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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방바닥 여기 저기 나뒹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들을 다그친다. "제발 책꽂이에 책 좀 꽂아"라고.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왜 책을 책꽂이에 꽂아야 해요" 한다. "책이니까 책꽂이에 꽂는 것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또 "그럼 옛날에도 책을 책꽂이에 꽂았어요" 묻는다. 되풀이되는 다툼을 하다가 '그래 책을 언제부터 책꽂이에 꽂았을까?'라고 생각한 본 적이 있다.

 

책이 네모이니 책꽂이도 네모이다. 물론 네모 책이라고 네모 책꽂이에 책을 다 꽂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눕혀 두기도 하며, 어떤 이는 책꽂이를 아예 거부하고, 방바닥에서 천장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아둔다.

 

이런 거부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네모 책과 네모 책꽂이에 익숙하다. 그렇다면 네모 책이 나오기 전 책이 두루마리일 때 책꽂이 모습은 어떤 모양이었고, 네모 책꽂이가 나올 때까지 앞서 살았던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보관했을까? 궁금증이 더해졌다. 이때 손에 잡힌 책이 헨리 페트로스키가 쓴 <서가에 꽂힌 책>이다.

 

페트로스키는 "책꽂이가 있는 곳에 책이 있다"는 말처럼 고대 두루마리 책은 '캅사'라는 상자와 낮은 선반에 눕혔고, '코덱스'-파피루스와 양피지를 접어서 꿰메어 철함-는 탁자에 보관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네모 책꽂이에 책을 꽂기까지 책 보관 방법은 수천년에 걸쳐 서서히 진화된 것임을 밝혀낸다.

 

한 집에 열 권만 있어도 부자였던 중세 시대, 책이 귀했고, 정직도 귀했던 중세에는 책을 군인들이 침대 밑에 두는 트렁크 비슷하게 생긴 장이나 궤에 넣고 잠궈두기도 했다. 열쇠 세 개를 수도사들에게 나눠주어 세 사람이 공모하지 않으면 궤를 열 수 없게 했다.  이런 사실은 움베르트 에코가 지은 <장미의 이름>에서 중세 수도사들이 책을 보관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책을 사슬에 묶어 버리기도했다.

 

"중세 독서대에 책을 묶어 놓은 강력한 쇠사슬은 책을 펼치고 읽는 데 방해가 안 될 만큼의 여유 길이만 제공한다. 책은 읽지 않을 때는 마치 진열을 해 놓은 것처럼 표지를 위로 한 채 덮여 있다. 막대는 독서대 위나 아래에 있는데, 그에 따라 사슬은 책 표지의 위쪽에 붙기도 하고 아래쪽에 붙기도 한다. 사슬은 책 표지 가장자리, 즉 죔쇠 근처에 부착되기도 했다. 사람이 많이 들낙거리는 도서관에서는 곧 쇠막대로 대체했을 것이다."(104쪽)

 

쇠사슬에 묶고, 선반 위에 두었던 책을 사람들은 책을 세워서 꽂아두는 방법을 택했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책꽂이가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인쇄술을 탄생시켰다. 인쇄술은 엄청난 책들을 쏟아냈다. 책이 쇠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아니 이제는 책을 사슬로 묶어 잊어버리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밀려드는 책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문제였다. 쏟아져 나오는 책은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집에 서재를 만들었고, 책꽂이를 만드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16세기 영국에서 가장 큰 서재를 갖춘 일기 작가 새뮤얼 피프스가 남긴 글이다.

 

"최근에 귀중한 책들을 아주 많이 샀다. 그러나 다음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더 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두 개의 책장은 꽉 찰 것이기 때문에, 몇 권은 남을 주어 버려야 한다. 내 서재의 책장들을 채울 정도의 책만 가지고, 그 이상을 내지 않는 것이 나의 계획이기 때문이다."(190쪽)

 

새뮤얼 피프스 이후에도 수많은 장서가들처럼 더 많은 책장을 구입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벽을 빌려 책을 보관하는 책장을 만들었고, 그 모습은 아직까지 사람이 후손들에게 지식과 사상을 물려주는 가장 위대한 방법인 책을 꽂는 책꽂이를 통하여 책을 보관하고 있다. 

 

책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귀중품 보관하듯 쇠사슬에 묶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책을 보관하기 위해 책을 지하 서고로 내려 보내고, 바퀴 달린 책장을 만들었고, 옆으로 밀 수 있는 책장들 천장에 매달기도 했다.

 

과연 책은 없어질까? 전자책이 나오면서 종이책 생명은 끝났다고 많은 이들이 말했지만 아직 전자책이 종이책을 앞섰다는 어떤 정보도 없다. 종이책이 살아있는 한 책꽂이는 책과 동반자로서 함께 할 것이다.

 

집안의 책꽂이는 가상이 아니다. 집안의 책꽂이는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채워진다. 물론 책꽂이를 비우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는 종종 그런 일이 벌어진다. 사실 저녁에 친구들과 함께모여 책꽂이에서 계속 책을 꺼내가며 좋아하는 구절을 찾기도 하고, 잘 기억나지 않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엉터리 기억을 놀리기도 하던 것이 나의 가장 따듯한 추억들 가운데 하나다.(348 쪽)

 

참 우리 선조들은 책을 어떻게 보관했을까? 사극을 보면 어렴풋이 떠오를 것이다. 세로로 꽂아두지 않고, 눕혀 보관했다. 눕혀 보관하는 방법이 책을 찾거나, 꺼내는 데 불편할지는 몰라도 시대를 거스르는 방법으로 무조건 세워 보관하는 방법보다는 눕혀 두는 것도 책과 동무하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책과 동무하고 싶은 이들이 있는한 책꽂이도 함께 하리라.

덧붙이는 글 | <서가에 꽂힌 책> ㅣ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ㅣ 정영목 옮김 ㅣ 지호 펴냄 ㅣ 15,000원


서가에 꽂힌 책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정영목 옮김, 지호(2001)


태그:#책, #책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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