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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 읽는 한국사회, 'B급 좌파' 김규항의 <예수전>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글이 가장 아름다운 글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불온한' 'B급 좌파' 김규항. 그가 또다시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 위해 책 <예수전>을 내놓았다. 그는 주로 칼럼을 통해 이야기를 해왔었는데, 이 책은 그가 본격적인 단행본으로 집필한 최초의 책이다.

2005년부터 진행된 '예수전'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책에는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의 진정한 목소리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김규항의 고민과 답이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마르코복음을 인용하여 예수의 삶을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독자가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의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는 교리 속에 화석화된 예수를 되살려내고, 그로부터 오늘날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힘을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전> 출간을 맞아 지난 5월1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벼레별씨 카페에서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 있었다. 아기자기한 까페는 50여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고, 저녁 7시30분부터 2시간가량 계획됐던 만남은 예정시간을 훌쩍 넘긴 10시 반경까지 계속됐다. 작가와 독자의 만남은 독자의 질문에 작가가 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긴 만남의 모든 내용을 전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일부나마 중계한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소란스럽고 사나울 수 있다

 책 <예수전>의 표지. 이 책에는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의 진정한 목소리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김규항의 고민과 답이 담겨있다.
 책 <예수전>의 표지. 이 책에는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의 진정한 목소리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김규항의 고민과 답이 담겨있다.
ⓒ 돌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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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사꾼들의 상을 뒤엎은 예수의 과격한 행동에 관련하여 선생님의 비폭력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예수의 행적 중에선 상당히 과격한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상 좀 엎은 게 그렇게 큰일입니까? 우리는 보통 평화란 뭔가 조용하고 온순하고 차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은 사회적 불의와 모순을 덮는 나쁜 의도로 많이 사용된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세상 사이에 깨진 조화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때론 가장 소란스럽고 사나울 수 있습니다.

세상엔 사실 폭력주의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폭력을 사용하는 주요한 사람들도 공식적으로는 다 비폭력주의자이지요. 폭력을 미화하고 폭력이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렇게 폭력으로 돌아가고 불의할까요. 그래서 '폭력은 나쁘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비폭력주의라는 것은 오로지 폭력의 현장에서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의 미사일 공격에 자식이 찢겨 죽은 어미가 죽음보다 더한 슬픔을 뚫고 '우리는 똑같은 폭력의 보복을 해선 안된다'고 말할 때 누구도 그 말을 무시할 수 없지요.

그러나 1년 내내 뺨 한번 맞을 일 없는 사람, 1년 내내 파출소 한번 갈 일 없는 사람이 '저항으로서의 폭력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의 피해자들에겐 가해자의 폭력보다 끔찍한 폭력이 됩니다. 이건 폭력, 비폭력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염치의 문제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비폭력이란 것은 항상 이론, 논평, 구경으로서의 얘기였습니다. 비폭력주의를 얘기하려면 자신을 폭력의 현장에 위치시키고 자신을 폭력에 충분히 노출시킨 후에 그런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기억하고 존경하는 비폭력주의자들은 언제나 폭력의 현장에 있었고 바로 그 폭력에 의해 죽어갔습니다."

- 한국 기독교의 부패, 비리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청년들이 제게 고통스런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비판하는 것이 뭔가 외람된 것 같고 꺼려진다는.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것이 교회인가 교회가 아닌가를 먼저 물으라고  물어봅니다. 십자가를 달고 교회란 간판을 달았다고 해서 다 교회는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의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하지요. 교회는 진정한 교회이든지 아니면 더 나쁜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목사의 재정비리, 교회 세습 등 워낙 타락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없애면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준이 낮아져 있는 거지요. 그런데 사실 그건 좋은 교회를 만드는 게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최소한의 것입니다. 그것은 기본을 갖추는 일이지 진정한 교회를 만드는 일은 아닙니다.

