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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6월 29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인 서울시청 앞 광장을 경찰이 원천봉쇄하자 촛불을 든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수천 명의 시민과 함께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우리는 총체적인 공황상태를 맞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가치뿐 아니라, 남북관계와 서민경제 등 국가와 개인 차원의 모든 삶의 문제들에 있어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개혁과 진보의 가치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행태는 '악마적 파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이명박 시대의 퇴행적 광풍 속에서 소중한 정치인 한 명이 소리 소문 없이 희생될 처지에 놓여 있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다. 극우적 광기를 보이는 권력과 정치에 종속되기를 자처하는 사법부의 진보세력 죽이기 차원에서 말이다.

 

노 대표가 지난 2005년 '삼성 X파일 의혹사건'의 진상을 요구하며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것과 관련한 법원의 항소심(2심) 1차 공판이 15일 열렸다. 정치인 노회찬 개인뿐 아니라 진보세력의 사활이 걸린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대법원은 법리 적용의 적부만 따지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건의 사실 관계와 사회적 공익 및 법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처벌 여부를 최종적으로 가리는 항소심은 재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최근의 혼란스런 상황 속에 묻혀 지나갔지만, 노 대표에 대한 항소심 재판의 개시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노 대표 처벌하는 '삼성 X파일'은 본말이 전도된 사건

 

 'X-파일` 녹취록 내용중 삼성으로부터 소위 `떡값`을 받았던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18일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질의하고 있다.

노 대표와 관련한 사건은 간단하다. 2005년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었던 노 대표는 전국을 뒤흔들었던 삼성그룹의 정경유착과 검찰 로비의혹이 담긴 '삼성 X파일'에 거론된 검사 명단을 공개해 진실을 밝히는 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진상조사 대신 거꾸로 그를 통신비밀보호법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해버렸다.

 

공익과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국회의원으로서 행한 정당한 의정활동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였다. 사건에 대한 처리는 출발부터 이상했고 엉뚱한 데로 빠져버렸다. 삼성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과 재벌, 검찰과 언론의 4각 구도로 짜인 권력층의 총체적 부패 고리를 보여준 '삼성 X파일'은 이름부터 불법도청을 상징하는 '안기부 X파일'로 슬쩍 바뀌었다.

 

물론,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도청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되지 않는 범죄행위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정보기관의 도청 문제는 부차적이었고 '내용'과 '본질'은 '정·경·검·언 부패유착'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사건의 이름이 '안기부 X파일'로 바뀌면서 안기부만 나쁜 놈이고, 삼성과 언론, 정치권은 피해자로 둔갑해 버리는 놀라운 변신술이 등장했다.

 

당시 청와대가 '불법 도청이 가장 중대한 본질적인 문제'라며 사건의 본질을 바꿔버리자 검찰은 노 대표를 기소했다. 그리고 노 대표는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떡값 의혹 검사들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는 이뤄지지 않은 상황인데도, 1심 법원은 검찰의 각본대로 유죄를 선고했던 것이다.

 

법원의 판결을 보며 떠오른 것은 옛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두건장이를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처벌하는 포졸의 우스꽝스런 행색이다. '떡값 검사'들에 대해 아무런 수사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 대표에게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유죄를 내렸기 때문이다. 간첩 신고하면 포상금 준다고 해놓고, 정작 신고를 하자 간첩을 직접 잡아오지 않았다고 시민을 처벌하는 것과 같다.

 

진보정치인에 대한 사법살인, 또다시 되풀이되는가

 

 '촛불재판 개입' 의혹으로 엄중 경고를 받은 신영철 대법관의 거취를 놓고 일선 판사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법원 관계자가 법원 로고 앞을 지나고 있다.

