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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담임선생님이 보내 온 스승의 날  편지 한 통
 아들 담임선생님이 보내 온 스승의 날 편지 한 통
ⓒ 이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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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큰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자랑스런(?) 학부모가 되었다. 오월, 어린이날이다 어버이날이다 챙겨야 할 일들이 많은 달이라 아내와의 대화가 그다지 많지 않은 남편들에게 그나마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스승의 날이 다가오자 아내가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 한다.

몇일 전부터 아파트에서는 난리통이다. 무슨 선물을 해야 되는 거냐? 얼마정도 예산을 잡아야 하나? 선물만 하면 되는 건지, 봉투는? 하면서 아줌마들끼리 분주하게 움직였다. 옆집은 선생님이 미리 자신은 ○○○이라는 고급 브랜드 화장품만 쓴다고 통보를 했다며 어이없어 하고 또 어떤집은 상품권을 할까 고민하다가 뷔페 가족식사권을 하기로 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8살난 꼬맹이를 학교에 보내니 부모들 마음이야 똑같다. 하루 종일, 1년 내내 담임선생님이랑 함께하는 초등학교의 특성상 선생님의 눈 밖에 난 자신들의 자녀를 상상하기 싫은 것은 다 똑같은 마음이리라. 실제로 우리는 뉴스에서 아니 가까운 주위에서도 선생님의 편애와 관심밖으로 밀려난 아이들에 대한 얘기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으니 작든 크든 학교 행사때 그냥 지내쳐 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호들갑인 아내가 이해도 가지만 그러한 현실이 짜증이 나기도 해 '그런 거 하지마라'며 말다툼에 싸우기까지 했다.

그런데 퇴근 후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활짝 웃으며 반겼다. 분위기 안 좋은데 왠일이지? 어제 아이편으로 알림장 안에 짧은 편지 한통이 있었단다. 아이 담임선생님이 보낸 이 편지에는 '학부모님께'라고 시작해 간단한 인사와 함께 '스승의 날을 비롯한 선물은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의 작은 뜻을 이해해주시고 흔쾌히 동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라는 글귀가 예쁘게 씌여져 있었다.

아내는 뛸 듯이 기뻐했다. 빠듯한 살림에 뭘 챙겨 보내야 하나를 밤잠 설치며 고민하고 나와의 말다툼도 있었으니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선생님 너무 멋지지 않아?' '이런 선생님들만 있으면 얼마나 좋아'라는 말은 단순히 돈 10만원, 20만원 아꼈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아닌 듯 했다.

사실 난 아내와 말다툼을 하면서 촌지를 당연히 생각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하며 스승의날도 그냥 넘길 수 없다고 하는 것에 '절대 그런 거 하지마라' '왜 잘못된 것까지 그렇게 따라 가야 되는 거냐' '스승의 날도 신경 쓰지 마라'라고 쏘아 붙였지만 8살 난 아이의 자그마한 가슴에 행여나 선생님이란 존재로부터 학교생활 내내 상처를 입으면 어쩌나 하는 부정 때문인지 시원찮은 돈벌이밖에 못하는 남편인 나 자신의 열등감 때문인지 아내의 현실적 논리를 꺽질 못했다.

명백한 뇌물임에도 '촌지'라는 말로 그 자체를 포장하고 미화할 만큼 그 병폐가 만연해 학기초에는 모든 학부모 가정에 비상이 걸리고 스승의날에는 선물로 고민하는 풍경이 일상화 되었음에도 어쩌면 가장 깨끗해야할 우리 학교는 변하지 않는 걸까? 가장 존경받아야 할 선생님들은 이런 현실을 바꾸어 내지 못하는 걸까? 어떻게 뇌물을 주고받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 놓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제대로 가를 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학부모가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선생님들이 바꿀 수 있는 있다. 선생님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기에 앞서 '촌지' 아니 '뇌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선생님들의 인식을 먼저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 잘난 전교조며 교총은 끄떡하면 머리띠 묶고 투쟁하며 강철같은 조직력과 단결력을 자랑하면서 자신들이 받는 '뇌물'을 사라지게 하는 데는 왜 그리 인색한지 모르겠다.

물론 아들의 담임선생님 같은 분들이 많이 계실 거다. 이런 선생님들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많아지고 교직사회에서도 존경 받아야 될 것인데 행여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오히려 조직내에서 내몰리지나 않을까하는 마음은 기우일까?

8살 꼬맹이 아들에게 학교라는 곳에서 한 살 한 살 들어가면서 무엇이 옳고 그런지, 다른사람의 행복이 나의 행복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잘 배워 나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책 속에서가 아니라 함께하는 선생님을 통해 그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그마한 시골의 한 선생님으로 받은 쪽지 하나에서 그런 희망을 느낄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한 날이다.

아내가 아까부터 아들과 함께 선생님께 편지 한통을 쓴다며 머리를 끙끙 거리고 있다. 참 기분 좋은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어제 우리가족은 선생님으로부터 진짜 말 그대로의 "촌지(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를 받았다.


태그:#스승의 날, #촌지, #교육, #뇌물,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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