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마 참여정부 때 주택담보대출 제한 등 (부동산) 투기억제책을 쓰지 않았다면, 현 정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금융위기를 겪었을 거예요."

 

이준구 교수(서울대 경제학부)는 목소리는 그리 높지 않았다. 1시간이 넘도록 그의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졌다. 그럼에도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랄하고도, 직설적인 화법의 비판은 여전했다. 그동안 자신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써왔던 글처럼….

 

'경제학계의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이 교수가 누리꾼과 직접 마주 앉았다. 인터넷서점 알라딘 주최로 25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 시간이었다. 그가 지난달 내놓은 책 <쿠오바디스 한국경제>(푸른숲)는 서울시내 대형서점 등에서 이미 몇 주째 베스트셀러로 올라가 있다.

 

"누가 내 책을 읽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강연을 시작한 이 교수는 지난 1년 6개월여 동안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한 어조로 담담하게 펼쳐 보였다.

 

특히 현 정부의 핵심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종합부동산세개편을 둘러싼 논란, '녹색 뉴딜'로 불리는 각종 경기부양책에 대해선 '시대착오적', 근시안적', '위험한 도박' 등의 표현을 써 가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애초부터 잘못된 두 가지 공약 - 747과 한반도 대운하

 

우선, 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애초부터 잘못된 두가지 공약에 대한 집착 때문에 출범 초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두 가지 공약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747(7%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7위 경제대국) 공약'이다.

 

그는 이 두 가지 공약을 두고 "시대착오적이고, 비현실적인 공약"이라고 전제하고, "이 때문에 창조적이고, 건전한 경제 정책 수행이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경제가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에 들어가면, 5%대 성장도 그리 간단하지 않아요. 현 정부는 참여정부의 4~5% 성장을 초라한 것처럼 말하지만, 경제이론적으로 보더라도 (참여정부의) 5% 성장은 상당히 잘한 겁니다. 경제학에 '70의 법칙'이 있는데, 연 5% 성장하면, 14년이면 국민소득이 2배로 증가해요. 엄청난 성과죠."

 

이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무기는 경제살리기였고, 7% 성장이라는 장밋빛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면서 "하지만 이 약속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였고, 취임 초부터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무리한 경기부양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단적인 예로 그는 강만수 초대 경제팀의 고환율 정책을 꼽았다. 이어 불안한 물가를 잡기위해 내놓은 'MB 물가지수'를 두고는, 권위주의적,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라고 꼬집었다.

 

"현 정부는 참여정부의 강력한 투기억제책에 고마워해야"

 

이 교수는 "성장과 물가안정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경제정책은 시장의 신뢰 상실을 가져왔다"면서 "신뢰 상실은 다시 정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이는 다시 경제위기 관리 능력면에서도 국민적 신뢰를 받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라고 진단했다.

 

특히 이같은 신뢰의 위기 속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쳐왔고, 현 정부는 과거 외환위기때 처럼 초기에 낙관론으로 일관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국내 금융기관의 부실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정부의 안일한 인식을 지적했다. 이어진 이 교수의 말.

 

"현 정부는 그동안 참여정부의 정책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판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참여정부에 고마워해야 합니다. (참여정부) 말기에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주택담보) 대출을 강력하게 억제했는데요. 만약에 우리도 (주택) 대출을 미국처럼 했다면, 이번 위기가 터진 후 국내 금융기관들은 엄청난 부실을 떠안았을 겁니다."

 

최근 경상수지 흑자와 주식시장 상승 등으로 경기회복설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착시효과에 불과하다"고 그는 잘라 말했다. 세계 시장이 회복돼 수출이 늘어나 얻은 경상수지 흑자가 아니라, 국내 경기침체가 깊어지면서 수입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경상수지 흑자는 경기침체의 또 다른 산물"이라고 말했다.

 

시대착오적인 한반도 대운하의 탈을 바꿔쓴 녹색뉴딜

 

이 교수의 비판은 자연스레 정부의 무리한 경기부양책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녹색뉴딜의 핵심사업인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한반도 대운하사업을 연상케 한다"면서 "경기 부양을 빌미로 대운하의 꿈을 부활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밝힌 녹색뉴딜 사업이라는 말 자체가 서로 모순투성이"라며 "토목공사로서의 뉴딜은 환경파괴적일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친 환경적인 '녹색'과 어울릴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현 정부가 '뉴딜'이라는 용어를 제대로 알고 쓰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대공황시절,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은 현 정부가 싫어하는 각종 진보적 경제정책을 도입한 것이라는 이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동안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강도 높은 비판을 해온 이 교수는 "(4대강 사업이) 하루아침에 대운하 사업으로 변질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딨나"라며 "이 같은 국민적 우려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대운하는 안한다'라는 말을 하면 되지만, 아무도 이같은 말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토목사업으로 인한 경기 부양 효과는 한시적일 뿐"이라며 "좀 더 오래 가고, 질 좋은 고용기회를 만들기 위해 첨단기술이나, 교육, 사회복지 분야 등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슬픈 종부세와 위기의 한국경제

 

강연 막바지에 이 교수는 종합부동산세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보수층과 언론의 왜곡된 인식과 여론조작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세금과 깊은 연관이 있는 재정학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 교수는 작년 9월 '슬픈종부세'를 비롯해, 올초 '종부세 안녕'에 이르기까지 모두 4편의 세금 관련 글을 인터넷에 띄웠다. 그는 이들 글을 통해 "보수언론의 여론조작으로 인해 종부세에 대한 오해가 너무 많다"면서 정부의 세제개편이 과세 형평성과 거리가 먼, 특정 계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이날 강연에서도 이 교수는 "종부세는 부동산 투기억제 효과 이외에도 공평한 조세부담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면서 "하지만 정부의 과세기준과 세율 변경 등으로 인해 사실상 종부세는 무력화됐고, 집 부자를 위한 특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 정부는 종부세 무력화뿐 아니라 각종 투기억제 장치를 줄줄이 풀어 헤치고 있다"면서 "앞으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내에 부동산 투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현재의 경제위기 극복 방안에 대해, "나도 솔직히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 "풍랑이 거센 위험한 바다에선 제 시간에 맞춰 항구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보다 안전하게 배를 운항하는 것이 최고"라고 그는 말했다. 이는 경기회복을 너무 서두르면서, 무리하게 정책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외부 강연을 통해 현재 경제의 현실을 널리 알려달라'는 강연 참가자의 요청을 받은 이 교수는 "학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강의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외부) 강연은 교수 입장에선 외도하는 것 같아서 앞으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완곡하게 거절하기도 했다. 대신 자신의 홈페이지(http://jkl123.com/) 등을 통해 언제든지 사회와 소통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태그:#이준구, #한반도 대운하, #종부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