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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 돌아올 때면 정작 교사들은 마음이 매우 불편합니다.
 '스승의 날'이 돌아올 때면 정작 교사들은 마음이 매우 불편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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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무더운 여름 날씨가 계속되더니, 대지를 흠뻑 적시는 달콤한 비가 한바탕 내려주었습니다. 변덕이 심한 날씨 탓에 우리 반 아이들도 돌아가면서 심한 감기를 앓아 결석을 하고 있고, 저 역시 '숲! 놀자!' 체험학습 뒤로 감기 몸살이 세게 걸려 보름 가까이 고생하는 중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건강에 조심해야 할 때입니다.

편지를 드리는 까닭은, 다가오는 '스승의 날'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스승의 날'이 학부모님들께나 그리고 저 같은 교사들에게나 모두 불편한 날이 되었습니다. 특히 부모님들은 스승의 날에 가만히 있자니 담임교사 눈치가 보이고, 혹시라도 선물을 안 한 것 때문에 우리 아이한테 불이익이 돌아가게 되면 어쩌나 걱정도 되실 것이고, 선물을 하자니 어떤 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실 것입니다.

저 역시 경험으로 학부모님의 심정을 잘 알기에 스승의 날이 돌아올 때만 되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작년에 같은 반을 한 경험이 있으셔서 마음 편하게 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래도 또 이 날이 돌아오면 마음이 편치 않아 아무래도 칼자루 쥔 제 쪽에서 먼저 뚜렷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 서로 마음 편할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저는 '스승의 날'에 꽃뿐만 아니라 그 어떤 선물도 받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기까지 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떡 줄 사람은 마음도 먹지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먼저 마신 것 아니냐?'고 하시거나 '스승의 날'인데 학부모가 보내는 선물 하나쯤 받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없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뒷말이 있을지라도 제 쪽에서 먼저 딱 부러지게 말씀드리면 서로 편하기에 말씀드린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취지와 달리 서로 불편해지게 된 까닭은, '스승의 날'이 5월 15일이다 보니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앞으로 우리 아이 잘 봐 달라'는 뜻이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는 선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정한 마음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은 학부모님도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스승의 날' 감사를 드려야 할 스승은 지금 담임을 맡고 있는 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담임인 저보다는 이전에 아이를 올바르게 이끌어주었거나 앞으로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아이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미래의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승의 날'을 진정으로 생각할 때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물질적인 선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추억이 서린 '마음'의 선물로 말입니다.

'스승의 날'에는 아이들과 함께 '스승의 날'의 뜻을 새기는 여러 가지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스승의 날'에 대해 걱정하지 마시고, 어렵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제 뜻을 너그럽게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2009년 5월 12일, '스승의 날'을 사흘 앞두고
담임 이부영 올림

덧붙이는 글 | 스승의 날을 사흘 앞두고 아무래도 제 쪽에서 먼저 말씀드리는 것이 여러 모로 편할 것 같아 고민하다 오늘 학부모님께 이런 편지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봤는데 이 방법이 학부모와 저, 그리고 아이들이 가장 편하게 스승의 날을 보내는 방법이더군요.



태그:#스승의날, #스승의날선물, #편지,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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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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