예수가 살던 당시의 성전이란 현대의 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성전은 하느님이 살고 있는 곳이었지요. 그런데 예수는 그런 성전을 바라보며 벽돌 하나 남김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극단적인 폭언을 합니다. 저는 예수가 성전 앞에서 보인 이런 당당한 태도를 교회, 기독교 문제로 고뇌하는 사람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의 삶으로부터 얻는 진보의 희망에 대해 열강하고 있는 김규항.
 예수의 삶으로부터 얻는 진보의 희망에 대해 열강하고 있는 김규항.
ⓒ 이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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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시민운동, 개혁운동, 실현 가능 진보'는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세력

- 책에서 바리사이인 얘기를 하시면서 NGO, 시민운동, 개혁운동, 실현 가능 진보 등이 진정한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세력이라고 하셨는데요, 이에 대한 설명을 더 듣고 싶습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사회운동 주류가 민중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운동으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기존의 민중운동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민중운동을 배제한 것이기도 하지요. 노동자, 농민 기반 운동은 이제 옛날의 운동이 되어버렸습니다. 90년대 이후 진행된 개혁운동, 개혁정치들에 의해 배제된 것이지요. 거기에 대해서 보다 분명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보를 가로막는 것은 일상에서 가장 나쁜 세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 비판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세력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가장 나쁜 세력은 그 나쁨이 이미 충분히 드러나 있어 우리가 특별히 영향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가장 악한 세력과 갈등하거나 짐짓 적대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인민들에게 존경심과 설득력을 얻는,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위험하지요. 그래서 예수는 바리사이인들과 그렇게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을 쓰면서 'NGO, 개혁운동' 등의 표현을 빼야 하나 상당히 고심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순수하고 정의로운 활동가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고 해야 할 말이 더 많습니다."

예수로부터 구하는 진보의 희망

- 어떻게 예수의 삶으로부터 진보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 새로운 혁명론이 필요하다, 새로운 상상력과 틀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 사람들의 노력의 방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예수가 말하는 건 이미 새로운 세상의 씨앗이나 현상이 이미 우리 안에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말을 우리는 새롭고 어려운 것을 이룩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것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 꼴을 갖추고 사람과 사람 관계를 회복하는 것, 이러한 것이 중요한 혁명의 씨앗입니다.

결국은 우리 내면의 문제입니다. 이 사회의 반영, 거울인 이것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가 문제이지요. 하지만 사람의 내면은 계량할 수 없고 측정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불가능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가능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보수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지요. 신자유주의, 이명박을 비판하면서 내 안에 있는 것들도 계속 들여다봐야 합니다. 내면에서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는 것들을 자기 자신은 들여다 볼 수 있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좀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혁명이라는 것은 결국 종교적인 차원의 것입니다. 가장 급진적으로 싸우면서도 늘 기도하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혁명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마음의 결과가 반영되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형태가 될 때 세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제주도의 해녀할머니들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평생 해녀 물질로만 살아 온 여든 된 해녀할머니에게 물었지요.

"스킨 스쿠버 장비를 사용하면 더 많은 수확을 하실 텐데요?"
"그걸로 하면 한 사람이 100명 하는 일을 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안 하세요?"
"그렇게 하면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살라고?"

이 할머니가 제주도 해녀 좌파 연합의 회장은 아닙니다.(웃음) 그런 정서가 수천년 동안 정직하게 일하면서 먹고 사는 보통 사람들의 지배적인 정서였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지요. 지금은 그 사람들의 정서가 오히려 특별하고 신기하게 여겨집니다. 이러한 게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남보다 많이 갖는 것이 인간의 욕망일 수 있지만 더 가진 게 뭔가 불편하고 더디 가더라도 같이 가는 것, 결국은 자기 안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사회가 변해야 한다, 내면이 변해야 한다' 이분법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예수에게는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였지요. 예수한테는 기도하는 것과 싸우는 것이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우리가 이미 잉태하고 있는 혁명의 씨앗들이 있습니다.

예수의 표현대로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초대했고 우리는 그 초대에 응하면 됩니다. 물론 떵떵거리고 배불리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 받고 눈물짓고 소외받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초대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로부터 현재 공황 상태에 이른 혁명, 다음 세상, 진보에 대한 상상력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의 삶으로부터 구하는 진보의 희망 이야기를 끝으로 작가와 독자의 만남은 마무리 되었다. 이 외에도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 작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 많은 말들이 오갔다.

김규항은 그가 기존에 가진 모든 종교적 지식과 선입견을 걷어내고 진지하고 순정한 묵상을 통해 예수의 삶을 해석하려 했으며, 그러한 예수의 삶이 복음 즉 '기쁜 소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가 묵상한 예수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려 한다. 그는 이 책이 수많은 '나의 예수전'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수많은 '나의 예수전'은 결국 나와 세계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동력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삶으로부터 얻는 진보의 희망, 김규항은 우리 안에 숨겨진 새로운 세상의 씨앗을 건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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