻함이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580년 정복자 환 데 가라이가 두 번째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를 건립하게 되면서 이민자를 받아들인다. 온 세상에서 온 그들이었기에 문화와 언어, 생각과 철학이 달라도 위로하며, 사랑하였기에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직도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는 병원에서 한 두시간 기다려 겨우 1분 이내로 진료받는 상업적인 모습이 없으며, 아이가 열이 펄펄 끓는다고 무조건 해열를 놓아주지 않고, 미지근한 물에 아이를 앉혀놓고 열을 식히라고 처방하고, 수십 년 전에 무료급식을 했다니 어찌 '사람'을 생각하는 나라(도시)가 아닌가.

 

'땅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땅고'(탱고의 스페인 발음)다. 땅고는 "춤추는 슬픈 감정"이라는 표현처럼 1860년 무렵 부에노스아이레스 하층인민(이민자)들이 고향을 떠난 이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만든 절망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춤이었다. 특히 땅고는 이민자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 사창가와 술집에서 많이 추었다고 한다.

 

"땅고에 담긴 아픔과 슬픔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온, 돈을 벌겠다고 홀로 이민을 온 사람들의 절망감과 외로움에 깊은 연관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창녀에게서 모든 감정을 다 해소할 수는 없지 않았겠는가. 말하자면 다 채울 수 없는 사랑, 즉 충체적인 사람에 대한 향수가 땅고에 담기게 된 것이다."(24쪽)

 

사람사는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시는 사람 사는 곳이다. 하지만 어느 누가 살았는지 따져 물으면 달라진다. 20세기 혁명가 '체 게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의과대학을 나와 의사된 곳이다. 또 훌륭한 선동가인 도밍고 페론, 성녀 '에비타'를 빼놓을 수 없다. 에비타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나는 이 큰 도시의 모든 마을을 걸어봤다. 그때부터 나는 내 조국의 땅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의 모든 생각을 다 꿰뚫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하얀 손수건의 어머니들인 '오월 어머니회'다 이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당한 수많은 아들과 딸들의 어머니와 함께 민주주의를 상징하고 있다.

 

이민자들이 세워 사람 냄새나고, 사람사는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생기가 있고, 가슴을 뛰게하고, 다양한 인종들이 사람사는 빛깔이 있는 도시이기에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미의 파리> 고부안 지음 ㅣ 살림 펴냄 ㅣ3,300원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미의 파리

고부안 지음, 살림(2004)


태그:#부에노스아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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