더구나 노 대표에 유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 재판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관여 시 집중적으로 배당받은 보수 성향의 판사로 밝혀졌다. '그러면 그렇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번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관여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검찰은 말할 필요도 없이 사법부조차도 정치적 외풍에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는 슬픈 현실을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판사 개인의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해야 하며 법 적용과 해석은 공정해야 하는데도, 우리 사법부는 보수권력 앞에서는 솜방망이가 되고 진보세력에는 쇠뭉치가 됨으로써 스스로 사법정의와 독립성을 훼손하는 치욕의 역사를 써내려 왔다.

 

1975년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인혁당 관련자 8명의 고귀한 생명을 빼앗은 사건과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59년 당시 진보당 당수 조봉암을 좌경용공 혐의로 사형시켰던 사건은 대표적인 '사법살인'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어찌 그뿐이랴. 군사정권 시절 권력이 수많은 사람을 옥에 가둘 때 법의 이름으로 이를 승인한 것은 바로 사법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 각종 시국사건에서 급격히 편향성을 보이고 있는 사법부의 태도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 정치인에 대한 사법살인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회찬 대표의 재판을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1심 판결대로 형이 확정되면, 노 대표는 대법원 판결 이후 집행유예와 자격정지 기간을 합쳐 3년 동안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내년에 있을 지방자치선거뿐만 아니라 2012년 총선마저 출마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2008년 총선을 기준으로 2016년 총선까지 무려 8년을 정치 현장 바깥에서 보내야 한다.

 

꼭 사형 선고만이 사법살인은 아니다. 정치인의 정치 활동을 장기간 금지시킴으로써 정치 생명을 사실상 중단시키는 것도 분명 사법 살인이다.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것도,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도 아닌데, 사회적 공익을 위한 의로운 행동의 대가로 유망한 대중 정치인이 이런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면 앞으로 누가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맞서려 하겠는가.

 

우리 정치에서 진보적 대중정치인이 소중한 이유

 

 지난 2월 25일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진보신당 노회찬·심상정 대표가 울산 북구 재보선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에서 회동을 하기 전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분단을 조건으로 세워진 탓에 태생적으로 보수 과잉의 나라이다. 지금 국회를 보라. 보수정치인은 의사당이 넘치도록 초과 공급 상태이고 제대로 된 개혁정치인이나 진보정치인은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어려운 희소재에 가깝다. 이런 현실에서 대중 정치인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철학과 신념이 있는 개혁정치인이나 진보정치인은 그 소속당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소중히 지켜야 할 정치적 자산이다. 노회찬은 그중 대표적인 정치인 중의 한 명이라고 본다. 거대한 변절과 배반으로 점철된 17대 국회에서 노회찬은 강기갑·심상정·임종인과 더불어 개혁 진보 진영의 마지막 보루였다.

 

"한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3년 전 아프리카 배낭여행 길에서 들은 에티오피아 소말리족의 속담이다. 노회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보정치의 토양이 척박한 우리나라에서 그와 같은 유력한 진보 정치인이 재갈에 묶여 사라지면, 지난 20년 동안 어렵게 쌓아온 진보정치의 가치가 함께 사라지는 셈이다.

 

이른바 '이명박 시대의 광기'로부터 노회찬을 구해야 하는 시대적 당위는 여기에 있다. 개혁 진보세력이라면 노회찬을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노회찬을 커다란 위기에서 구해내는 것은 단순히 한 정치인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진보적 가치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해 12월 '촛불의 정치인'으로 상징되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를 대중의 힘으로 구한 바 있다. 강기갑을 살렸던 것처럼 노회찬을 위해 다시 한 번 '범국민 10만 명 서명운동'도 벌이고, '반쥐원정대'도 꾸리자. 청계천 광장에서 '노회찬 지키기 촛불문화제'를 열자.

 

나치 정권에 저항했던 마틴 뇌묄러 목사는 <전쟁책임 고백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이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노회찬을 구하는 것은 기본적인 민주주의를 지키고,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살리는 길이다. 아니, 언제 그칠지 모르는 이 미친 시대의 광풍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는 첫걸음이다. 무관심과 침묵은 독재와 파시즘을 부른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기자는 16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으로 원내부대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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