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방에 살아 서울 나들이는 가뭄에 콩 나듯 하는 편이다. 그런 까닭에 나잇살 오십을 가렸어도 언제나 서울거리는 설레고 낯설다. 서울엔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빌딩도 많다. 그런데 또 하나 더 있다. 전경버스도 많다. 정부청사를 비롯한 주요 건물은 물론, 유명세를 갖춘 시내 건물에는 으레 전경버스와 중무장한 전경들이 시골뜨기를 마중했다.

 

주말이면 인근 창원시내에 자주 간다. 간단한 생활용품도 사고, 사람 북적대는 도시의 활기를 느껴보기 위함이다. 그 중에서도 창원시청광장을 첫 번째로 들른다. 동심원으로 시원하게 뚫린 시청광장은 연중무휴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요즘 같이 파릇한 초록융단으로 깔려 따로 깔개를 마련한 필요가 없다. 어디든 막무가내로 싸잡아 앉아도 좋은 자리다. 그래서 그런지 창원시민이라면 시청광장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시청광장은 시민들의 대화 소통 공간이다(원래 창원이 호주 캔버라를 본뜬 계획도시라서 그렇지 도심 공간에 그만한 광장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몇 번 가 본 서울시청 앞 광장은 창원시청 광장과는 사뭇 달랐다. 정말 다른 분위기였다. 갈 때마다 가히 근접이 어려울 정도로 전경버스와 정경들로 빽빽이 에워싸여 있었다. 시청광장은 국가의 소유가 아니다. 더더구나 개인 소유지도 아니다. 어느 도시이건 시청 광장은 시민의 것이다. 그러니 서울시청 광장은 당연히 서울시민들이 언제든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한데도 유독 서울시청 광장은 대중통제가 가능하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정권에 불온함을 보이면 발끝 하나 들여놓지 못한다.

 

시청광장은 시민들의 대화 소통 공간이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를 기점으로 한 촛불집회가 그곳에서 열렸다. 하지만 탄핵 정국을 몰았던 주범들은 유독 촛불집회를 겁냈다. 조그만 촛불 하나가 뭐 그렇게 두려웠던 것일까. 무엇보다 뒤가 구린 그들은 그저 서울시청 광장을 비롯하여 청계천, 광화문에 이르기까지 전경버스로 성을 쌓기에 급급했다. 일러 명박산성이다. 용산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시청광장은 함부로, 거저 내놓기에 두려운 민의의 분출구다. 그러나 들불처럼 거센 열기로 들끓는 민중의 울분은 아무리 철옹성을 쌓는다 해도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다.

 

전국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열기로 뜨겁다. 텁텁한 인상으로 서민들과 가깝게 지냈던 대통령, 농투성이의 답답한 토로를 귀담아 들어 주었던 대통령, 그냥 논두렁 밭머리에 퍼질러 앉아 막걸리를 건네던 대통령, 우리 언제 그러한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는가. 그러나 그는 골통 수구 보수집단과 졸부 기득권층과 타협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던 대통령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나쁜 정적들의 표적이 되어야 했다. 급기야 그들에 의해 '타살'되었다는 죽음에 이르렀다. 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아직도 서울광장은 막혀있다. 국민장을 치르기로 한 정부당국이 만약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 취한 특단의 조처라고 한다. 마루 밑의 개도 웃겠다. 정말이지 저들은 우리 국민들의 수준을 아주 저급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니면 분명 무슨 꿍꿍이속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국민이 두려운 존재라면 애초부터 국민이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지. 뒤가 구린 사람은 언제나 조그만 사단에도 민감한 법이다. 아무러면 서울광장을 열어 놓는다고 해서 고인을 조문하는 자리에서 삿대질을 일삼겠는가.

 

아직도 서울광장은 막혀있다

 

지금 봉하마을에는 30여 만 명이 조문을 다녀갔단다. 뿐만 아니다. 전국에 걸쳐 수십만의 국민들이 폭압에 의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 집권층과 부수 기득권층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만큼 국민 대중의 성원과 찬사, 간절함을 받는 인물이었는지를. 분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뜨거운 신임을 받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이 나라 대통령이다.

 

왜 국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현 집권층에 대한 불신과 외면이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한다면서 너무나 인간적으로 야멸치게 내몰았다는 울분의 토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국민들은 안다. 그렇게 믿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신망이 무너지는 순간, 당신도 똑같은 대통령이라고 손짓을 했지만 그래도 그는 달랐다. 그에게는 분명 서민적인 토장국 냄새가 났다.

 

한껏 까발리고 들춰내고 부풀리기를 계속했지만 그는 결코 그것에 함몰되지 않았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토끼몰이식 수사에 자존심마저 접을 수는 없었던 거다. 물론 쉽게 타협했더라면 그도 여는 대통령처럼 비굴한 삶을 연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수구 꼴통보수세력과 기득권층은 그들에 턱없이 못 미치는 비주류가 대통령 노릇하는 것을 참아보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아냥댔다. 빈농의 아들, 고졸, 지방 촌구석 출신, 인권변호사, 호남당의 경상도 정치인등  어느 것 하나 주류가 곱게 봐줄 이력을 지닌 구석이 없다. 그런 그를 두고 일부 보수언론들은 '노무현식'이라고 재단하는 데 혈안이 되고 있지만, 아니다. 그는 도덕적 흠집을 보였을망정 결코 자존심을 팽개친 걸레 같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삶을 원하지 않았다.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희생의 길을 걸었다/ 희생할줄 아는 사람만이 위대할 수 있다/ 눈물을 모르는 눈으로는 진리를 보지 못하며/ 아픔을 겪지 아니한 마음으로는 사랑을 모르리라/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글귀가 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코 위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이지 농투성이의 아들로 태어나 이 나라 전체 국민들이 겪었던 일을 몸소 겪으며 '인간 노무현'을 성취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자기를 희생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아니면 아니다'는 포효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대한민국 기득권층에 반목했던 그는 바보였다. 그게 위대한 인간 노무현의 표상이었다.   

 

왜 국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을까

 

왜 정치인들이 봉하마을에서 지탄과 야유를 받을까. 계란세례 물세례를 받는 정치인은 또 무언가. 왜 평생을 흙투성이로 산 사람들이 울분을 토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라. 그들은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평소에는 데면데면하게 생각했어도 바보 노무현을 비열한 정치모리배들에게 잃었다는 상실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아무리 권모술수의 협잡술이 능사로 통하는 정치현실이라지만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떨칠 수 있는 바보 노무현을 다시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에 목을 놓고 있다. 

 

그래도 서울광장은 열지 않을 방침이라는 뉴스를 방금 들었다. 참담하다. 시청광장은 시민들의 대화 소통 공간이다. 근데도 저들에게는 마지막 가는 대통령을 애도하려는 국민 모두가 폭도로 보이는 요량이다. 생각이 짧으면 스스로 자충수를 두는 법이다. 차라리 봉하마을을 전경버스로 에워싸는 게 낫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와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무현 대통령, #조문, #서울시청, #노무현 서거, #서울광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